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2일
<그루지야 전쟁> 8월 9일 츠힌발리 진공전
2008년 8월 9일 러시아군의 츠힌발리 시 진입 전투 기록 - DC 인사이드 기갑갤 할힐골님 번역글
DC인사이드 밀리터리 갤의 기갑갤러리에서 할힐골 님이 러시아 신문에서 보도된 8월 9일 츠힌발리 공략전의 전투기사를 번역해 올리셨다. 예전 라피에사쥬님이 올리신 포스팅 2008년 남오셰티아 전쟁 진행 정리 - 8월 10일 오전까지에서 러시아군 사령관 쿠롤뇨프 중장이 부상을 입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위 글에 나오는 Hrulev 장군이 동일인물 아닌가 싶다.(러시아어를 몰라 확언은 못하지만)
위 글에 따르면 북코카서스 군구 제58군 예하 제19차량화소총사단 693차량화소총연대 Vostok 대대는 현지시각으로 8월 9일 아침, 제1차 전략목표인 남오셰티아 자치공화국 수도 츠힌발리로 진격을 개시했다. 겁도 없이 선두대대의 지휘를 (쿠롤료프 장군이 Hrulev와 동일인물일 경우) 58군 사령관이 직접 맡았다.
교외에서 그루지야 군은 장갑차와 박격포를 이용해 러시아 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정석대로의 작전을 전개했으며 이윽고 러시아 군이 시외까지 진입한 후 계획대로 매복하고 있던 대규모 그루지야 군에 의한 공격이 개시, 전투가 진행되었다. RPG7 및 대전차미사일에 의해 일부 장갑차가 격파되었고 그루지야 군은 계속 증원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곧이어 그루지야 군에 전차부대가 증원으로 왔다. Vostok 대대는 전차가 단 2대 뿐이어서 그루지야 군 전차부대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결국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 전투의 중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러시아 군은 지나치게 승리를 자만했고 적을 얕보았다.
2. 러시아 군은 적진영에 대한 제대로 된 정찰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진격하다가 대대적인 매복에 걸렸다.
3. 최선두 부대의 진두지휘를 러시아 58군 사령관이 직접 지휘하다가 사령관 자신이 부상을 입고 하마터면 58군의 지휘권이 붕괴될 뻔 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4. 전차부대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기계화보병은 적 전차에게 너무나도 무력하다.
문제는 위 사항들이 러시아 군의 방심인가 아니면 아직 개선되지 못한 구시대적 군대의 한계인가냐는 점이다.
정찰의 경우, 러시아 군은 UAV 및 정찰기 등 정찰수단을 활용하지 않아 정찰수단에 있어서 미군에 비하면 확실히 뒤쳐진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정찰대를 따로 보내어 정찰을 하는 정도는 가능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아 대대 전체를 위험에 노출시킨 건 명백한 러시아 군 지휘관의 책임이다.
사령관의 선두 지휘 역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예하 부대 및 각 제대간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통신장비가 구식이라 사령관이 직접 선두에서 지휘했을 가능성과, 그냥 자만해서 전공을 올리겠다는 욕심에 전선에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다. 그런데 8월 11일 저녁을 기해 전격 개시된 전 전선에서의 총공세를 보면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Vostok 대대는 달랑 전차 2대만을 동반했다가 그루지야 군 전차부대 출현 이후 완전히 붕괴했다. 러시아의 차량화소총사단에 전차가 충분치 않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8월 11일 총공세에서 러시아는 양 전선을 합쳐서 최대 500대가 넘는 대규모 전차부대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선두부대는 후속 주력 전차부대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진입하다 변을 당한 듯 싶다.
결론은 간단하다. 전공에 눈이 멀고 자만에 빠진 지휘관이 전투를 지휘하면 이런 꼴 나는 것이다. 같은 러시아 군임에도 불구하고 8월 12일의 러시아 군은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거두며 현대전에 있어 놀라운 전공을 세웠다.-불과 공격개시 서너 시간만에 주요 전략목표 달성 완료-
8월 9일의 처참한 패전이 바탕이 되어 8월 12일의 완벽한 승리를 이룬 러시아 군은 아직 죽진 않았다고 봐야 할 듯 싶다.
DC인사이드 밀리터리 갤의 기갑갤러리에서 할힐골 님이 러시아 신문에서 보도된 8월 9일 츠힌발리 공략전의 전투기사를 번역해 올리셨다. 예전 라피에사쥬님이 올리신 포스팅 2008년 남오셰티아 전쟁 진행 정리 - 8월 10일 오전까지에서 러시아군 사령관 쿠롤뇨프 중장이 부상을 입었다는 대목이 있는데 위 글에 나오는 Hrulev 장군이 동일인물 아닌가 싶다.(러시아어를 몰라 확언은 못하지만)
위 글에 따르면 북코카서스 군구 제58군 예하 제19차량화소총사단 693차량화소총연대 Vostok 대대는 현지시각으로 8월 9일 아침, 제1차 전략목표인 남오셰티아 자치공화국 수도 츠힌발리로 진격을 개시했다. 겁도 없이 선두대대의 지휘를 (쿠롤료프 장군이 Hrulev와 동일인물일 경우) 58군 사령관이 직접 맡았다.
교외에서 그루지야 군은 장갑차와 박격포를 이용해 러시아 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정석대로의 작전을 전개했으며 이윽고 러시아 군이 시외까지 진입한 후 계획대로 매복하고 있던 대규모 그루지야 군에 의한 공격이 개시, 전투가 진행되었다. RPG7 및 대전차미사일에 의해 일부 장갑차가 격파되었고 그루지야 군은 계속 증원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곧이어 그루지야 군에 전차부대가 증원으로 왔다. Vostok 대대는 전차가 단 2대 뿐이어서 그루지야 군 전차부대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결국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 전투의 중요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러시아 군은 지나치게 승리를 자만했고 적을 얕보았다.
2. 러시아 군은 적진영에 대한 제대로 된 정찰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진격하다가 대대적인 매복에 걸렸다.
3. 최선두 부대의 진두지휘를 러시아 58군 사령관이 직접 지휘하다가 사령관 자신이 부상을 입고 하마터면 58군의 지휘권이 붕괴될 뻔 한 위기를 초래하였다.
4. 전차부대의 엄호를 받지 못하는 기계화보병은 적 전차에게 너무나도 무력하다.
문제는 위 사항들이 러시아 군의 방심인가 아니면 아직 개선되지 못한 구시대적 군대의 한계인가냐는 점이다.
정찰의 경우, 러시아 군은 UAV 및 정찰기 등 정찰수단을 활용하지 않아 정찰수단에 있어서 미군에 비하면 확실히 뒤쳐진다는 건 분명하다. 다만 정찰대를 따로 보내어 정찰을 하는 정도는 가능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아 대대 전체를 위험에 노출시킨 건 명백한 러시아 군 지휘관의 책임이다.
사령관의 선두 지휘 역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예하 부대 및 각 제대간 통신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통신장비가 구식이라 사령관이 직접 선두에서 지휘했을 가능성과, 그냥 자만해서 전공을 올리겠다는 욕심에 전선에 직접 나섰을 가능성이다. 그런데 8월 11일 저녁을 기해 전격 개시된 전 전선에서의 총공세를 보면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Vostok 대대는 달랑 전차 2대만을 동반했다가 그루지야 군 전차부대 출현 이후 완전히 붕괴했다. 러시아의 차량화소총사단에 전차가 충분치 않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8월 11일 총공세에서 러시아는 양 전선을 합쳐서 최대 500대가 넘는 대규모 전차부대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선두부대는 후속 주력 전차부대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진입하다 변을 당한 듯 싶다.
결론은 간단하다. 전공에 눈이 멀고 자만에 빠진 지휘관이 전투를 지휘하면 이런 꼴 나는 것이다. 같은 러시아 군임에도 불구하고 8월 12일의 러시아 군은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거두며 현대전에 있어 놀라운 전공을 세웠다.-불과 공격개시 서너 시간만에 주요 전략목표 달성 완료-
8월 9일의 처참한 패전이 바탕이 되어 8월 12일의 완벽한 승리를 이룬 러시아 군은 아직 죽진 않았다고 봐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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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8/12 22:00 | Military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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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저는 러시아군에 대해서 좀 더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8월 11일의 야전 공세를 살펴보면 야전에서의 능력은 여전한 듯 싶더군요. 일단은 제대로 된 지휘관과 작전만 있으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는 저력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