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30일
노량해전 이후 충무공에 대한 명군의 평가
“이시언(후임 삼도수군통제사)은 쓸 만한 사람입니까? 또 수로(水路)를 환히 알고 있습니까? 이순신은 마음을 다해 왜적을 토벌하다가 끝내 전사하였으니, 저는 너무도 애통하여 사람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국왕께서도 사람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소서. 또 그 아들을 기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순신과 같은 사람은 얻기가 쉽지 않은데 마침내 이렇게 되었으니 더욱 애통합니다.”
-무술년(1598) 11월 26일 형개
“이순신(李舜臣)은 충신입니다. 이러한 자가 십여 명만 있다면 왜적에 대해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배신 권희(權憘) 는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많았습니다. 그의 말이 길에서 죽었으므로 제가 왜마(倭馬)를 사도록 하였더니, 희가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비록 도보로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짓은 할 수 없다.’ 하였는데, 이 말은 황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중조(中朝) 관원의 예로 대우하였습니다. 통관(通官)도 3년이나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매우 많았으니 특별히 포상하여 주십시오.”
-기해년(1599) 1월 6일 조여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이순신(李舜臣)이 혈전을 벌이다가 죽었는데, 저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였으나 탄복할 만합니다. 그의 자손에게 포상하여 그 충렬을 정표(旌表)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기해년 1월 9일 마귀
“충신·의사(義士)로 의에 죽은 사람에게 모두 정표(旌表)를 해야 하며, 전진(戰陣)에서 죽은 장관(將官)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치제하여야 합니다. 죽은 이를 후대하여야 산 자가 충성을 다하는 법입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자손을 녹용(錄用)하고 봄 가을로 치제하는 일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필시 잘 거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수병(水兵)을 조련하고 양향을 준비하는 일 등이 모두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기해년 1월 21일 서관란
“감사합니다. 재차 나와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저의 군사가 대첩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하늘의 뜻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길을 잘못 들어 마침내 적추로 하여금 전군(全軍)을 철수하여 건너가게 하였으니, 한스럽습니다. 대개 대소 장관들이 각자 생각이 다르고 호령이 여러 곳에서 나와 제동(制動)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었으므로 성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조금도 자랑할 만한 공이 없습니다.”
-기해년 1월 29일 유정
오늘은 이렇게 땜방 포스팅으로 끝냅니다.(퍽) 조선왕조실록에서 일부 발췌하여 긁어왔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시마즈 요시히로 함대를 완전히 격파하는 위대한 승리를 거두셨으나 안타깝게도 전사하시고, 이후 일본군이 철군하면서 전쟁은 종결됩니다.
일본군 철군 직후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출병해 있던 각 명군 지휘관들에 대한 위로 및 감사, 답례 차원에서 국왕 선조는 몸소 명군 지휘관들의 처소를 일일이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위 기록들은 모두 당시 대화 도중의 언급입니다. 단순히 상대국 국왕이 방문한 것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살짝 언급했을 수 있으나 다른 장수는 언급하지 않고 유독 충무공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부 장수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후임자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했으며(형개), 그 후손을 중용하고 조선에게도 제사를 지낼 것을 권유합니다.(서관란, 형개, 마귀) 명군이 바다의 상황을 그만큼 중시한다는 것이었으며, 충무공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진심으로 좋게 평가했다는 말이죠.
# by | 2008/10/30 19:54 | History | 트랙백(1)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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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조는 과연 찌질하기만 한 군주였을까?
( 노량해전 이후 충무공에 대한 명군의 평가 에서 트랙백 ) 선조와 이순신의 관계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은 아주 확실하다. 이순신 = 레전드 오브 레전드 , 훌륭한 분 , 선 조 = 찌질이 중의 찌질이 . ( ‘찌질이’ 라는 속어가 '무능하면서 동시에 못났으면서 동시에 자기 욕심만 채운다는' 다중적인 뜻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데 아주 적합한 것 같다. )특히 정유년의 원균 재기용과 충무공에 대한 억울한 처벌은 선조가......more
이덕형의 남해안 시찰 후 노량해전 보고에 대해 과장 아니냐고 바로 반문하는 게 선조더군요;;
전란속에서 공훈을 세운 무관들과 의병출신 사대부들이 자신의 권위와 명망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전전긍긍해 왔다는 설명이 이젠 정설입니다만.(방계승통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이런 면에서 경계심은 스탈린의 편집증에 버금갈 정도로 심해진게 분명해 보이지만)
모 게시판에서 가끔씩 심심풀이 땅콩으로 올라왔던 제목:
"선조가 더 찌질한가효, 인조가 더 찌질한가효?"
이순신이 전사했을 때, 다른 곳에서는 망나니 같던 명나라 군사들도 그 때 거기서는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술과 고기를 삼갔다는 기록도 남을 정도니, 그 분은 정말 한 명 빼고는 누구나 다 경애하는 명장이셨습니다.
조선의 모든 민중과 대소신료, 다른 장수들이 모두 충무공을 존경했고, 명군과 명 조정에서도 그분을 모셔가려 했으며, 심지어 적군인 일본군마저도 충무공을 존경했으니 정말 그 시대 최고의 영웅이셨습니다.
제1빠는 역시나 '치트공' 이순신 -_-;;
통솔 100 무력 75 지력 100 정치 100 매력 100 확정 ㅡㅡ;
아니 아이템 없이 통솔 110도 가능하실 겁니다
이 세상 어느 전쟁에서 단 한 명에 의지해서 국가총력전에서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나폴레옹 전쟁때의 나폴레옹도 강력했다지만 그 본인이 황제여서 국가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했는데, 충무공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없는 와중에 결국 승리했습니다.
'이러한 자'가 십여 명이 있으면... 후덜덜;
역사는 역사일 뿐이라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