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History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에서 이어지는 연재물입니다.

본래 각 년도별 올해의 인물에 대한 정보 찾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1937~1946년은 시기가 시기라서 그런지 제가 아는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빨리 올리게 되네요. 1947~1956년은 예상대로 꽤 오래 걸릴 듯 싶습니다만;;;



1937년 - 장제스
Chiang Kai-Shek 1887. 10. 31 ~ 1975. 4. 5
1937년 - 쑹메이링 Soong May-ling 1897. 3. 5 ~ 2003. 10. 23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은 침략하는 쪽보다 침략당하는 쪽을 선정하는 경향이 크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켜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 전쟁을 개시한 일본에 맞서, 사실상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받고 있는 난징의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수반인 장제스와 그의 아내 쑹메이링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5대 전승국이자 열강 중 유일한 비서구 국가인 일본제국에 맞서기에는 중국은 너무 허약해 보였으나, 장제스는 결연한 의지로 항전을 선언했고, 그의 부인 쑹메이링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사교계의 연줄을 바탕으로 유럽 및 미국 사회에서 일본의 침략을 널리 알리고 중국에 대한 원조를 요청하는 활발한 외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미 일본이 만주에 괴뢰국을 세운 이래 그 침략야욕을 강화하며 중국과 전쟁을 시작한 상황에서, 미국 및 유럽 국가와 일본과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어 있었고, 당연히 이들의 여론도 일본에 비판적이었으며 반대로 중국에 대한 동정여론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이 때, 쉽게 굴복하지 않고 일본에 맞서겠다고 선언한 장제스 부부는 타임지의 193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죠. 아울러 올해의 인물 선정 사상 첫 복수인물 선정이자 부부를 선정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내용이 길으니 1938년도부터는 가리겠습니다. 보실 분은 밑의 이어지는 내용을 클릭해 주세요.


1938년 -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 1889. 4. 20 ~ 1945. 4. 30


1933년 총리 취임, 1935년 재군비 선언과 1936년 라인란트 진주라는 최대의 이벤트를 벌이시고도 올해의 인물이 되지 못하셨던 총통 각하지만 1938년에는 감히 총통 각하를 따라올 이슈, 뉴스메이커가 없었습니다. 총통 각하가 마침내 전세계급 인물로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하십니다.

1938년 3월 12일, 독일의 오스트리아 진주 및 병합을 시작으로 히틀러는 체코 위기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농락하며 거세게 밀어붙이며 결국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총알 한 방 쏘지 않고도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주테텐란드를 할양받고 이를 유럽 열강들로부터 멋지게 인정받았습니다.

아울러 당시 유럽에서는 뮌헨회담에 참석한 4국 정상을 유럽 평화를 지킨 정치인들...로 인식하는 경향도 강했는데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틀러 총통은 강압적으로 약소국의 영토를 뜯어 먹고도 평화를 지킨 인물 중 한 명으로 각광받고 다 죽어가던 독일을 멋지게 되살렸으며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하였으니 1938년에 히틀러 이상가는 뉴스메이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1939년 - 요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9. 12. 21 ~ 1953. 3. 5


지난 연재분에서 1935년 올해의 인물인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타임지가 침략하는 쪽보다는 침략당하는 쪽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습니다만 1939년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핀란드의 최고사령관 만네르하임 정도가 올해의 인물이 되었겠죠.

1939년 8월, 전격적인 독소 불가침조약의 체결로 전 세계, 특히 유럽을 경악에 빠트리게 한 강철의 대원수 동지의 야망에 따라 이루어진 겨울전쟁, 핀란드 침공은 개전 1주일이 지나면서 소련군이 고전을 하기 시작하고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한 핀란드 군의 역습과 소련군의 무능함이 겹쳐지면서 곳곳에서 진격이 정지되고 투입 부대가 괴멸되거나 고립되는 등 온갖 수모를 겪으며 대참패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타임지의 요시프 스탈린 선정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보통같으면 침략당하는 쪽인 핀란드 인들을 선정했겠지만, 1939년 12월 기준으로 막강한 군사대국 소련은 얕보고 있던 북유럽의 약소국 핀란드에게 대참패를 거듭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 스탈린 선정의 이유는 조롱이었습니다. 침략자에 대한 조롱의 메시지로서 강철의 대원수 동지는 굴욕적인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한편, 1939년 올해의 인물이 스탈린인 걸 보면, 당시 미국에서 유럽에서 터진 전쟁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듯 싶다는 인상을 줍니다. 독일과 영국-프랑스가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었지만 서부전선에선 앉은뱅이 전쟁이 지속되었으니 곧 전쟁이 끝날 거라는 기대를 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1940년 -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 11. 30 ~ 1965. 1. 24


1940년은 영국에게 있어 매우 힘들었던 해입니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전역에서 패전하고 동맹국 프랑스를 잃었으며 유럽대륙에서 쫓겨나, 홀로 독일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영국 지상군은 각지에서 참담한 패배를 면치 못했고, 이들은 결국 덩게르크에서 몸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곧 영국을 공격할 것처럼만 보였고, 실제 8월부터 영국 본토 항공전이 시작됩니다.

전쟁이 터지고 내각에 입각한 윈스턴 처칠은, 노르웨이 전역 패전의 책임을 체임벌린에게 돌려 그를 물러나게 한 후 수상에 취임합니다.(1940. 5. 10) 그는 대륙에서 패하고 영국 홀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항복을 거부했고, 우리가 바칠 건 오직 피와 땀뿐이라는 연설로 결전의 의지를 부르짖습니다.

그의 의지대로, 영국 공군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영국 본토 항공전을 승리로 이겨냈고영국인들은 독일의 본토 침략 야욕을 막아냈습니다. 영국 본토 항공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처칠은 전시 구국내각의 수반으로서 대 독일 전쟁을 진두지휘했고, 대독 항쟁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영국에 우호적이었던 미국(그리고 타임지) 입장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보다 우호국인 영국의 수상이자 침략을 막아낸 윈스턴 처칠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수 밖에요.


1941년 -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 1. 30 ~ 1945. 4. 12


11월까지만 해도 F.D.R이 올해의 인물이 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F.D.R은 영국과 소련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영국에 대한 우호적 중립을 유지했고, 대서양에서 U-Boat에게 자국 구축함이 공격받아도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명분만 주어진다면 참전할 수 있었으나 F.D.R은 중립을 유지했고,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결국 1941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은, 함락될 것만 같았던 모스크바를 지켜낸 소련의 지도자 요시프 스탈린이 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침략을 막아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전년도의 윈스턴 처칠과 같은 입장이었죠. 그러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다시피 대일본제국은 1941년 12월 7일, 선전포고 이전에 진주만을 전격 공격하며 대 미국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F.D.R은 즉시 결연한 의지로 일본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미국은 국가총력전 태세로 전환됩니다. 뒤이어 독일과 이탈리아가 삼국 추축동맹에 따라 미국에 선전포고하자 역시 이들 양국에 선전포고, 유럽에서도 전쟁에 개입하게 됩니다. 영국과 소련이 북아프리카와 동부전선에서 수세에 몰리고 있던 그 무렵, F.D.R에 의한 미국의 참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아울러 전시체제가 되어 국가총력전 태세에 돌입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입장에선 개전을 결의한 자국 대통령을 영웅으로 띄워줄 필요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F.D.R은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에 세 번째로 선정됩니다.


1942년 - 요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1879. 12. 21 ~ 1953. 3. 5

(1939년 선정자이므로 이미지 생략)

3년 전에는 굴욕의 의미로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신 강철의 대원수지만 이번에는 서방세계가 보내는 찬사의 의미로서 선정되며 3년 전의 굴욕을 통쾌하게 씻어냅니다.

1941년 6월, 독소전 개전 이래 대참패를 당하고 42년 들어서도 제2차 하리코프 전투의 참패와 독일군의 하계 대공세로 스탈린그라드를 함락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소련은 말 그대로 총력을 다해 독일군과 처절하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준비한 대반격작전을 개시하죠.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대반전이 일어나는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의 독일 제6군이 고립되면서 전국은 역전되었고 소련의 동맹국들은 마침내 독일에게 처음으로 최대의 군사적 패배를 안길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감에 들뜨게 됩니다. 독일군의 구원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러한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타임지는 스탈린에게 독일의 침략을 막아낸 명예로서 올해의 인물 선정이라는 선물을 내밉니다.


1943년 - 조지 마셜George Marshall 1880. 12. 31 ~ 1959. 10. 16


전선에서는 아이젠하워, 맥아더, 니미츠 등이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면 본국에서는 F.D.R을 보좌하며 전쟁의 최고지휘를 담당하던 사람이 있었으니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입니다.

그는 전쟁 이전부터 F.D.R 밑에서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수행하며 전쟁을 조율했고, 전쟁이 터지자 기본전략을 확립하고 주요 자리에 여러 장군들을 기용하여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유럽 전선의 최고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마셜이 천거한 사람으로, 그의 인사 기용은 매우 적절했으며 효과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1943년에는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나 획기적인 승리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이탈리아가 항복했다지만 이탈리아는 애시당초 2류 적성국이었던데다 수도 로마를 독일군이 점령 중이어서 획기적인 승리라 보기 어려웠고, 쿠르스크 대전차전 이후 소련의 반격도 눈여겨 볼 만 했지만 작년에 이미 스탈린을 선정한 바 있어 재선정하기 힘들었습니다. 태평양전선도 꾸준히 진격 중이었지만 획기적인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죠.

이러한 전선의 현황이 본국에서 전쟁 전반에 걸친 조율을 담당하는 조지 마셜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1944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1890. 10. 14 ~ 1969. 3. 28

덩게르크에서 영프 연합군이 치욕적인 철수를 한 후 약 4년이 지난 1944년 6월 6일, 이번에는 미영 연합군이 대대적인 프랑스 북부 해안 상륙작전을 개시합니다. 영국인들이 그렇게 염원하던 유럽대륙으로의 귀환, 소련인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한 제2전선의 형성(사실 둘 다 이탈리아 전선 형성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정치적 의미가 많이 다르죠.) 오버로드 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된 겁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미영 연합군은 유럽대륙 서부에 제2전선을 형성하고 독일군을 서부로부터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 프랑스 수도 파리를 수복했고, 진격을 거듭하였으며 12월 독일군의 대반격, 발지 대전투에서도 12월 말엽이 되면 서서히 전세를 역전하여 재반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노르망디 상륙전 즈음에 이탈리아 전선에서도 로마를 함락시켰죠.

이런 상황 속에서 올해의 인물은 당연히,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습니다. 12월에 오성장군으로 승진한 그는 미국의 전쟁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미군을 통틀어 7명뿐이던 원수 중 특히 유명했던 다른 2명, 즉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을 물리치며 필리핀을 탈환한 맥아더 원수나, 역시 태평양 전선에서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던 니미츠 원수가 탈락한 걸 보면 역시 미국에게 있어 태평양전쟁은 유럽전선 정리 이후에나 생각할 부수적인 전선이었던 듯 싶습니다.


1945년 -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1884. 5. 8 ~ 1972. 12. 26


1944년까지만 해도 해리 트루먼은 그냥 평범한 재선 상원의원에 불과했습니다. F.D.R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어 무난하게 승리하여 부통령이 되었지만 정치경력은 짧았고 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그런 그는, F.D.R이 4월 12일 급사하면서 미국 헌법에 따라 느닷없이 대통령의 자리를 이어받습니다.

F.D.R을 대신해서 트루먼은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고, 태평양 전쟁에서도 원폭 사용을 허가하는 등 중요한 결정을 내렸으며 결국 일본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어 전쟁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미국이 참전한 지 4년만의 승리였고 미국 전역은 승리의 환호성에 들뜨게 됩니다. 무엇보다 2차대전은 미국이 아니었으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고, 사실상 미국에 의한 승리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비록 트루먼이 2차대전 기간 중 대통령으로서 집무를 본 건 45년 4월 12일부터 종전일인 8월 15일까지 135일에 불과했습니다만 어쨌든 그는 대전의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지었고, 미국 건국 이래 최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승리의 환호성에 들떠 있던 1945년의 올해의 인물로서 신임 대통령이자 전쟁을 마무리지은 트루먼이 제격이었죠.


1946년 - 제임스 번즈James F. Byrnes 1879. 5. 2 ~ 1972. 4. 9


트루먼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한 제임스 번즈는 베테랑 정치가로서 F.D.R 행정부 3기때에는 연방대법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정치 경력이 부족한 트루먼에게 제임스 번즈는 매우 경력이 풍부한 선배 정치인으로서 많은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포츠담 회담이나 파리 평화 회담에도 참석하여 트루먼의 정책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번즈는 트루먼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임명되고서부터 2차대전 이후 소련과의 대립 가능성을 내다보고 대 소련 강경책을 트루먼에게 주문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마찬가지의 정책 기조를 이어나갔습니다. 특히 독일 정책에 있어서 여차하면 무력을 동원해서 소련군을 동독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독일에 대한 과도한 제재 대신 독일이 빠른 시일 내에 재건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소간 의견대립이 본격화되며 냉전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던 1946년, 독일 정책에 있어서 획기적인 목소리를 내고 대소 강경책을 펼친 번즈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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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Empiric 2008/10/24 15:10 # 삭제 답글

    대인배들이 연속으로 쏟아지는 시절이군요. 역시 역사의 증인은 별로 되고 싶지 않은 배역..
  • Ladenijoa 2008/10/24 17:45 #

    난세에는 영웅(대인배)이 쏟아진다 하나, 그 영웅들에 가려져 영웅의 신화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그저 피를 볼 따름이죠.
  • 곤충 2008/10/24 15:58 # 삭제 답글

    문명4에서도 저시대의 대인배들이 국가 지도자들로 우르르르 튀어나옵죠.
    ........ 한 60년 뒤에는 지금을 대인배의 시대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Ladenijoa 2008/10/24 17:45 #

    아돌프 히틀러랑 장제스, 트루먼을 빼면 국가원수급에서는 다 나왔죠.

    지금은 난세긴 한데 아직 대인배들이 출현하지 않고 있군요.
  • 윙후사르 2008/10/24 17:02 # 삭제 답글

    웬지 대인배들이 많아 보이네요.
  • Ladenijoa 2008/10/24 17:46 #

    저 시대야 말로 대인배의 시대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제가 1회 연재분 올린지 이틀만에 2회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쿨럭;;
  • OTIKA 2008/10/24 17:13 # 답글

    대인배들의 전시장이군요(...)
    트루먼은 다된밥(?)에 숟가락만 꽂고도 수상하는 행운을 누렸;;
  • Ladenijoa 2008/10/24 17:46 #

    트루먼은 진짜 행운아죠. F.D.R이 죽지 않았다면 그냥 그저그런 정치인으로 남았을 사람인데 말입니다.
  • 월광토끼 2008/10/24 18:56 # 답글

    이건 좀 딴소리입니다만, 어으 모택동에 비하면 장개석이 훨씬 미남인듯
  • Ladenijoa 2008/10/25 01:30 #

    장제스가 마오 동지보다 훨씬 미남이죠 뒹굴뒹굴

    그래서 여복도 있습니다(퍽)
  • 애독자 2008/10/24 19:27 # 삭제 답글

    저도 딴 소리지만 마셜 장군,어딘가 렉터 연기할 때의 안소니 홉킨스를 닮은 듯;;;
  • Ladenijoa 2008/10/25 01:31 #

    ...듣고 찾아보니 약간 닮은 듯 싶기도 하군요;;
  • 레인 2008/10/24 20:34 # 답글

    과연 난세는 사람을 낳는다는 말이 확실히 느껴지는군요.
  • Ladenijoa 2008/10/25 01:31 #

    능력있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든 있지만 안정된 사회에선 그냥 평범하게 묻힐 뿐이지요^^
  • 들러갑니다 2008/10/24 22:26 # 삭제 답글

    송미령...외적으로는 대미외교에 기여했다지만 내적으로는 외척의 발호가 어떤 것인지 우리의 조선왕조의 민비와 더불어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죠.
  • Ladenijoa 2008/10/25 01:32 #

    그래도 명성황후보단 낫습니다. 쑹메이링은 말씀하신 대로 대미 외교에서 커다란 활약을 했는데 명성황후는 전혀-_-;;
  • 루드라 2008/10/25 01:42 # 답글

    당시 미군을 통틀어 3명뿐이던 원수 -> 7명 아니었습니까? 마샬, 킹, 레이히, 아놀드도 같이 원수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 Ladenijoa 2008/10/25 01:44 #

    확인해보니 그렇군요. 저는 위에 언급한 원수 3명이 먼저 진급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 이후에 진급한 줄 알았습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 소시민 2008/10/25 03:55 # 답글

    1945년 올해의 인물 타임지 표지에는 트루먼 뿐만 아니라 뤈자폭탄도

    실려 있었죠. 하긴 원폭이 올해의 사물로 선정되도 이상할 건 없죠.
  • Ladenijoa 2008/10/25 04:43 #

    올해의 인물과 동시에 올해의 사물도 같이 선정했었다면 원폭이 선정되었겠죠.

    아니, 타임지가 한 3~40년만 생각이 깨어 있었으면 올해의 인물이 원폭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쓸 연재물에도 나오겠지만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중에 컴퓨터도 있으니-_-;;
  • 이네스 2008/10/28 02:47 # 답글

    역시 미쿡은 유럽에 신경을 많이써요.

    헌데 트루먼은 진짜 행운아로군요.
  • Ladenijoa 2008/10/28 04:17 #

    예, 1945년 5월 이전까지 미 지상군 및 육군항공대 대부분은 철저히 대독 전쟁에 투입되었으니까요. 독일이 일본보다 더 강력한 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트루먼은 1945년도 그렇고 48년도 그렇고, 아니 그 전에 상원의원 재선에 나섰던 40년에도 그렇고, 러닝메이트로 지목된 44년도 그렇고 행운이 연속으로 겹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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