2007년 09월 02일
러시아 제국 해군 전함 Retvizan
1898년 발주
1899년 6월 29일 건조 시작
1900년 10월 23일 진수
1902년 3월 22일 해군에 인도 및 정식 취역
만재배수량 12,780톤의 전함으로 미국의 선박 및 엔진 설계업체에 의뢰해 건조된 전함입니다. 당시 러시아가 미국에게 이 선박의 설계를 제안한 이유는 제정 러시아 해군에 있어서 아직은 낯선 환경인 태평양 지역의 작전에 적합한 함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Retvizan은 취역 후 1903년 5월 4일에 제정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소속으로서 포트 아서Port Arthur, 즉 현 중국 랴오닝 성의 뤼순항에 배치됩니다. 그것이 이 전함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정 러시아로서는 Retvizan을 비롯한 신예함정들의 태평양함대 배치로 삼국간섭 이후 사실상 우위를 확고히 한 중국 동북지역은 물론,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이후 영향력이 급격히 강해진 대한제국에서의 확고한 우위권까지 보장받고 이를 통해로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저 "동양의 미개한 원숭이 일본"을 물리치고 오랜 염원인 부동항 확보와 태평양 출구를 얻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측의 세력분할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세력확대에 골몰합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제국은 유럽의 열강, 거인인 제정 러시아를 상대로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전쟁을 전면적인 기습공격으로 시작했습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황해 해전, 혹은 포트 아서 해전으로 불리는 기습전투로 포트 아서는 봉쇄되었고 정박 중이던 전함 2척과 순양함 1척이 전투불능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의 교전으로 Retvizan에서는 6명이 전사하고 43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후 항만의 봉쇄 및 기습에서의 피격으로 인해 항해 및 전투불능에 빠진 Retvizan은 이후 항만에 부설된 기뢰, 그리고 일본 지상군에 의해 계속된 뤼순 포위전 도중 1904년 12월 6일, 일본 지상군이 발사한 포탄 등으로 끝내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포위전 과정에서 Retvizan이-2차대전기 독일 및 일본 해군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고정 포대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1905년 쓰시마 -혹은 대한해협- 해전에서 로제스트벤스키의 제정 러시아 해군 제2태평양함대-라 쓰고 발틱함대라 읽는다.-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에게 대참패한 것을 계기로 강화가 체결되고 러시아 세력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축출되고 맙니다. 침몰한 전함에 러시아가 관심을 돌릴 여력조차 없이 말이죠.
그리고, 유럽의 거인 러시아를 침몰(?)시킨 기적을 발휘한 아시아의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계속해서 해군력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자체적인 최신예 전투함 건조는 무리였고 유럽에 비해서도 그 성능이 매우 열세였으며 숫적으로도 부족했고 주력 전투함도 거의 다 해외에서 수입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일본 해군에게 있어 러시아의 전투함들은 매력적인 전리품이었습니다. 쓰시마 해전에서 나포된 전투함들을 모조리 재취역시킨 것은 물론, 뤼순항에 침몰해 있던 Retvizan을 꺼내서 사세보로 인양, 수리해 이를 재취역시킵니다. 대일본제국 해군 전함 히젠[肥前], 9월 22일 취역.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 17일 뒤의 일입니다.
그 이후 Retvizan, 아니 히젠은 특별한 일 없이 1923년 현역에서 물러나고 이듬해인 1924년에 침몰됩니다. 1922년, 1차대전의 승전국들이 모여서 조인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체결에 따른 조약시대의 도래로 인해 구시대 함정인 히젠은 일고의 재고도 없이 우선적인 현역제외 대상이 되었습니다.(최근 슈타인호프님이 포스팅하신 가상의 대한제국기 역사대로 하면 히젠이 1순위로 대한제국 해군 함정이 되겠군요.)
사실 1차대전기, 엠덴 호로부터의 태평양-인도양 연합군 항로 보호 및 엠덴 호 추격 작전, 산둥성의 독일군 공격 및 독일령 태평양 도서 공략전 등에 히젠이 참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연합군의 요청으로 대서양-지중해에 파병된 일본제국 해군 함정 중에 포함될 개연성도 충분합니다만 관련 자료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대전 후반기에는 본국 주변에서 최소한의 경계 및 평시 임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이 포스팅을 한 계기인 어느 한 사건에 히젠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바로 순종의 천황 알현을 위한 일본 방문입니다. 1917년 6월 9일 순종의 일본 방문 및 동년 동월 26일 귀국 때 일본제국 해군이 특파하여 순종을 모신 함정이 바로 히젠입니다. 일본 방문 및 귀국시 모두 순종은 히젠에 탑승했고 함종 불명의 구축함 2척이 방문/귀국시에 히젠을 호위했습니다. 패전국의 전함으로 승자의 전리품이 되어 망국의 군주를 모시는 역할을 맡은 배...라는 부분에서 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저 혼자뿐일려나요?^^

사진 1. 제정 러시아 해군 Retvizan
사진 2. 대일본제국 해군 Hizen
그런데 두 사진이 각기 러시아, 일본에 속했을 때 사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각각 Retvizan과 Hizen으로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인데...
사진 출처 : 구글
내용 출처 : 구글, 위키피디아, <대한제국 황실비사>, <짜르의 마지막 함대>
1899년 6월 29일 건조 시작
1900년 10월 23일 진수
1902년 3월 22일 해군에 인도 및 정식 취역
만재배수량 12,780톤의 전함으로 미국의 선박 및 엔진 설계업체에 의뢰해 건조된 전함입니다. 당시 러시아가 미국에게 이 선박의 설계를 제안한 이유는 제정 러시아 해군에 있어서 아직은 낯선 환경인 태평양 지역의 작전에 적합한 함정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Retvizan은 취역 후 1903년 5월 4일에 제정 러시아 해군 태평양함대 소속으로서 포트 아서Port Arthur, 즉 현 중국 랴오닝 성의 뤼순항에 배치됩니다. 그것이 이 전함의 운명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정 러시아로서는 Retvizan을 비롯한 신예함정들의 태평양함대 배치로 삼국간섭 이후 사실상 우위를 확고히 한 중국 동북지역은 물론,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이후 영향력이 급격히 강해진 대한제국에서의 확고한 우위권까지 보장받고 이를 통해로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저 "동양의 미개한 원숭이 일본"을 물리치고 오랜 염원인 부동항 확보와 태평양 출구를 얻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본측의 세력분할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세력확대에 골몰합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일본제국은 유럽의 열강, 거인인 제정 러시아를 상대로 어쩌면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전쟁을 전면적인 기습공격으로 시작했습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으로 발발한 황해 해전, 혹은 포트 아서 해전으로 불리는 기습전투로 포트 아서는 봉쇄되었고 정박 중이던 전함 2척과 순양함 1척이 전투불능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의 교전으로 Retvizan에서는 6명이 전사하고 43명이 부상을 입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페테르부르크의 황제 폐하께
황제 폐하께 엎드려 보고 드림. 2월 8일에서 9일로 넘어가는 밤 자정에 일본 어뢰정들이 뤼순항 기지 외항에 정박 중이던 아군 전대에 기습 공격을 가해 옴.
전함 레트비잔 호와 체사레비치 호, 순양함 팔라다 호가 피격되었으며, 피해 정도를 조사 중임. 황제 폐하께 다시 상황 보고 드리겠음.
전함 레트비잔 호와 체사레비치 호, 순양함 팔라다 호가 피격되었으며, 피해 정도를 조사 중임. 황제 폐하께 다시 상황 보고 드리겠음.
폐하의 장군 알렉세예프
개전 이후 짜르에게 보내진 최초의 보고문. (짜르의 마지막 함대 19p)
이후 항만의 봉쇄 및 기습에서의 피격으로 인해 항해 및 전투불능에 빠진 Retvizan은 이후 항만에 부설된 기뢰, 그리고 일본 지상군에 의해 계속된 뤼순 포위전 도중 1904년 12월 6일, 일본 지상군이 발사한 포탄 등으로 끝내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포위전 과정에서 Retvizan이-2차대전기 독일 및 일본 해군이 하려고 했던 것처럼- 고정 포대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점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1905년 쓰시마 -혹은 대한해협- 해전에서 로제스트벤스키의 제정 러시아 해군 제2태평양함대-라 쓰고 발틱함대라 읽는다.-가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제국 해군 연합함대에게 대참패한 것을 계기로 강화가 체결되고 러시아 세력은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에서 축출되고 맙니다. 침몰한 전함에 러시아가 관심을 돌릴 여력조차 없이 말이죠.
그리고, 유럽의 거인 러시아를 침몰(?)시킨 기적을 발휘한 아시아의 또 다른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계속해서 해군력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자체적인 최신예 전투함 건조는 무리였고 유럽에 비해서도 그 성능이 매우 열세였으며 숫적으로도 부족했고 주력 전투함도 거의 다 해외에서 수입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일본 해군에게 있어 러시아의 전투함들은 매력적인 전리품이었습니다. 쓰시마 해전에서 나포된 전투함들을 모조리 재취역시킨 것은 물론, 뤼순항에 침몰해 있던 Retvizan을 꺼내서 사세보로 인양, 수리해 이를 재취역시킵니다. 대일본제국 해군 전함 히젠[肥前], 9월 22일 취역. 포츠머스 강화조약 체결 17일 뒤의 일입니다.
그 이후 Retvizan, 아니 히젠은 특별한 일 없이 1923년 현역에서 물러나고 이듬해인 1924년에 침몰됩니다. 1922년, 1차대전의 승전국들이 모여서 조인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체결에 따른 조약시대의 도래로 인해 구시대 함정인 히젠은 일고의 재고도 없이 우선적인 현역제외 대상이 되었습니다.(최근 슈타인호프님이 포스팅하신 가상의 대한제국기 역사대로 하면 히젠이 1순위로 대한제국 해군 함정이 되겠군요.)
사실 1차대전기, 엠덴 호로부터의 태평양-인도양 연합군 항로 보호 및 엠덴 호 추격 작전, 산둥성의 독일군 공격 및 독일령 태평양 도서 공략전 등에 히젠이 참여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연합군의 요청으로 대서양-지중해에 파병된 일본제국 해군 함정 중에 포함될 개연성도 충분합니다만 관련 자료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대전 후반기에는 본국 주변에서 최소한의 경계 및 평시 임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이 포스팅을 한 계기인 어느 한 사건에 히젠이 등장하기 때문이죠.
바로 순종의 천황 알현을 위한 일본 방문입니다. 1917년 6월 9일 순종의 일본 방문 및 동년 동월 26일 귀국 때 일본제국 해군이 특파하여 순종을 모신 함정이 바로 히젠입니다. 일본 방문 및 귀국시 모두 순종은 히젠에 탑승했고 함종 불명의 구축함 2척이 방문/귀국시에 히젠을 호위했습니다. 패전국의 전함으로 승자의 전리품이 되어 망국의 군주를 모시는 역할을 맡은 배...라는 부분에서 딱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저 혼자뿐일려나요?^^


사진 2. 대일본제국 해군 Hizen
그런데 두 사진이 각기 러시아, 일본에 속했을 때 사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각각 Retvizan과 Hizen으로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인데...
사진 출처 : 구글
내용 출처 : 구글, 위키피디아, <대한제국 황실비사>, <짜르의 마지막 함대>
# by | 2007/09/02 19:34 | History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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