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메드베데프 시대의 개막(일리가)

(가스와 석유 팔아먹은 돈으로) 급속하게 국력을 회복하고 있는 세계 제2의 핵강국 러시아의 대통령은 오늘부터 이른바 짜르로 불린 블라디미르 푸틴에서 그가 후계자로 지정한 메드베데프로 바뀌게 되었다. 푸틴 2기의 04~08년동안 러시아가 과거의 구소련 시절을 연상케 하는 대 서방 강경노선으로 나아간 걸 생각해 보면, 서방 세계의 관심은 메드베데프의 성향과 그의 독자적 권력 획득 가능성에 집중되어 있다.

과연 메드베데프의 독자적 권력 획득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전 지도자가 꼭두각시를 내세우고 권력의 배후조종을 획책했던 사례는 곳곳에 있지만 당장 멀리 갈 일 없지 20년 전 대한민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는 노태우가 성공적으로 단독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전두환-노태우의 경우, 지지기반은 물론 출신기반까지 완전히 동일하다는 데에 역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출신지역은 물론 학교도 동일했으며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구심점이었고 하나회를 동원해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하였고 이후의 5공화국 시절에서도 늘 정권의 최상층부에 자리잡혀 있었다. 지역기반, 군부기반, 지지기반 모두 동일했으며 때문에 노태우가 전두환을 과감하게 공격할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는 지지기반은 전두환이 아닌 노태우가 새로운 권력자로 전면에 나선다 해도 자신들과 같은 라인이라는 생각에 거리낌없이 노태우 쪽으로 배를 갈아탈 수 있었던 것이다.-아니 배를 갈아탄다는 느낌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두환과의 개인적인 의리가 아닌 이상 그들은 노태우의 권력장악에 크게 개의치 않은 것이다.-그리고 권력 앞에서 개인의 의리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던가?-

반면 푸틴-메드베데프 관계는 그와 전혀 다르다. 20년 전 한국의 실패사례라도 참고한 걸까?

작년 초만 해도 푸틴의 후계자로서 주목받던 인물은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였다. 푸틴과 동향에 동년배이며 과거 정보기구에서 일했다는 경력까지 일치했다. 푸틴이 FSB 국장일때 이바노프는 그 밑에서 핵심참모였다. 푸틴과 출신기반, 지지기반, 권력기반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메드베데프도 출신지가 레닌그라드로 푸틴과 동향이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권력 및 지지기반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는 푸틴 집권기동안 실제 권력기구대신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종사했다. 푸틴이 KGB 출신으로서 정보기구 및 군-실로비키-이라는 전통적 지지기반을 가진 반면 메드베데프는 푸틴에 대항할 지지기반도 없고 푸틴의 지지기반을 잠식하고 들어갈 여력도 보이지 않는다.

메드베데프의 이력은 푸틴과 만나기 이전까지는 말 그대로 무의미했다. 1990년 당시에는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강사였고,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 국제관계위원회 법률자문관이 그의 첫 공직이었다.(1991~1996)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진 않고 동시기 펄프업 등에 관심을 보였으며 96년 이후로는 사실상 사업에 전념했다.

그가 다시 정계로 돌아온 건 1999년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캠프에 불려가면서이고, 이후 2000년부터 가즈프롬에 종사했고 2005년에 제1부총리에 임명되었다.

이력으로만 볼때 그는 군이나 정보기구라는 전통적인 푸틴 지지기반의 잠식은 절대 불가능할뿐더러, 행정/관료기구와도 거리가 멀다. 사법부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지식인 계층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내세울 수 있는 이력은 가즈프롬 뿐인데 가즈프롬이라는 국영기업 하나만으로 독자적 권력기반 확보는 어렵다.

물론 오늘부터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갖게 되지만, 의회와 정부여당은 전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장악한 상태다. 의회의 도움없는 대통령이 얼마나 힘 없는지는 2003년 한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고, 극단적으로 의회에 대항할 수단을 찾고자 해도 그 대항수단 모두 푸틴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

더군다나 푸틴은 절묘하게도 대통령 이취임식을 1주일여 앞두고 그루지야에서 긴장관계까지 조성하고 있다. 지난 번 그루지야 영공에서의 러시아 Mig29의 그루지야 UAV 격추사건. 당시에는 이 생각을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대통령 이취임식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대외적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이 아닌가 싶다. 푸틴 2기동안 계속된 대서방 강경 외교정책을 새 대통령으로 하여금 별 수 없이 받아들이게 하려는 의도로서 말이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이틀 뒤에는 대독 승전 63주년 기념으로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까지 있다.)

과연 이 불리한 상황 속에서 메드베데프는 독단적인 권력 획득 및 장악에 나설 것인가? 나선다면 성공할 것인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푸틴은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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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enijoa | 2008/05/07 16:48 | 세계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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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EATTA at 2008/05/07 16:59
경제를 살리는 꼭두각시일지두요.
Commented by BigTrain at 2008/05/07 17:10
음? 소리소문없이 대인배에서 허수아비로 간판이 바뀌었었군요. 요즘 신문을 잘 못봤더니...

그나저나 작년 러시아 해군 SSBN 초계가 단 '3회'에 불과했더군요. 2006년보다도 줄었던데... 속에 든 골병이 다 나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나 봅니다.
Commented by 라피에사쥬 at 2008/05/07 19:09
국내 언론에선 메드베데프가 푸틴전하를 '어떻게 견제' 할것인가 고민중이라는 소리를 늘어놓더군요 -_-;;
Commented at 2008/05/07 21:5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あさぎり at 2008/05/07 23:08
이건 정말 수렴청정도 아니고...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8/05/09 02:18
IEATTA / 전형적인 꼭두각시 타입이죠.
BigTrain / SSBN의 초계가 3회라... 신형 SSBN도 취역시키는 모양입니다만... 제대로 운용하기엔 아직 여력이 안되나요.
라피에사쥬 / 헛소리죠 헛소리(...)
비밀글 /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ㅋㅋ
あさぎり / 그냥 마리오네트 놀이입니다 ㄲㄲ
Commented by 【天指花郞】 at 2008/05/09 15:37
로씨야 해군이야 소련 붕괴기에 아사자까지 나왔을 판이니 뭐.... 인트라넷에서 '세계의 함선' 번역본들 받아보니까 아직 멀었을뿐더러 슬슬 대양해군에서 연안해군으로 규모가 축소되는 움직임이 보인다는 말까지....

푸틴의 메드베데프 당선 -> 총리 지명 -> 차기 대선 출마라는 황제 즉위 시나리오를 아마 중앙일보에서 3월엔가 본 것 같은데.... 웃기는 건 지난주에 국방일보였나 C모일보였나.... '푸틴은 앞으로 권력을 놓고 싶다고 말했다' 운운. 잔잔한 파문. [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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