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지의 올해의 인물 (4) 1957 ~ 1966년 History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 (2008. 10. 2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2008. 10. 24)
TIME지의 올해의 인물 (3) 1947 ~ 1956년 (2008. 10. 27)

에 이어지는 연재물 포스팅입니다.

연재가 많이 늦었습니다. 1957~1966년은 아무래도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요즘 책읽기와 게임하기에 열중하느냐 블로그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습니다. 금요일에 약속이 있기도 했고 어제는 도착한 코난 DVD 보느냐 포스팅 포기했습니다-_-;;

1967~1976년 구간이나 1977~1986년 구간, 1987~1996년 구간 모두 제가 자신이 없는 부분인데 걱정입니다. 그 이후의 1997~2002 구간이나 2002~2007 구간이야 이미 거의 완성단계에 놓였서 저장해놓은 상태입니다만 그 이전 구간들은 답이 안 나오는군요-_-;;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죠. 타임지의 2008 올해의 인물 선정 다음날에 마지막 연재물을 올리려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말입니다. 1주일에 1회는 연재해야 겠군요.



1957년 - 니키타 흐루시초프 Nikita Khrushchev 1894. 4. 17 ~ 1971. 9. 11

1957년, 소련 내부에서는 스탈린 뒤를 이어 권력을 장악한 흐루시초프와, 이에 맞선 反흐루시초프 파벌의 권력투쟁에서 흐루시초프가 승리를 거둔 해입니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 정작 소련 내부의 흐루시초프와 反흐루시초프 파벌간의 권력 투쟁보다는 소련이 1957년에 대외적으로 보여준 위대한 인류의 진보적 성과이자 미래를 위한 작은 청사진 하나에 더욱 더 주목했습니다.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에서 발사된 왠 로켓에서 분리된 자그마한 원형 물체가 우주 궤도상에 진입합니다.

기능도 없고 그다지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으나 이것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지구 외 지역, 즉 우주에 대한 진입.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였던 것입니다.  뒤이어 1957년 11월 3일, 이번에는 멍멍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어 우주에서의 생명체 생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흐루시초프의 소련은 미소를 지으며 전 세계를 상대로 선전을 벌였지만, 선전할 필요도 없이 이미 서방세계, 특히 미국은 경악할 만한 충격을 입었습니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죠. 그동안 과학 부분에서 소련을 앞선다고 자부했던 미국이 우주개발에서 소련에게 선두를 빼앗긴 겁니다. 아울러 소련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충격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소련의 최고지도자 흐루시초프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합니다. 좀 미래였다면 타임지도 유연하게 스푸트니크 1호를 선정했지만 아직 타임지 편집진들은 그다지 유연하지 못했습니다.


길어지니 가리겠습니다. 더 보실 분은 클릭하세요.


1958년 - 샤를르 드 골 Charles De Gaulle 1890. 11. 22 ~ 1970. 11. 9

40년대 총통 각하와 포커를 치다 본전 다 털린 다음 영국과 미국에게 돈을 꾸어 총통 각하에게 복수한, 이 시대의 숨겨진 대인배 샤를르 드 골이 매우 뒤늦게 1958년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샤를르 드 골은 자유 프랑스 정부를 이끌고 결국 1944년 파리 해방, 개선으로 프랑스의 정통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 이후 임시정부를 이끌다가 사퇴했지만 여전히 프랑스를 나치 억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고 결국 승리해 낸 군사, 정치 지도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드 골은 프랑스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1958년, 알제리 반란으로 프랑스가 대혼란에 빠지고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빠지자 드 골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정계 복귀를 위한 시동을 걸었습니다. 대통령으로부터 총리로 임명된 직후, 헌법개정권한 등 주요 특권을 부여받은 드 골은 제4공화정을 끝내고 제5공화정을 위한 시동을 걸며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로 내걸고 승리를 일궈냅니다. 제5공화정의 헌법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넘겨주는 것으로서, 드 골이 절대권자로 프랑스를 통치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낸 거죠.

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에서 승리를 거두고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샤를르 드 골은 12월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하게 됩니다. 프랑스가 위기에 처한 1958년, 그 위기를 극복할 사람은 나치에 맞서 끝까지 싸워 이긴 영웅뿐이라는 인식의 결과였습니다.


1959년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Eisenhower 1890. 10. 14 ~ 1969. 3. 28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이자 제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 최고지휘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 지도 어느덧 7년째가 되는 해이자, 1960년이면 아이젠하워의 마지막 임기가 되죠.

임기동안 아이젠하워의 건강 문제 등에 대한 걱정이 많았고 대통령 본인이 꼭두각시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높았지만 아이젠하워는 무난하게 대통령 직무를 잘 수행했습니다. 한국전쟁을 종결시켰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수에즈 위기 때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여 확전을 막았습니다. NATO와 SEATO를 창설하여 공산권 확대에 맞선 서방의 대응을 강화하면서도 열강들에게 Open Sky(상호간 군사시설에 대한 감시 체계)를 제의하는 등 평화를 위해서도 노력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NASA를 창설하여, 소련보다 뒤떨어진 우주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으며 1957년 리틀록 위기때에는 연방정부군을 전격 투입하여 흑인들의 학교 등교를 철저하게 보호했습니다. 국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은 대통령이어서 의회나 행정부 자체가 비판받는 일은 있어도 대통령은 특별한 비난 없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인기있고, 또 확실히 대외정책 등에서 유능했으며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전쟁영웅 출신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약 1년 앞두고 타임지는 그동안의 업적을 인정해 아이젠하워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합니다. 그 해에 특별히 올해의 인물감이 없으면 타임은 주로 이러한 종합평가제를 통해 올해의 인물을 선정합니다.


1960년 - 미국의 과학자들 U.S. Scientists

스푸트니크 쇼크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습니다. 1958년 1월에서 3월에 걸쳐 미국은 익스플로러 1, 2, 3호를 연달아 발사했으나 5월에 소련이 지금까지의 위성 중 가장 큰 스푸트니크 3호를 쏘아올렸습니다. 여전히 소련의 우주탐사는 미국에 비해 앞서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고, 미국의 스푸트니크 쇼크는 학교에서의 이공계 교육 강화 및 과학자들에 대한 연구 지원으로 이어집니다.

한편 1960년에는 미국의 우주개발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기상위성 타이로스 1호와 트랜싯 1호(4.1), 통신위성 에코(8.12) 등이 연달아 쏘아지며 실용위성 시대를 개막했으며 위성선 회수 실험에서 성공, 마침내 소련을 추월했습니다. 디스커버러 13호의 회수(8.11)였죠. 뭐, 1주일 뒤인 8월 19일 소련도 위성선의 첫 회수에 성공해 금방 원점으로 돌아갑니다만.

이처럼 미국이 스푸트니크 쇼크에 맞서 필사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고 이공계에 대한 전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과학자들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기에 또 다시 불특정다수 집단으로 미국의 과학자들이 선정됩니다. 타임지는 이중 대표적인 인물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열거하는 데, 과학사에 아는 바가 없을 뿐더러 숫자가 워낙 많아 그냥 명단만 게재하겠습니다.

Represented by George Beadle, Charles Draper, John Enders, Donald A. Glaser, Joshua Lederberg, Willard Libby, Linus Pauling, Edward Purcell, Isidor Rabi, Emilio Segrè, William Shockley, Edward Teller, Charles Townes, James Van Allen, and Robert Woodward


1961년 - 존 F.케네디 John F. Kennedy 1917. 5. 29 ~ 1963. 11. 22

초선 상원의원으로서 돌풍을 일으키며 리처드 닉슨을 격침시키고 대통령이 당선된 파란의 주인공 존 F. 케네디. 당연히 리처드 닉슨이 당선되리라 예상했던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는 뉴프론티어 정신을 앞세우며 화려한 화술로 처음 실시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압승을 거두며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이거 자체로 이미 올해의 인물감이죠.

그는 취임하자마자 뉴프론티어 정신을 앞세우며 적극적으로 정책 드라이브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만 외부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오고 있었습니다. 쿠바의 혁명으로 탄생하게 된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전복 공작이죠. 쿠바는 미 본토 남단 플로리다 주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먼로 이래 그 어떤 나라의 아메리카 개입도 용납하지 않았던 미국으로선 앞마당인 쿠바의 사회주의 정권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CIA에 의해 훈련된, 미국 내 쿠바인 망명자들로 구성된 침공부대는 4월 17일 침공작전에서 참패하여 1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고 생존자 대부분이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합니다. 미국 정부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사건이었죠. 케네디의 임기 초는 이런 난국과 함께 해야 했습니다.


1962년 - 교황 요한 23세 Pope John 23  1881. 11. 25 ~ 1963. 6. 3

카톨릭 쇄신의 계기이자 현대 카톨릭을 정립하다 시피 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1962년 개최됩니다.(1965 종결) 이 공의회를 개최한 것은 교황 요한 23세. 역대 공의회 중 최대규모로 열렸으며 현대 카톨릭을 위한 여러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게 되는 바티칸 공의회는 1965년에 끝났으며 그 결과는미사를 각 나라 언어로 집전할 것(이전까진 라틴어 통일), 그리스 정교 및 개신교를 형제로서 인정, 기타 다른 종교의 인정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총 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을 채택하였고 이들은 현대 카톨릭 교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존중받는 기반이 됩니다. 특히 다른 종교에 대한 인정은 그동안 종교간의 배타성을 뛰어넘어 종교간 이해와 포용을 내세우게 된 매우 중요한 사건이죠. 이 모든 건 요한 23세가 추구하던 방향이었습니다.요한 23세는 이러한 대개혁을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 카톨릭 교도들에게 회개하고 쇄신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러한 정신을 높이 평가받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그러나 요한 23세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개혁들의 끝을 보지도 못하고,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이던 1963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963년마틴 루터 킹 주니어 Martin Luther King. Jr 1929. 1. 15 ~ 1968. 4. 4

오늘날까지도 미국 내 흑인(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 인권 운동의 상징이며, 오늘날 흑인들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고 백인과 법률적으로 평등하게 살게 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그리고 흑인인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준 사람. 당연히 마틴 루터 킹 목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50년대부터 남부 각지를 돌며 흑인 인권 운동을 지도하며 전국적 명성을 얻고 있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시위를 주도하다 스스로 경찰에 체포, 독방에 갇혀 지내면서도 저항을 멈출 줄 몰랐습니다. 석방된 후, 워싱턴 대행진을 감행하면서 링컨 기념관 앞에서, 지금까지도 주요 미국 정치인들(특히 오바마)이 잘 써먹는 명언 "I Have a Dream!"을 외치죠. 워싱턴 대행진은 전 미국 사회를 넘어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과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전히 앨라배마 등에서는 KKK 등 백인 우월주의 단체의 테러로 흑인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었습니다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 흑인들에게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노예해방 선언 100주년이던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위대한 투쟁에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지지를 보냅니다.


1964년 - 린든 존슨 Lyndon Johnson 1908. 8. 27 ~ 1973. 1. 22

전임자인 존 F. 케네디가 1963년 11월에 급작스런 저격 사건으로 암살되면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부통령 린든 존슨. 그러나 그는 해리 트루먼과 달리 정치경력도 풍부했고 경험도 매우 많았던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임기를 힙겹게 보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1964년의 대선을 앞두고 린든 존슨은 공화당의 베리 골드워터와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만 1964년 선거는 민주당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승리의 해로 기록되게 됩니다.

선거인단 486명으로 52명에 그친 골드워터를 말 그대로 격침시켰습니다. 유효 투표수의 61.1%를 휩쓸었으며, 베리워터의 지역구인 애리조나 및 남부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총 6개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승리를 쟁취해 냈습니다. 인기있던 전임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암살로 인한 여파는 린든 존슨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공화당의 무리한 보수정책은 케네디 암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역효과만 작용했습니다.

이런 압도적인 승리가 확정된 판국에 이를 능가할 이슈메이커는 없었죠. 린든 존슨은 무난하게 올해의 인물에 선정됩니다.


1965년 -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William Westmoreland 1914. 3. 26 ~ 2005. 7. 18

1964년, 미국의 MAVC(Military Assistance Vietnam  Command, 베트남 군사지원 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된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직면한 것은 통킹만 사건과 그로 인한 미국의 전쟁개입이었습니다. 특히 1965년 2월, 북베트남의 프레이크 공군 기지 공격을 계기로 미국은 대대적인 북폭과 직접 참전을 손쉽게 결정, 마침내 제2차 베트남 전쟁에 제1세계의 거두 미국이 전격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하에 전쟁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고, 실제 대대적인 북폭으로 북베트남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지만 북베트남은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서서히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나진 않을 듯 싶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개전 첫 해, 미국의 여론은 당연히 손쉽게 미국이 이길 것이다...였고, 전선 최고사령관인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북베트남의 방공세력이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베트콩들의 공격에 미국은 전선 없는 게릴라 전쟁, 그리고 익숙치 않은 정글전의 무대로 휘말려 가고 있었습니다. 1965년 기준으로 그 누구도 미국이 이 전쟁에서 참패하리란 예상은 하지 못하고 있었죠.


1966년 -25세 이하 세대들 The Generation Twenty-Five and Under

또 다시 대규모 불특정다수 집단의 선정입니다. 일단 선정은 25세 이하 세대...입니다만 1966년 기준으로 25세 이하가 되려면 1941년 출생자가 해당되죠. 특히 그 중에서도 1946년 이후 출생자들, 즉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 군인들이 대거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인률 및 출생률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대의 베이비붐 세대들에 대한 선정입니다.

이들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보다 10년 일찍 태어난 세대들도 본토에서 재생품 활용하기 캠페인에 적극 나서는 등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한 반면,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그런 경험도 없이, 대전 직후 대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미국 경제의 혜택을 듬뿍 얻었습니다. 기존 세대가 아무래도 대공황과 대전의 여파덕분에 소비보다 절약을 중요시한 반면, 이들 베이비붐 세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를 하며 미국 경제 최대의 소비구매층으로 자리잡습니다.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기성세대와 확연한 차이가 났습니다. 훨씬 자유 분방한 생활을 했고, 말 그대로 삶을 즐겼습니다. 물론 이건 이 시대 기준의 일이고, 나중에 가면 그 이후 세대로부터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평판을 듣게 되는 세대입니다만-_-;;


핑백

덧글

  • 행인1 2008/11/02 18:27 # 답글

    엊그제 아이젠하워 연설문을 보았는데 핵통제를 위한 국제기구 설립과 군비통제 협상을 소련에 제의하더군요. 나름 균형감각이 있었던듯 합니다.(하기사 패튼이랑 몽고메리를 상대하다보니....)
  • Ladenijoa 2008/11/03 07:36 #

    아이젠하워는 2차대전때에도 정치적으로 소련에게 양보를 하는 성향이 있었죠. 무모한 충돌 및 희생을 피하려는 게 아이젠하워의 특징이랄까요.
  • 윙후사르 2008/11/02 18:33 # 삭제 답글

    베이비붐 세대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세대도 언젠가 세월 지나면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들을수도...
  • RLamiel 2008/11/02 18:35 #

    아랫세대에게는 수꼴 소리를 듣겠고, 윗세대에게는 놈팽이 소릴 듣겠죠.
  • 심재호 2008/11/02 19:16 # 삭제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 일곱 혼돈 2008/11/02 22:01 #

    일본처럼 정치 무관심이 확산되면 보수적이라기보다 왜케 진지하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죠....
  • Ladenijoa 2008/11/03 07:37 #

    all / 일반적인 예대로라면 우리 세대도 조금만 지나면 수구니 보수니 소리를 듣게 되지 않겠습니까? 당장 소위 "초딩"들과의 문화적 차이도 엄청나게 큰데;;
  • RLamiel 2008/11/02 18:34 # 답글

    아아, 린든 존슨.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나중은..... OTL
  • Ladenijoa 2008/11/03 07:38 #

    타임지 연재물 다섯 번째가 될 1967~1976년 포스팅의 첫 번째인 1967년을 린든 존슨이 바로 그 이유로 꿰차게 됩니다.-_-;;;
  • 소시민 2008/11/02 18:39 # 답글

    타임지 1957년의 인물 선정호 표지를 보면 크레믈린을 머리에 쓴 흐루쇼프가 두 손으로 스

    푸트니크 1호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재미있는 표지죠.

    드골은 노년의 모습이 2차 대전 당시 깡마른 키다리인 모습과 천양지차네요.

  • Ladenijoa 2008/11/03 07:39 #

    그 표지는 상당히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소련의 우주개발 승리를 타임지가 사실상 인정한 셈이기도 하죠. 스푸트니크 1호와 흐루시초프를 전면 배치한 표지... 보는 미국인들이 참 속이 쓰라렸을 듯

    드골은 진짜 나중에는 그 드골 맞나 싶을 정도로 늙더군요;;
  • 정호찬 2008/11/02 19:02 # 답글

    [미국의 스푸트니크 쇼크는 학교에서의 이공계 교육 강화 및 과학자들에 대한 연구 지원으로 이어집니다.]

    북한도 광명성 쐈는데 왜 우린 이 모양일까?(도주)
  • 輝明 2008/11/02 19:17 #

    충분히 역사가 쌓여서 강화의 노력을 기울이면 되는 나라와, 이제 슬슬 역사가 쌓여가기도 하고 애초에 과학에 투자할 생각이 없는 나라는 천양지차죠(...)
  • Ladenijoa 2008/11/03 07:40 #

    광명성도 위성입니까!!
  • 輝明 2008/11/02 19:15 # 답글

    미국 과학자들로 나오는 인물들 중 제임스 반 앨런이라든지 에드워드 텔러라든지, 찰스 타운스라든지, 라이너스 폴링 같은 사람들이 곧바로 눈에 띄이면서 업적이 기억나는 것은 역시 공대생이기 때문인가 싶은 느낌(...)
  • Ladenijoa 2008/11/03 07:40 #

    오오옿, 나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역시 대단하셈.

    자아 저 분들에 대한 소개 포스팅을 기대하겠삼-ㅅ-
  • 이네스 2008/11/03 01:16 # 답글

    베이비붐시대라?!

    왠지 제세대가 저소리 들을듯합니다...
  • Ladenijoa 2008/11/03 07:41 #

    헉 베이비붐 세대셨나요?;;
  • 바보이반 2008/11/03 08:19 # 삭제 답글

    LBJ (린든 B. 존슨)와 겨룬 공화당후보의 이름은 베리 골드워터 아닌가요? 골드 베리워터가 아니구요.
  • Ladenijoa 2008/11/03 08:24 #

    쿨럭 삽질했네요;;;-_-;;;; 지적 감사합니다
  • 2008/11/04 04: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일곱 혼돈 2008/11/04 04:11 # 답글

    그건 그렇고, 60년대 젊은이들이 확실히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급진적으로 보였을 겁니다. 40년대 후반에 쓰인, 지방 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미쿡 소설을 읽어봤는데.....
    교수들이 가히 한쿡 고등학교 선생 수준이더군요-_- 애들 자유연애 단속하는 거 하며_-_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