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8일
역대 국방장관 일람을 보며 느낀 잡상
최근 총선에서 다시 압승을 거두 계속 정권을 유지하게 된 스페인 좌파내각의 신임 국방장관 카르메 차콘은 불과 37살의 젊은 나이에, 스페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이었다. 그녀는 04~08 1기 정권때 주택장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국방장관 기용은 의외의 일이었다. 그런 카르메 차콘 신임 장관이 장관이 되자마자 우선적으로 한 일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스페인 부대를 방문한 것이다. 당시 그녀는 임신 7개월의 몸이었다.
국민당군과 인민전선 정부의 치열한 내전 끝에 승리하고 집권한 프랑코 총통의 우파 파시스트 군부독재 정권은 프랑코 총통의 사후, 그가 생전에 계획한 대로 왕정복고를 통해 입헌군주국으로 나아가고 급속한 민주화로의 전진을 시도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기득권을 쥐고 있던 군부는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았고 1981년 다시 한 번 쿠데타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 쿠데타는 국왕의 강인한 의지로 분쇄되었으며 이후 스페인은 민간정부의 확실한 군부통제가 성공하고 있다.
한국의 역대 국방장관을 보면 민간정부에 의한 군부통제 시도는 오직 제2공화국의 짧은 기간이 유일했다. 물론 그 이전의 3대 국방장관에 서울시장 출신의 민간행정관료인 이기붕(그 이기붕 맞음;;)과 6대 김용우를 임명한 적은 있지만 논외로 친다.
2공화국의 짧은 역사 속에서 국방장관 역시 극심한 정치혼란을 말해주듯 무려 3명-9, 10, 11대-이나 있었다.(9, 11대 장관은 같은 인물-현석호-이라 실질적으론 2명이지만) 정권 수립과 동시에 임명된 현석호 9대 장관은 불과 20일밖에 재임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으며, 10대 권중돈도 다섯 달 약간 못되는 재임기간을 가졌다. 이후 5.16 쿠데타까지의 짧은 기간을 다시 현석호가 맡게 된다.
이러한 민주당 장면 내각의 국방장관 기용은, 군부에 대한 민간통제라는 원칙을 지키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운영의 미숙으로 끝내 성공하지 못한 채 5.16 쿠데타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차라리 4.19 혁명 직후 혼란기를 수습하던 8대 장관 이종찬을 그대로 기용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지만 역사에 If는 없으니...
한국의 국방장관은 5.16 쿠데타 이래 육군 출신 사성장군들의 마지막 진급코스이자 가장 정점에 달할 수 있는 곳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고 있다. 현 이상희 장관까지 총 40대에 걸쳐 39명의 역대장관 중에 구분이 힘든 초대 이범석 장관(광복군 출신. 육군으로 봐야 하려나)과 2대 신성모 장관(...중국 해군소위 경력 있으니 해군일까?)를 제외한37명 중 非육군 출신 장관은 고작 10명이다.(3대 이기붕-민간행정관료, 5대 손원일-해군, 6대 김용우-정치인, 7대 김정렬-공군, 9대 및 11대 현석호-정치인, 10대 권중돈-정치인, 15대 김성은-해병, 22대 주영복-공군, 32대 이양호-공군, 38대 윤광웅-해군) 이 10명 중 1, 2공화국 시기 장관이 6명이다. 육방부라 불리는 것이 괜한 게 아니다.
참여정부는 3명의 국방장관을 두었다. 37대 조영길 장관은 역대 2번째 갑종장교 출신 국방장관이며, 38대 윤광웅 장관은 손원일 이래 반세기만에 해군 출신 국방장관이 되었다. 39대 김장수 장관은 서열을 무시하고 전격 단행된 인사였다. 참여정부 들어서면서 이뤄진 국방장관 임명은 모두들 기존이 관행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며 국방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런 참여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하지 못한 것이 바로 2공화국 이래 최초의 문민 장관 임명이었다. 문민장관 임명은 군부에 대한 군부통제라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카드다. 사실 39대 장관 임명 당시 문민장관 카드도 거론되었으나 그 카드라는 것이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하는 여당의 장영달 의원(...안구에 쓰나미)이었으니 포기할 만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시기 들어 국방부 내 여러 조직에서 인위적인 민간인 국장 기용을 법제화하는 등 문민통제에 대한 의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실용정부가 들어섰다. 실용정부의 첫 국방장관인 40대 이상희 장관의 임명은 노무현이 39대 김장수를 임명하면서 단행한 서열파괴를 다시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리는 과거로의 회귀였다. 김장수 장관 임명 당시, 이상희는 합동참모본부 의장이었으나 육군참모총장이던 후배인 김장수 대장이 국방장관으로 결정되면서 조기 퇴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이다. 서열은 원상복구되었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법제화한 국방부 내에서의 일정비율 이상의 민간국장 기용도 곧 무력화될 듯 싶다.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나아가 민간정부에 의한 확고부동한 문민통제 원칙을 추구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참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현 정부 및 장관이 제대로 된 방향을 가지고 있다면 긍정적인 측면이 그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겠지만 그 방향이라는 것이 빌어먹을 정신력 제일주의인 듯 싶으니 짜증만 난다.
과연 국방개혁의 희망은 언제쯤에나...
# by | 2008/06/18 10:25 | 사회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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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국방장관을 현역 대장이 맡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헌법상 현역군인의 국방장관 기용을 봉쇄하고 있기는 한데 현역대장이 퇴역하고 바로 올라오는 자리가 국방장관이니 그 의미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꿈과 희망의 군국주의자였던 노무현의 성향을 보자면 아마 군의 문민통제 강화 또한 자신의 외교력 강화를 목적으로 둔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쓸수있는 카드의 질과 양 강화랄까.... 특히 각종 국방정책이나 외교정책을 보면 말이죠....
군사는 정치의 연장이란 금언을 보자면 군의 문민통제가 사실 맞기도 합니다.
참여정부가 진짜 문민통제를 위해 노력했는데 다시 빽구..
장기적으론 물론 민간인의 인재풀 양성에도 기울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