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9일
TIME지의 올해의 인물 (5) 1967 ~ 1976년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 (2008. 10. 2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2008. 10. 24)
TIME지의 올해의 인물 (3) 1947 ~ 1956년 (2008. 10. 27)
TIME지의 올해의 인물 (4) 1957 ~ 1966년 (2008. 11. 2)
에 이어지는 연재 포스팅입니다. 이번에는 진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힘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래도 제가 좀 아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당분간 해야 할 일도 있고, 아직 타임지가 2008년 올해의 인물을 발표할 날도 한참 멀은지라 좀 뜸 들여가며 연재할 생각입니다. 혹은 10년 단위로 묶은 걸 5년 단위로 쪼갤지도 모르겠네요. 이 부분은 의견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에는 아무거나 세계사를 올려야 하는데요-_-;;
1967년 -린든 존슨 Lyndon Johnson 1908. 8. 27 ~ 1973. 1. 22
내부적으로 그는 민권법 및 이민법, 사회복지입법 등을 시행하였으나 계속되는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린든 존슨 행정부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민주당에서는 린든 존슨이 1968년 대선에 출마해봤자 승산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죠.-미국 법률은 대통령 연임을 금지하되, 대통령이 죽어 부통령이 승계한 경우에는 조건에 따라 3선을 허용한다. 전임자로부터 물려받은 임기가 대통령 임기(4년)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이 조건에 따라 케네디의 잔여임기 1년여를 물려받은 린든 존슨은 1968년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 이미 린든 존슨은 국내적으로 인기를 잃었습니다. 3년 전의 압승은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린든 존슨은 대내외적으로 이미 궁지에 몰려 있었습니다. 린든 존슨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968년 - 아폴로 8호 승무원 Apollo 8 Astronauts
1968년- 프랭크 보먼 Frank Borman 1928. 3. 14 ~
1968년 - 짐 러벌 Jim Lovell 1928. 3. 25 ~
1968년 - 윌리엄 앤더슨 William Anders 1933. 10. 17 ~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소련의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아간 이래, 아폴로 8호는 인류 최초로 지구 외의 천체에 대한 탐험에 나선 겁니다.
아폴로 8호는 달 궤도를 돌면서 무수히 많은 사진을 촬영하고 달에 대한 탐사를 마친 뒤 귀환합니다. 이들은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지구 외 천체를 조사했을 뿐 아니라 달 뒤쪽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들이기도 하죠. 토끼는 못 봤답니다. 이들은 우주에서 성경의 창세기 구절을 읽었고 이 방송은 전 미국에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이들의 탐험은 NASA의 달착륙 프로젝트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고 달착륙 프로젝트는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68년이 끝나가던 시기의 이 성과로 이들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1969년 -미국 중산층The Middle Americans
우선적으로 60년대는 전반적으로 50년대 이후 계속되는 미국 경제의 호황기였습니다. 2차대전에서 돌아온 참전용사들이 이 시기에는 4~50대가 되어 가장 핵심적인 경제계층으로 자리잡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이 미국 경제의 호황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1969년부터는 미국의 베트남전 반대 반전 운동이 더욱 더 격해지는데, 여기에는 미국 중산층들이 본격적으로 가담한 것이 주 원인의 하나입니다. 이들은 미국의 경제와 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 중산층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게 아닌가 하고 추론해 봅니다.
사실 1969년은 당연히 달착륙한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1968년에 이미 아폴로 8호를 선정해서 그런지 예상 외의 선정이 이루어졌습니다.
1970년 - 빌리 브란트 Willy Brandt 1913. 12. 18 ~ 1992. 10. 8
1970년 3월과 5월, 동서독 수상이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하고 우편의 교환을 합의했으며 서독과 소련은 상호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에 그를 인상깊게 남긴 건 이곳에 올린 사진으로 기록된 하나의 역사적 사건때문이기도 합니다.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하여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던 빌리 브란트 수상이 갑자기 그 옆에 있던 바르샤바 게토 희생자 추모이 앞에서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이며 참배합니다. 무릎을 끓었습니다. 동양권에서도 무릎을 끓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신 이외에는 무릎을 끓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서양에서, 빌리 브란트 수상은 무릎을 끓고 나치와 나치를 막지 못한 모든 독일인들을 대신하여 희생자들에게 사죄했습니다.
애시당초 나치와 관련이 없고, 오히려 反나치 활동을 벌이던 빌리 브란트 수상의 이러한 행동은 전 세계인들에게 수많은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직까지 독일의 2차대전 개전과 전쟁범죄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침묵으로 빌리 브란트를 지켜 보았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행동으로 독일의 진심어린 사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 -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1913. 1. 9 ~ 1994. 4. 22
사실상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오랜 금본위제의 역사의 종말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순간부터진정한 법정화폐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제 세계 경제는 금이 아니라 달러라는 법정화폐를 기축통화로 삼으며 움직이기 시작했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이 고정환율제에서 즉시 변동환율제로 말을 갈아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금 사용 억제 노력은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금본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이것이 경제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닉슨 쇼크. 금본위제의 공식적 종말을 알리는 이 사건으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1972년 -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1913. 1. 9 ~ 1994. 4. 22 (이미지는 생략)
1972년 -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 1923. 5. 27 ~
우선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일행을 태운 에어포스 원이 베이징에 도착합니다. 죽의 장막을 걷어낸 역사적인 순간이며 핑퐁 외교의 결실이었죠. 1971년 헨리 키신저의 중국 방문 등을 통해 얻어낸 성과였고, 이후 중미 양국은 상호 수교 및 타이완-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등을 합의합니다.
이로서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대국 중국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울러 미국 경제에게는 10억 인구를 자랑하는 거대 수출시장이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했죠. 거기다 세계는 미중 합의로 평화에 가까워진 겁니다. 사전에 이를 조율한 헨리 키신저와 실행자인 리처드 닉슨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건 당연합니다. 더군다나 리처드 닉슨은 그 해 11월에 있던 대통령 선거에서도 압승, 재선에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해 6월에 터진 워터게이트 사건은 점점 커져만 가고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도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거대한 폭풍우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백악관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으니...
1973년 - 존 시리카 John Sirica 1904. 3. 19 ~ 1992. 8. 14
컬럼비아 특별구 지방법원 판사에 불과했던 존 시리카는 이 와중에 일약 전국적인 명사가 됩니다.존 시리카 판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담당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7명에 대한 조사 및 처벌, 판결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이들이 위증을 하고 있음을 느끼고 이를 판결문에 집어 넣어, 워터게이트 사건의 배후에 백악관이 있을 거라는 의문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트린 것이 워싱턴 포스트라면, 법률적으로 이를 발단시킨 것은 존 시리카 판사라는 말이 있죠. 그는 Maximum John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중한 형량을 내리는 판결을 많이 해서 워터게이트 관련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자 철천지 원수가 되었습니다.
1974년 - 파이잘 국왕 King Faisal 1903 or 1906. ?. ? ~ 1975. 3. 25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방(특히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전쟁 중이던 10월 16일, 사우디 아라비아를 필두로 한 페르시아 만의 산유국들이 일제히 감산 및 가격인상 조치를 단행하고 적대국에 대한 석유수출 중단 및 비우호국에 대한 석유수출량 감소를 선포하면서 전 세계에 마침내 오일 쇼크가 터집니다.
오일 쇼크가 본격화된 건 1974년. 73년이야 사실상 11, 12월만 버티면 되었으나 74년은 1년 내내 오일 쇼크의 여파에 놓여 있었습니다. 전 세계는 아랍권의 석유 통제에 경악을 했고 수많은 나라들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왕 폐하를 알현하러 리야드로 날아와 절대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친하지 않으니 제발 좀 수출해달라고 통사정을 해야 하는 판국이었습니다.
이 모든 건, 세계 최대의 석유 매장량 및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의 파이잘 국왕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만의 다른 산유국들을 주도할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일쇼크가 터진 1973년에야 워터게이트 사건의 파문이 매우 컸지만 그 다음해에는 파이잘 국왕이 가볍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1975년 - 미국 여성 American Women
미국 여성의 사회진출은 1940년대 초중반기가 시초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기야 했지만 일부 예외적 사례에 불과했죠. 그러나 미국이 2차대전에 휘말리면서 국가총력전 태세로 전환,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에 징집되면서 여성들이 후방에서 군수산업에 대거 나서야 했고, 일부는 후방 군부대에서 복무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미 사회 진출을 경험한 여성들은 가정에만 머물려 하지 않았고, 꾸준히 사회로 나아갔습니다.1960년대부터 사회 분위기가 점점 더 자유로워지면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가속화되었고 베트남전 반전 운동 등을 계기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런 종합적인 결과가 1975년의 올해의 인물 선정 아닌가 싶군요.
1976년 - 지미 카터 Jimmy Carter 1924. 10. 1 ~
예, 1976년 대선은 공화당에게 너무 불리했습니다. 1964년,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계기로 압승한 민주당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1968년 정권을 탈환한 공화당에겐 불과 8년만에 찾아온 악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악몽을 현실화시켜 준 민주당의 대권 주자는 지미 카터였습니다.
조지아 주지사 출신의 지미 카터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27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고 39.19%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으며 여유롭게 대선 후보로 지명됩니다. 2위를 차지한 제리 브라운이 겨우 15.39%의 지지율과 5개 주 승리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압도적 승리였죠.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11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제럴드 포드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공화당에 실증을 낸 유권자들은 대거 민주당에 표를 던졌습니다. 1964년 선거만큼은 아닙니다만 민주당은 미 동부 지역을 싹쓸이하며 말 그대로 압승에 성공했습니다.
# by | 2008/11/09 21:19 | History | 트랙백 | 핑백(5) | 덧글(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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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불특정 다수의, 한정 불가능의 계층이니.
그냥 다시말해 '미국민'을 말하고 싶었던 거겠죠. 어지간히도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1968년 68년은 프랑스 5월 혁명, 구정공세, 프라하의 봄. 멕시코 올림픽, 푸에블로호
사건,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암살 등 참 다사다난 한 해였죠.
1974년 결국 파이잘 왕은 다음해 장신이상자 조카에게 살해당했죠 -_-
1975년 아마 유엔에서 그해를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한 데에서 연유한거 같습니다.
1976년 만약 지미 카터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현재의 평화 중재자로서 왕성한 활동
도 힘들었겠죠?
1968년 : 정말 온갖 사고가 많았는데 그 경쟁자들을 다 뚫고 선정된 아풀로 8호 승무원들은... 사건이 가장 늦게 터진 덕일까요.
1974년 : 음모론에 따르면 그건 CIA의 사주를 받은...(퍽)
1975년 : 호옿, 그런 연유가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976년 : 예, 아무래도 전직 미국 대통령이라는 간판이 크니까요-ㅅ-
어쨌거나 저 아줌마 포스터는 후에 솔로부대 여군 포스터로 개조되니 실로 위대한 아줌마요 ㄲ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