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언(후임 삼도수군통제사)은 쓸 만한 사람입니까? 또 수로(水路)를 환히 알고 있습니까? 이순신은 마음을 다해 왜적을 토벌하다가 끝내 전사하였으니, 저는 너무도 애통하여 사람을 시켜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국왕께서도 사람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소서. 또 그 아들을 기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순신과 같은 사람은 얻기가 쉽지 않은데 마침내 이렇게 되었으니 더욱 애통합니다.”
-무술년(1598) 11월 26일 형개
“이순신(李舜臣)은 충신입니다. 이러한 자가 십여 명만 있다면 왜적에 대해 무슨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배신 권희(權憘) 는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많았습니다. 그의 말이 길에서 죽었으므로 제가 왜마(倭馬)를 사도록 하였더니, 희가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비록 도보로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짓은 할 수 없다.’ 하였는데, 이 말은 황금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중조(中朝) 관원의 예로 대우하였습니다. 통관(通官)도 3년이나 저를 따라다니며 노고가 매우 많았으니 특별히 포상하여 주십시오.”
-기해년(1599) 1월 6일 조여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이순신(李舜臣)이 혈전을 벌이다가 죽었는데, 저는 그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하였으나 탄복할 만합니다. 그의 자손에게 포상하여 그 충렬을 정표(旌表)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기해년 1월 9일 마귀
“충신·의사(義士)로 의에 죽은 사람에게 모두 정표(旌表)를 해야 하며, 전진(戰陣)에서 죽은 장관(將官)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치제하여야 합니다. 죽은 이를 후대하여야 산 자가 충성을 다하는 법입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자손을 녹용(錄用)하고 봄 가을로 치제하는 일은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필시 잘 거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수병(水兵)을 조련하고 양향을 준비하는 일 등이 모두 오늘날의 급선무입니다.”
-기해년 1월 21일 서관란
“감사합니다. 재차 나와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습니다. 이순신(李舜臣) 같은 자들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저의 군사가 대첩을 거둘 수 있었음에도 하늘의 뜻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길을 잘못 들어 마침내 적추로 하여금 전군(全軍)을 철수하여 건너가게 하였으니, 한스럽습니다. 대개 대소 장관들이 각자 생각이 다르고 호령이 여러 곳에서 나와 제동(制動)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었으므로 성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조금도 자랑할 만한 공이 없습니다.”
-기해년 1월 29일 유정
오늘은 이렇게 땜방 포스팅으로 끝냅니다.(퍽) 조선왕조실록에서 일부 발췌하여 긁어왔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시마즈 요시히로 함대를 완전히 격파하는 위대한 승리를 거두셨으나 안타깝게도 전사하시고, 이후 일본군이 철군하면서 전쟁은 종결됩니다.
일본군 철군 직후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출병해 있던 각 명군 지휘관들에 대한 위로 및 감사, 답례 차원에서 국왕 선조는 몸소 명군 지휘관들의 처소를 일일이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위 기록들은 모두 당시 대화 도중의 언급입니다. 단순히 상대국 국왕이 방문한 것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살짝 언급했을 수 있으나 다른 장수는 언급하지 않고 유독 충무공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일부 장수들은 직접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후임자에 대해 의견을 내기도 했으며(형개), 그 후손을 중용하고 조선에게도 제사를 지낼 것을 권유합니다.(서관란, 형개, 마귀) 명군이 바다의 상황을 그만큼 중시한다는 것이었으며, 충무공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진심으로 좋게 평가했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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