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세계사 (12) - 태평양전쟁 History

이 태평양 전쟁 말고

사실 많은 분들이 태평양전쟁이란 단어를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 (주로) 미국과 일본에 의해 수행된 1941~1945년의 아시아-태평양 전선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이 터지기 약 60여 년 전에 또 다른 태평양전쟁이 있었습니다. 칠레와 페루-볼리비아 동맹군 사이에서 일어난, 동남 태평양 일대에서 일어난 태평양 전쟁이 바로 그것이죠.

바로 이 전쟁
태평양 전쟁 (1879~1883)

1. 배경
19세기 초반, 스페인 제국의 라틴 아메리카 식민지배는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스페인 식민제국은 여러 개의 독립국가들로 분열됩니다. 북쪽의 멕시코부터 시작해서 중앙 아메리카 연방(이후 다시 여러 나라로 분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으로.

이러다 보니 신생독립국들은 당장 각 국가별로 명확한 국경선조차 그어지지 않는 지역도 있었고, 각지에서 영토분쟁이 있었습니다. 칠레는 아르헨티나와 파타고니아(Patagonia) 일대를 둘러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도 주변국과 한두 개씩은 영토분쟁이 있었죠. 거기다 각 지역별로 원주민들 및 이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울러 서로간의 군비 경쟁도 있었습니다. 주요 경제권이 대부분 태평양 연안이던 페루-볼리비아-칠레 3국은 해군력 경쟁에 열심이었고, 특히 페루가 제일 먼저 해군력을 강화하며 장갑함 2척을 사들이자 칠레 정부도 영국에게 함선을 주문하는 등 3국간 군비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칠레 해군 코크레인(Cochrane)

코크레인의 등장은 중남미 해군 경쟁의 추를 단번에 칠레 쪽으로 기울게 하였다.

한편 칠레가 영국으로부터 장갑함 코크레인을 들여온 것은 판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당장 해상력에서 칠레가 앞서게 되면서 페루는 볼리비아에게 강경태도를 누그러트리고 협상할 것을 권고했으며, 칠레의 또 다른 가상적국 아르헨티나의 대 칠레 강경일변도 정책을 크게 완화시키게 됩니다.

2. 개전의 원인
하지만 직접적인 배경은 역시 경제 및 초석 문제입니다. 1876년, 칠레는 아니발 핀토 가르멘디아(Anibal Pinto Garendia) 대통령 시대를 열게 됩니다만 이와 동시에 대대적인 경제위기에 봉착합니다. 국채의 누적과 세금의 과중으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칠레 정부는 은행수표의 불환성을 명문화하고, 군비예산을 삭감하며 공무원의 임금도 줄였습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아니 그것보다 왜 여기서 당신이?

경제위기는 주변국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볼리비아는 일라리온 다사 장군의 쿠데타(1876)를 전후로 심각한 재정위기에 봉착합니다. 볼리비아 정부는 재정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초석에 수출세를 부과했는데, 문제는 볼리비아 내의 초석광산은 대부분 칠레인들 및 칠레계 회사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들은 수출세 납부를 거부했고 볼리비아 정부는 이를 빌미로 칠레인들을 추방하고 초석광산을 점유, 수용합니다.

이는 1866년 및 74년 양국간 체결된 조약의 위반이었습니다. 1874년 조약에서 볼리비아는 자국 내 칠레기업 및 칠레인들에게 향후 25년간 과세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볼리비아는 알아서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더군다나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은 칠레인들에 의해 주로 건설, 개발되고 도시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 초석 및 구아노, 은광 등을 찾아내고 개발한 건 칠레인들이었고, 볼리비아의 조약파기를 본 칠레 내부에서는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을 이참에 차지해야 한다는 강경여론이 드세집니다. 특히 볼리비아가 안토파가스타(Antofagasta) 주에서 본국으로 연결되는 철도를 개통, 통제력을 강화하자 이들의 불안감은 더욱 더 높아져만 갑니다.

때문에 칠레는 군을 파병해, 1879년 2월 14일, 볼리비아령 안토파가스타를 점령합니다. 볼리비아는 3월 1일 칠레에 전쟁을 선포했고, 중재를 시도하던 페루는 칠레가 중재를 거부하자 볼리비아와 맺은 비밀 공수동맹에 의거하여 칠레에 전쟁을 선포합니다. 페루 역시 국가재정 문제로 1872년, 칠레인이 지배하던 자국 내 구아노 개발을 죄 국유화하면서 칠레와 마찰을 빚고 있었고 볼리비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던 터라 1873년, 볼리비아와 비밀 공수동맹을 체결했었습니다.

3. 전쟁의 흐름
볼리비아-페루 연합 육군은 1879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개시된 지상전에서 패전에 패전을 거듭합니다. 특히 돌로레스-타라파카의 연전에서 연합군은 칠레에게 패해 가장 중요한 볼리비아의 태평양 연안 및 초석산출지역을 통채로 상실하기에 이릅니다. 1880년 로스 앙헬레스 요새가 함락되고 5월 26일 타크나가 함락되면서 전쟁의 전반기가 종식됩니다.

타크나 함락을 계기로 볼리비아 군은 더 이상 전쟁수행능력을 잃고 안데스 산맥 넘어 본국으로 철수합니다. 칠레와 페루도 더 이상 전쟁수행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승리를 거둔 칠레군이 한결 유리한 입장이었고 그 기세를 몰아 칠레는 페루 남부 엘 모로 요새를 함락(6월 7일)하여 페루를 강력히 압박합니다.

한편 5월 18일 이키케(Iquique) 해전에서 처음 교전을 벌인 양국 함대는 서로 승부를 가리지는 못했지만 페루가 주력함 2척 중 1척을 잃은 반면 칠레는 구형 및 소형함들만 투입하여 실제 전력에는 거의 피해가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후 잔존 함정으로 칠레에 대한 통상파괴 및 해안포격전을 단행하던 페루 해군은 칠레 해군 주력함대에 만납니다. 페루 함대 사령관 미겔 그라우 제독이 전사하고 기함이자 1척 남은 주력함인 Huáscar은 칠레 해군에게 항복합니다. 이후 칠레 해군은 나포한 Huáscar를 수리하여 자국 함대에 편입, 전력을 강화합니다.(안가모스[Angamos] 해전)

페루 해군 총기함 Huáscar
사령관 미겔 그라우 제독의 전사 이후 항복, 노획되어 수리 후 칠레 해군에 편입된다.

미겔 그라우(Miguel Grau) 1834. 6. 27 ~ 1879. 10 8
페루 해군 사령관, 지상군 지휘관들에 비해 상당히 잘 싸웠고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전분투하였으나 날아온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바다의 기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평판은 매우 좋았다.

이후 미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으나 양측의 의견차가 너무 커 협상은 실패합니다. 특히 페루, 볼리비아 양국에서 패전의 여파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하는 동 혼란도 심했죠. 

(한편, 이 무렵 미국이 중심이 된 중재시도는 여러 난항을 겪습니다. 협상이 성사되기 이전, 미국의 중재 시도는 칠레로부터 다음과 같은 차가운 반응을 불러 일으키죠.


예전에, 길 잃은 어린양님이 포스팅하신 내용인데, 칠레 해군은 영국으로부터 들여온 장갑함의 위력을 과신하며 미국을 무시할 정도였습니다. 뭐, 결국엔 중재를 받아들이긴 했지만요.)

때문에 칠레는 사실상 전열에서 이탈한 볼리비아 대신, 아직도 전력을 추스리고 있는 페루를 향해 최후의 일격, 즉 수도 리마에 대한 공략을 고려하게 됩니다. 칠레의 내부 여론은 한결같이 리마 공략을 요구하고 있었고, 언론과 의회도 이를 지지, 칠레는 무려 42,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리마 공략을 위해 출격시킵니다. (당시 칠레 인구는 200만에 불과했습니다.)

칠레군도 전쟁의 전반기동안 손실이 컸으나 잠깐의 휴식기를 통해 보충이 된 상황이었고, 이들은 아무런 장애 없이 해안을 따라 리마로 쾌속진격했습니다. 리마 근교의 초리요스, 마라홀로레스 방어선이 짧은 전투 끝에 돌파당했고, 1881년 1월 17일 페루의 수도 리마는 칠레 원정군의 손에 떨어집니다.

4. 전쟁의 결과

칠레는 개전 이전 볼리비아와 맺은 남위 24도 국경선을 훨씬 초월하여, 볼리비아의 모든 태평양 연안 지역을 점령하고 나아가 페루의 남부 지역까지 점령했습니다. 1929년 페루에게 Tacna 지역을 반환하긴 했으나 여전히 칠레는 볼리비아의 안토파가스타, 페루의 타라파카(Tarapaca), 아리카 지역을 모조리 지배하고 있습니다. 남위 24도에 있던 국경선은 어느덧 남위 18도 근처까지 올라가게 된거죠.

칠레는 이들 지역의 확보로 초석 및 은, 구아노 등을 거의 독점개발하면서 막대한 부를 챙기고 전비문제를 해결하며 군비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칠레는 이들 지역의 병합으로 1879년 1,500만 페소에 불과하던 세입이 1885년에는 6,400만 페소로 급증합니다.) 이 때 이후로 지금까지 칠레는 중남미 태평양 연안국 중 가장 강력한 군사력, 특히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페루는 이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페루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고 3년동안 칠레군의 지배를 받아야 했으나 볼리비아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볼리비아는 이 전쟁의 결과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상실했습니다. 내륙국이 된 거죠. 이후 볼리비아는 안토파가스타 州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며 칠레와 계속 대립했고 파라과이 방면을 통한 대서양 진출도 시도하지만 모두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티티카카 호수를 기반으로 해군 조직을 유지, 바다로 나가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죠.

티티카카 호수의 볼리비아 해군
내륙국이 된 이후에도 볼리비아는 계속 해군을 유지 중이나 실상은 저런 소형함정 몇 척과 세스나 기 일부가 전부다.

칠레도 잃은 게 있었습니다. 우선, 전쟁기간 동안 전 병력을 대 페루전쟁에 투입했던 터라 남부 아라우카니아에서 마푸체 족 등 원주민들이 중앙정부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한동안 이를 진압하지 못하면서 남부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했던 거죠. 이들에 대한 토벌은 1882년까지 계속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파타고니아의 상실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전쟁기간 줄곧 볼리비아와 페루측에 가담해서 참전하겠다느 위협을 하며 칠레의 배후를 위협했고, 더 이상 전쟁을 확대할 여력이 없던 칠레는 결국 아르헨티나와 1881년 국경조약을 체결하여 파타고니아를 아르헨티나 영토로 공식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뭐, 당장 돈이 되는 안토파가스타 + 타라파카를 획득했으니 그정도 양보는 할 수 있었겠죠.

전후 중남미의 국경선 변화
칠레는 볼리비아로부터 안토파가스타 州를, 페루로부터 타라파카 州, 아리카 州를 획득하였고(붉은색 빗선), 반대로 아르헨티나에게 광대한 파타고니아의 지배권을 인정해야 했다.(파란색 빗선)

참고문헌
칠레사 (강석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3)

덧글

  • 슈타인호프 2008/10/18 22:36 # 답글

    예전에 어린양님이 이 전쟁과 관련하여 미국 함대와 칠레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포스팅하신 적이 있었죠. 그것도 링크해 두시면 어떨까 싶은데...^^
  • Ladenijoa 2008/10/18 22:51 #

    예, 해당 시기 부분에 찾아서 링크해 두었습니다.^^
  • 【天指花郞】 2008/10/18 23:16 # 답글

    내 기억하기로 파타고니아 지방은 말먹이는 것도 잘 안 되는 황무지라고.... -ㅁ-;;

    근데 이키케에서 침몰한 페루 함정은 뭐에 침몰한거라오? 설마 충각?(근데 저거 장갑함인가)
  • Ladenijoa 2008/10/19 12:50 #

    파타고니아 황무지 맞죠. 그냥 유목이나 좀 할 뿐 데굴데굴

    페루 해군 인디펜덴시아의 격침은 좀 불명확한데, 항복 후 접수의 여력이 없던 칠레군이 격침시킨 게 아닌가 싶고, 암초에 걸려 침몰했을수도 있솧;; 장갑함은 아니옿
  • BigTrain 2008/10/18 23:51 # 답글

    페루는 괜히 의리를 지켰다가 그 귀한 구아노 광산만 상실했군요. 전형적인 연루의 위험 사례네요. --;
  • Ladenijoa 2008/10/19 12:51 #

    페루로선 볼리비아가 무너지면 다음엔 자국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했죠. 특히 볼리비아의 안토파가스타 州를 상실하면 칠레는 페루와 국경을 접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노력이었습니다만 결과는 안 좋았으니;;
  • 윙후사르 2008/10/18 23:58 # 삭제 답글

    페루는 괜히 끼어들다가 아주 제대로 작살이 났군요. 여담으로 당시 페루내부 게릴라들이 나라를 모조리 접수한 칠레에 저항을 하다가 칠레군에게 괴멸됬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는데 그럼 파타고니아는 국경조약 이전엔 어떤 상태였나요?
  • Ladenijoa 2008/10/19 12:52 #

    페루 게릴라들은 힘도 못쓰고 개털렸죠.

    파타고니아는 그 이전까지 서로의 영유권 주장만 있지 그 누구도 통치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어려운 지역이었습니다. 거주인구는 거의 없고 땅은 매우 광활했는데 교통편은 부실하고...
  • 함부르거 2008/10/19 00:20 # 답글

    칠레의 나라 모양이 지금 같은 꼴이 된 게 이런 사연이 있던 거군요.
  • Ladenijoa 2008/10/19 12:52 #

    예, 전형적인 전쟁으로 인한 영토확대의 예죠
  • 파도지기 2008/10/19 00:22 # 답글

    좀 지난거지만 학생때 지리부도를 보니
    파타고니아 광대하긴해도
    대부분이 강수량 250미만, 인구밀도 1미만에
    소,양의 방목이 농업중심이군요.
    뭐 남위 40이하 지역이니...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점령한 파타고니아를 발판으로
    나중에 포클랜드까지 먹으려다 뜨거운 맛을 한번 봤으니
    그것도 일장일단이랄까요..
  • Ladenijoa 2008/10/19 12:54 #

    파타고니아는 그냥 남서대서양 어장의 확보 측면 및 유목, 관광 등에나 이득이지 실제 큰 돈이 되는 땅은 아니죠.

    그러고보면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 전쟁 때 해당 지역의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스페인 식민제국을 이어받았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당장 해당 지역은 스페인조차 제대로 영토로 확립 못한 곳이니...
  • 저거노트 2008/10/19 11:34 # 답글

    호오, 칠레가 저때 의외로 건실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군요.
  • Ladenijoa 2008/10/19 12:53 #

    중남미 최강의 해군국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 【天指花郞】 2008/10/19 11:58 # 답글

    또 메인 오른걸 축하하오
  • Ladenijoa 2008/10/19 12:54 #

    얼음집 시스템이 아주 심각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하옿
  • Empiric 2008/10/19 12:56 # 삭제 답글

    Cochrane은 코치레인이 아니라 코크레인이 맞을 겁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유명한 제독이죠.
  • Ladenijoa 2008/10/19 12:58 #

    어익후 감사합니다. 곧 수정하겠습니다.
  • 행인1 2008/10/19 13:48 # 답글

    볼리비아가 내륙국이 된 사연이 이랬군요.
  • Ladenijoa 2008/10/19 18:59 #

    예, 볼리비아는 이후 칠레에게 영토반환을 요구하고 파라과이와 전쟁을 치루는 등 바다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죠.
  • 레인 2008/10/19 15:59 # 답글

    역시 칠레 하면 생각나는건 '동서 분쟁이 나면 전선이 참 볼만하겠다'라는 생각뿐;;

    덧. 만에 하나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철책 세우고 철거하는 공사는 세기의 대공사 1,2위에 들어갈지도(...)
  • Ladenijoa 2008/10/19 19:00 #

    아르헨티나 국경이 안데스 산맥에 걸쳐있는지라 전쟁나기 참 힘들 겁니다 ㅎㅎ
  • 개발부장 2008/10/19 20:37 # 답글

    으ㅡ 역시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칠레 해군 정도는 해군 취급이 안돼요--;;
  • Ladenijoa 2008/10/20 11:58 #

    무시할 수 없는게, 칠레 해군은 상당히 견실하고 경험도 많이 축적된 정예 해군입니다.
  • 개발부장 2008/10/20 12:25 #

    그러니까 그런 걸 볼 줄 알아야 하는데, 삐까번쩍한 장비빨에만 눈이 간다는 거죠. 이래선 안되는데.
  • 심재호 2008/10/21 18:00 # 삭제 답글

    하기사, 칠레 최초 해군 사령관이 영국 해군 예비역 중령이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가 칠레 쪽이 더 어울린다는 기분이 몇년 전에 몇개월 간 계속되었더니만.....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특수부대 후방 침투 협조 및 피노체트가 영국 수상이었던 대처의 보호를 받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군요...]
  • 기우 2011/03/04 03:28 # 답글

    한 가지 틀렸습니다. 마푸체 족이 한 건 반란이 아니라 정복자에 맞선 전쟁이죠. 칠레 정부에서 "멋대로 저긴 우리 땅이다!"라고 지껄였다고 거기가 그대로 칠레 땅이 되는 것 아닙니다. 실제로 칠레 군대는 19세기 중반부터 마푸체 땅 정복 작전에 나선 것이며 남부에 대한 통제권 상실을 겪은 것이 아니라 마푸체 땅을 정복해서 '남부'와 '남부에 대한 통제권'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땅은 원래 칠레 땅이 아니라 왈마푸(Wallmapu)라는 마푸체 민족의 땅이었으니 말입니다. 강석영 씨가 별 다른 비판 의식 없이 쓴 칠레사 책을 너무 믿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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