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초기에 대한 잡상 History

역사밸리에 보니 인기글 중에 1차대전 초 제1차 마른전투 및 탄넨베르크 회전과 관련된 3개 군단의 차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다른 부분은 문외한이라 모르겠지만 마지막 한 문장 "대체 그 강고한 품성이 소 몰트케와 황제에게 있었다면 3개 군단의 증설은 따냈을 것이고, 마른 전투 실패의 원인이 되는 전투병력의 동부전역 파견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라는 결론이 보이는 지라 이 글을 급조합니다. 어제 바바라 터크만의 8월의 포성을 완독한 덕에 포스팅이 한결 쉬워졌군요.

저는 마른전투의 실패 원인을 서부전선 병력 일부의 동부전역 차출이라고 보지도 않을 뿐더러, 그 파견 자체는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슐리펜 계획 자체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문이 많습니다. 아는 분이면 바로 인사드린 뒤 트랙백을 걸고 포스팅하겠지만 일면식도 없는 분이라 트랙백을 걸기도 뭐하고 그냥 이렇게 따로 글을 올립니다.



1. 독일은 왜 동부전선으로 군단을 차출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는가?

독일 제2제국의 슐리펜 계획은 애시당초 러시아 군의 동원기간에 6주가 걸린다는 전제하에 짜여져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 및 부족한 군수, 보급능력을 감안하면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어쩌면 러시아 군을 과대평가(...)했을 지도 모르는 전제입니다만, 문제는 개전과 동시에 저 전제 자체가 처참하게 박살났다는 데에 있습니다.

개전과 동시에 프랑스는 동맹국인 러시아에게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내세우며 독일제국의 동부에 대한 최대한 신속하고도 대대적인 공세를 단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귀국 군대에게 즉각 공격을 시작하도록 명령해 주실 것을 폐하께 간청합니다. 잘못하면 프랑스군이 전멸될 위험이 있습니다."
8월 5일, 러시아 주재 프랑스 대사 팔레오르그가 니콜라이 2세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  바바라 터크만,8월의포성 425p

그리고 이 동맹국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짜르 니콜라이 2세는 "최대한 신속하게 동원을 해서 독일을 공격하라."고 지시했고, 짜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군은 무려 2주만에 동원을 끝내고 동프로이센에 대한 침공전을 개시하게 됩니다.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획책하는 엄청난 도발에 대하여 프랑스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의 지원은 독일이 동프러시아에 남겨둔 병력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가능한 가장 신속하게 독일을 향해 진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8월 10일, 러시아 총참모부 명령서, 같은 책 427p

물론, 이때 동원된 러시아 군은 속성 동원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고질적인 보급 문제가 드러나면서 전선의 부대들은 식량 부족, 탄약 부족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만 러시아 군 보급사정 악화되는 걸 기밀문서나 포로라도 제대로 획득하지 않는 이상 베를린에서 뭔 수로 알겠습니까? 개전 이전의 전쟁 시나리오보다 4주나 빨리 러시아 군이 동원을 해서 공세를 개시했다는 것은 이미 베를린의 전쟁 시나리오-슐리펜 계획-에 이상이 생겼음을 나타내는 결정적 신호였습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공세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이 연합국 지지를 선언하면서(공식 참전은 23일) 유럽에서 대전이 터지면 일본이 러시아 뒤통수를 후려갈겨 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마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아래서도 다시 이야기가 있지만 독일은 너무 막연한 기대만 하다가 말아먹더군요.) 러시아가 예상보다 빨리 동원령을 내리고 침공을 개시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베를린은 지극히 당황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러시아의 침공에 즉각적인 위협이 노출된 곳은 동프로이센. 독일제국의 모태가 되는 프로이센 왕국의 핵심지역이었으며, 황실과 주요 융커들의 기반이었습니다. 이들 지역의 상실은 카이저의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줄 뿐더러, 주요 권력자들의 기반을 무너트려 궁극적으로 제국 붕괴의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었죠.

물론 결과론적으로야 차출된 3개 군단 없이도 탄넨베르크 회전에 의해 러시아 군은 격퇴당합니다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죠. 탄넨베르크 이전에는 러시아 군은 독일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었으며 독일군 지휘부는 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거기다 개전 초반에는 전선에서 계속 나쁜 소리만 들려왔던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힌덴부르크-루덴부르크의 부임 자체가 그 조치 중 하나였죠.

때문에 저는 3개 군단의 동부전선 차출을 옹호하는 입장입니다.


2. 3개 군단을 차출하지 않았으면 과연 마른에서 이겼을까?

제가 1번에서 언급하는 3개 군단의 차출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논쟁인, 위 3개 군단이 차출되지 않았을 경우 독일군이 마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3개 군단이 차출되지 않고 마른 전투를 치뤄서, 이겼다고 가정한다면 러시아에 의한 동프로이센 일시 상실 정도는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과연 그 3개 군단이 있었다고 해서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이 승리했을까요?(...)

독일군의 개전 이전 슐리펜 계획은,"우리가 어흥 하고 협박하면 벨기에가 찍 소리 못하고 길을 열어주겠지?"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제대로 된 전쟁계획 맞는지 의심스러워집니다.(...) 뒤늦게 벨기에가 강경태도로 나온 후에도 독일은 벨기에가 순순히 길을 열어줄 거라는 마지막 기대를 버리지 않았죠. 독일은 벨기에에게 길을 열어주면 전후 모든 손해를 배상하고, 독일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제의합니다만 공식 거절당합니다.(비공식적으로는 약 10년 전에 카이저가 벨기에 국왕에게 프랑스 영토를 내주겠다는 제의도 했었다는군요;;)

 (상략) 침략이 벌어지던 날 아침 (독일주재) 벨기에 대사인 베이엥 남작이 (귀국을 위해) 자신의 여권을 찾으러 왔을 때 (독일외상) 야고브가 먼저 마치 어떤 제안을 기대하는 것처럼 "자,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고 서둘러 물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만약 벨기에가 철도, 교량, 그리고 터널의 파괴를 멈추고 리에쥬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여 독일군대가 자유롭게 지나가게 해 준다면 벨기에의 독립을 존중하며 모든 손해를 보상하겠다는 독일의 제안을 되풀이했다. 베이엥이 돌아가려고 하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야고브는 그를 따라가며 "우리에게는 해야 할 얘기가 좀 더 남아잇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책, 225p

정작 그 전날, 벨기에 국왕은 전군에 각지의 주요 교통시설을 침략군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파괴할 것을 명령했고, 다음날 독일의 침공에 맞서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독일은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벨기에에서 쓸모없는 시간을 약간이나마 잡아먹었고, 약간의 병력을 손실했으며,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이용하리라 예상했던 벨기에의 교통시설을 전혀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벨기에 침공은 영국의 여론을 완벽하게 대독 적대적으로 돌려서 참전의 명분을 주었다는 결정적 실수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다룰 주제는 아니니 제외하죠.)

이 말이 무슨 의미냐고요? 보급이 안 된다는 겁니다.(...) 철도가 완전 파괴된 이상 보급은 철저히 일반 도로교통에 의존해야 했고, 독일 본국에서 벨기에를 거쳐 머나먼 전선으로 향하는 보급의 사정은 최악을 향해 치닫습니다. 원래 보급과 거리가 쀍만광년이었던 개전 초 러시아 군이야 그렇다 치고, 마른 전투 직전이 되면 독일군은 당장 며칠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투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파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보급부대가 움직여야 할 길이는 그만큼 길어졌고 전선의 병사들의 사정도 나빠졌죠.

(전략) 배고픔이 그들(독일군)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벨기에의 교량과 철도 터널이 파괴되는 바람에 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자신들의 보급선을 이미 앞질러 버렸다. 보수 작업은 철도 보급종점을 군대의 진격 속도에 맞출 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예를 들어 철도 노선이 집중되어 있던 나무르의 교량은 9월 30일까지도 수리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책, 621p

그리고 여기에 3개 군단의 투입? 그 3개 군단이 전투력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제1차 마른 전투에 결정적 기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3개 군단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보급이 저렇게 개판 오분전인데 추가되는 3개 군단의 보급은 제대로 될 수 있을지 과연 장담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보급사정만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며칠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비틀거리는 병사라면 1개 대대건 1개 사단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독일 2제국군이 정신력 제일주의로 단결한 일본군도 아니고.(...)

"우리 병사들은 녹초가 되었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걸었고, 얼굴은 먼지로 뒤범벅이었으며, 군복은 누더기였다. 그들은 살아 있는 허수아비 같았다. (포격으로 구멍이 뚫리고 쓰러진 나무로 가로막힌 길을 하루 평균 24마일씩 4일간이나 행군한 뒤라) 그들은 잠들지 않도록 군가를 합창하며 눈을 감고 걸었다. 오로지 승리가 임박했다는 확신과 파리로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그들은 계속 걷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그들은 지쳐 쓰러져 그곳에서 그냥 잠들었을 것이다."
같은 책, 622p - 독일군 장교의 9월 2일 일기 내용

만약 저 3개 군단이 마른 전투가 아닌, 전역 초기 프랑스군 주력에 대한 포위시도에 투입되어 성공했다면...이라는 전제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역 초기도 아니고 "마른 전투"에 한정한다면 저 3개 군단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보급이 안 되는 3개 군단은 독일군에게 더 커다란 인명피해만 안겨다 줄 뿐입니다.



3. 마른에서 이겼으면 전쟁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많이들 간과하는데 과연 마른전투 이후로 서부전선이 종결될까요?(...)

마른 전투 이전에 프랑스는 이미 정부를 보르도로 옮겼습니다. 즉, 파리 함락을 각오했다는 겁니다.(...) 아니, 아예 기정사실화했죠-_-;; 파리 시내에서는 시가전 준비 중이었습니다. 설령 마른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독일군은 파리 시가전을 한 번 더 치뤄야 했습니다. 독일에게 중요한 건 국지적 전투의 승리나 파리 함락이 아닌 적 주력부대의 섬멸이었고, 개전 이래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나아가긴 했지만 주력부대 섬멸에는 늘 실패했습니다. 설사 마른에서 패해도 파리 시가전을 치뤄야 했고, 파리를 함락한다 하더라도 프랑스군 주력을 섬멸하지 못하면 다시 새로운 전투를 해야 한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마른 전투 이전인 9월 5일, 연합국의 핵심 3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런던 조약을 체결합니다. 런던 조약은 가맹한 3국 중 어느 1국이 독자적으로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강화 및 종전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이 조약때문에 러시아는 친독파의 강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끝까지 휘말리다가 혁명을 맞이했죠.

즉, 이 시점에서 마른 하나 이긴다고 슐리펜 계획대로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3개 군단의 차출을 마른전투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 것도 무리일 뿐더러, 설사 마른에서 이긴다 해도 프랑스 군이 계속 항전하는 이상 독일은 서부전선의 병력을 동부전선으로 돌릴 수 없는 겁니다. 동부전선으로 병력 대대적으로 돌리려면 다시 점령지 토해야죠.(...)

덧글

  • 슈타인호프 2008/09/29 12:46 # 답글

    저같은 경우에도 같은 이유에서 슐리펜 작전의 성공 가능성 자체를 상당히 낮게 보고 있습니다. 데프콘 카페 때려치우고 나온 것도 그것 때문에 싸운 탓이었죠.
  • Ladenijoa 2008/09/29 12:51 #

    저도 그때 같이 싸우다 뛰쳐나왔잖습니까 ㅋㅋ
  • 저거노트 2008/09/29 12:55 # 답글

    역시 모든 전쟁에서 보급은 필수군요.
  • Ladenijoa 2008/09/29 13:01 #

    보급없는 군대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중세까지는 어느 정도 규모의 군대는 현지 자체조달(약탈)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고 이게 근대까지도 어떻게든 이어졌습니다만...

    현대 들어서면서 보급물자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약탈로는 획득할 수 없는 물자가 크게 늘었고, 그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보급 없이 이긴 사례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 행인1 2008/09/29 13:06 # 답글

    러시아가 독일의 예정^^; 보다 4주나 빨리 근거지에 쳐들어온 샘이 되는군요. 아마 3개 군단이 아니라 그 이상도 빼고 싶었을지 모르겠습니다.
  • Ladenijoa 2008/09/29 13:11 #

    제가 참고한 책에서는 독일 전쟁지도부에서 처음부터 3개 군단 + 1개 기병 사단을 증원하기로 했다고 나오는군요. 그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지 않습니다만 벨기에의 요새지대 공략 이후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한 병력을 돌린 듯 싶습니다.

    아마 서부전선에서 빼낼 수 있는 최대치를 단번에 돌린거 아닌가 싶은데 좀 더 알아봐야 할 듯 싶네요.
  • 레인 2008/09/29 13:36 # 답글

    보급선 끊긴 군대는 절대 이길수 없다..라는 진리를 생각하니 갑자기 양씨가 생각나는건;;
  • Ladenijoa 2008/09/29 15:39 #

    양씨라.. 누구를 의미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생각나는 사람은 많은데요^^ (제일 먼저 양 웬리가;;)
  • 레인 2008/09/30 12:53 #

    그 양씨 맞습니다;;
  • 구데리안 2008/09/29 16:24 # 삭제 답글

    단지 한가지 의문점인데..

    슐리펜 계획이라는게 원안이 그랬던가? 내가 알기로는 알자스 로렌을 "덫"으로 삼고 독일 내륙으로 끌어드린다음 "수확하는걸로" 알고있는데...

    물론 슐리펜장군보다도 더 슐리펜 스럽게 해버린 탓에 왜곡먹은것도있지만...

    그것도 그렇고, 한가지 IF인데, 만약에 프랑스 그때 계획처럼 끌어들려진후 수확 당한뒤에 프랑스가 독일군을 저지할 역량을 가지고 있었을련지 의문.

    물론 전쟁은 프랑스 전역이 독일에 넘어갔더라도 연합군의 승리로 (투명 미군...)끝났겠지만 아마 전쟁 기간은 더 길어 질수는 있었겠지.
  • Ladenijoa 2008/09/29 16:36 #

    원안뿐만 아니라 실제 그 시점에서도 알자스 로렌은 덫이는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알자스 로렌 방면의 독일군도 공세로 나섰다는 거.(...) 끌어들여야 하는게 원래 계획 맞는데 도중에 수정되어서 이쪽 방면에서도 독일이 공세로 전환했음-_-;;

    때문에 해당지역의 프랑스 1, 2군이 공세에서 방어로 전환했고, 끝내 돌파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파리에 구원을 보낼 수 있었음. 이거덕분에 마른에서 프랑스가 이긴 거라는 게 바바라 여사의 주장... 뭐 다른 자료도 좀 더 참고해야 겠지만... 일단 책 하나로는 이런 결과가 나옴.

    그리고 제기한 If대로, 프랑스 주력에 대한 대규모 포위섬멸이 가능했으면 프랑스는 독일을 저지할 역량이 없는게 맞아. 문제는 독일군이 마른까지 진격하는 동안 그 포위섬멸을 끝내 하지 못했다는 거고.

    그리고 프랑스가 그렇게 나가떨어졌으면 아마 연합국 GG쳤어야 함.(...) 영국은 지상군이 매우 부족했고, 서부전선 지상전을 사실상 홀로 담당하던 프랑스가 그렇게 개털린다면 러시아는 결코 독일-오스트리아 양국 상대로 전쟁수행 못하니까.
  • 들꽃향기 2008/09/29 16:55 # 삭제 답글

    철도와 전신과 같은 기술의 발전과, 상대방의 동원능력, 그리고 의지를 과소평가 했다는 점에서 이미 슐리펜 계획은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동부전선에 3개 군단을 증파한 만큼이나 주요하다고 보는 것이, 아직 함락되지 않은 안트베르펜 등의 벨기에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서 벨기에를 통과한 5개 군단 중에서 한개의 군단도 '명목상으로는' 차출되지 않았지만, 각 군단마다 병력을 일부씩 차출해냄으로서 실제 벨기에를 통과한 독일 군단의 수는 줄어있었던 것도 전투력 저하의 원인 중 하나라 봅니다.

    더욱이 슐리펜도 예상 못했던 바이겠지만, 파리의 문턱까지 다다렀을때 독일군의 보급난과 통신의 혼선, 피로도 등은 극에 달해있었습니다. 때문에 사실상 파리를 점령했다 해도, 새로 편성된 제 6군과 로렌에서 이동해온 병력으로 예비대를 충분히 마련해 두고 있었던 조프르 장군이 "파리를 내어주고 프랑스를 구한다."라는 방침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던 이상, 파리를 얼마나 점령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 Ladenijoa 2008/09/29 17:32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철도, 전신 등 기술 발전이 아니었으면 슐리펜 계획 자체의 대전제인 서부전역 종결 이후 내선의 이점을 활용한 동부전선으로의 재배치가 매우 오래 걸려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죠.

    말씀하신 벨기에 돌파전 와중에 소모된 병력 및 보급품, 그리고 누적된 피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죠. 저도 포스팅에서는 약간의 병력...이라고 적긴 했습니다만 말이 약간이지 사실 벨기에에서 생긴 사상자는 사단급 편제 서너 개는 만들 정도니까요. 거기에 앤트워프 방면의 벨기에 군과 대치 중인 병력도 있고...

    사실 슐리펜 계획 및 마른 전투는 3개 군단의 유무보다는 프랑스 주력군에 대한 포위섬멸 및 알자스 로렌에서 예정대로 패퇴(?)하고 후퇴하는 기동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프랑스 군이 계속 패퇴는 하면서도 섬멸은 안 당하고 후퇴했는데 1개 군단 정도만이라도 마른 이전에 포위섬멸이 가능했으면 독일에 일말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If일 뿐이네요^^
  • 델카이저 2008/09/29 20:11 # 삭제 답글

    저도 슐리펜 계획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1. 우선 원안대로 북쪽에 그렇게 많은 병력을 집중시켰을 때 과연 그 보급을 감당할 수 있느냐이고..

    2. 댓글 도중에 나왔지만 바이에른 왕세자님께서 자기 영지를 침략군에게 내주기 싫다고 프랑스군을 끌어들어야하는 임무를 오히려 멋지게 방어해 내고 반격까지 해버렸다죠..-_-;;

    3. 차량동원에서 프랑스가 훨씬 우세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2선 방어선이 형성되는게 독일의 진격속도보다는 빨랐을 겁니다. 너무 크죠.. 기동거리가.. 강도 몇 개나 건너야 하구요..

  • Ladenijoa 2008/09/29 20:23 #

    1. 그 보급을 감당하려면 아마 엄청난 수의 트럭이 필요하겠죠. 아니면 철도를 무사히 접수하거나(...)

    2. 알자스-로렌 전역의 그 공세는 정말 답이 안 나오죠.-_-;; 차라리 뚫기라도 했으면 혹 모르겠습니다만 돌파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3. 아무래도 프랑스 본국에서의 전쟁이다 보니 프랑스가 이래저래 동원능력이나 여러 면에서 유리점이 많았지 않나 싶습니다.
  • 【天指花郞】 2008/10/01 13:07 #

    뎁콘의 그 양반은 '뒤에서 쉬고 있던 부대가 앞에서 쉬는 부대 초월해 보급해 주면 된다'와 '현지조달 하면 된다'고 왈왈댔던 OTL
  • 【天指花郞】 2008/10/01 13:08 # 답글

    러시아가 예상 외로 동원이 빨라지자 독일이 급히 대규모 방어 계획을 세웠다

    독일군의 보급사정은 마른전투 직전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이미 '한 뼘 내주고 두 대 친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동용 세계사 만화책'에도 나오는 내용들 OTL
  • deokbusin 2008/10/26 05:44 # 답글

    비평문을 올려 주셨군요. 너무 기쁘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한 번 인사를 드리진 않았습니까(가물가물--;;;)?
  • Ladenijoa 2008/10/26 15:17 #

    어익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랙백도 날리지 않고 그냥 묻혀서 글쓴 점 양해드립니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ㅅ-;; 댓글 검색 기능도 없고(...)
  • 아스몽 2015/04/26 09:26 # 삭제 답글

    슐리펜 작전부터가 정작 수립자인 슐리펜 경마저
    중간에 아 서부쪽에 몰빵해서 프랑스 치는 것까진 좋은데
    프랑스를 완전굴복 시키는 게 생각해보니 이래저래 막히는데
    나로선 해결이 안난다, 후임들이 알아서 해줭! 하고

    미완성된 작전이었는데 독일군 수뇌부는 별 수정도 안하고 그대로 적용시켜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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