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지의 올해의 인물 (7) 1987 ~ 1991년 History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 (2008. 10. 2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2008. 10. 24)
TIME지의 올해의 인물 (3) 1947 ~ 1956년 (2008. 10. 27)
TIME지의 올해의 인물 (4) 1957 ~ 1966년 (2008. 11. 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5) 1967 ~ 1976년 (2008. 11. 9)
TIME지의 올해의 인물 (6) 1977 ~ 1986년 (2008. 11. 17)

에 이어지는 연재 포스팅입니다. 지난 포스팅 서두에서 말씀드렸듯 2008 올해의 인물 발표에 맞추기 위해 매회 포스팅별 소개 연도 수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원래 1987 ~ 1996년 10년을 한 번에 연재하기로 한 걸 둘로 쪼개서 연재합니다. 덕분에 평소보다 포스팅 길이가 훨씬 짧아져서 읽기에는 좀 편하실 듯.


1987년 -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Sergeyevich Gorbachev 1931. 3. 2 ~

몇 년 전만 해도 "오냐 너 죽고 나 죽자"라며 미친 듯이 군비를 경쟁하며 핵폭탄을 늘리고 서로를 위협하며 전 세계를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의 공포에 빠트리게 한 미소 양국. 그러나 1985년 새로운 소련 공산당 총서기가 되며 권력을 장악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방에서 불리길 속칭 "위대한 고르비"라 불리는 인물의 등장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전 소련을 충격으로 몰아넣을 몇 가지 개혁을 단행합니다.
1987년 6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공식 선언했는데, 이는 2년 전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뒤이어 소련 내부의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하는 거였습니다. 현대에 적합한 사회주의의 개혁을 내세운 페레스트로이카는 재산의 소유 구분에 대한 세분화, 폭 넓은 시장경제의 도입, 탈 이데올로기와 군비 예산의 삭감 등등 적극적인 반 사회주의 개혁을 추진합니다. 강철의 대원수께서 살아 계셨다면 고르비의 목은 100번도 잘렸을 일입니다만 대원수는 요단 강 건넌 지 오래고 이 시점의 소련 지도자는 고르비였습니다.

뒤이어 12월 8일에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만나 INF 협정을 체결합니다. 몇 년 전 유럽에서 서로 핵무기를 배치하며 맞붙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거리 탄도탄에 대한 대대적인 감축을 약속한 겁니다. 핵경쟁 이래 최초의 의미있는 핵무기 감축 협정이었죠. 뒤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철수를 약속하는 등 그는 대대적으로 평화의 메시지 및 개혁을 시도하여 서방 세계에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모든 것의 결과, 고르비는 19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개인적으론 민주혁명을 이뤄낸 한국인들... 뭐 이런 식의 선정을 기대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동북아의 작은 소국은 천조국의 기준으론 너무 별볼일 없는 나라였던데다 시대의 대인배 고르비가 버티고 있었으니;;


1988년 - 위기에 처한 지구 Endangered Earth B.C 50억? ~

인류가 살아가고 이 땅 지구. 그러나 생태계에서 인간이라는 절대적인 초강자가 이 행성을 지배하기 시작한 뒤 급격한 발전을 이루면서 지구는 신음하기 시작합니다. NASA는 지구 온난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선언했고 그 말대로 1988년의 여름은 평년보다 더웠습니다. 이상 기후가 발생한 겁니다.

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오존층은 계속 파괴되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에는 사상 최대의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아무런 경각심도 느끼지 않은 채 개발과 물질의 풍요 속에 살아가고 있었죠. 뒤늦게야 경각심을 가지게 된 인류는 당황했습니다. 결국 인간도 생태계의 한 구성원에 불과했습니다. 지구가 죽어간다면 인류가 무사할 리는 없는거죠. 기술이라도 있으면 이사라도 가겠지만 인간이 살만한 가장 가까운 행성은 찾지도 못했고 찾는다 하더라도 인류 기술력으로 이사가기에는 매우 힘들죠-ㅅ-

전 지구적으로 이와 같은 위기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IPCC(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으로 지구 온난화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통 대처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임지는 1988년 이런 기류에 호응해 올해의 인물 대신 올해의 행성으로 지구를 선정합니다.


1989년 - 미하일 고르바초프 Mikhail Sergeyevich Gorbachev 1931. 3. 2 (사진 생략)

2년 전 페레스트로이카와 INF 협정 체결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위대한 고르비지만 그의 개혁 행보는 매우 빨랐습니다.
1989년 3월, 소비에트 연방 역사상 유래가 없는 다당제 체제 하의 직접자유선거 원칙을 따른 민주적인 선거가 단행된 겁니다. 이를 통해 인민들의 손으로 뽑은 대표들이 인민대표회의를 구성했고, 인민대표회의가 선출한 최고 소비에트 의장을 고르비가 차지합니다. 그의 본격적인 개혁행보는 이제 정치적인 면에서도 나타난 거지요.

뒤이어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완료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현실 속에 독일의 통일을 인정했습니다. 그가 독일 통일에 있어서 보여준 대범함으로 인해 서독 사람들로부터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1945년 이래 소련군이 계속 주둔해오고 있던 동유럽 각국에서도 소련군 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세계는 진정으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냉전의 종식이라는 변화를.

그로 인해 고르바초프는 불과 2년만에 다시 한 번 타임으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극렬 공산주의자 등은 대놓고 싫어하는 인물이 고르비입니다만 서방 세계에서 볼때 고르바초프는 매우 위대한 소련의 지도자였습니다. (소련을 말아먹었거든요-_-;;)


1990년 -
조지 H.W 부시 George Herbert Walker Bush 1924. 6. 12 ~

레이건 행정부 내내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으로 재직하고 1988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텍사스 출신의 조지 H.W 부시. 1990년은 그런 부시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해였습니다. 고르비의 개혁개방 정책 속에 소련이 빠르게 무너져내리면서 미국은 양극화 시대의 서방진영의 거두가 아닌, 사실상의 단일 패권국가 시대, Pax Americana의 리더로서의 위치를 요구받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사막의 콧수염 사담 후세인이 이에 도전이라도 하듯 쿠웨이트를 침략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에 대한 강력한 응징과 쿠웨이트의 주권 회복을 천명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위상에 걸맞는 미국의 위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즉시 전군에 동원령을 내리고 이라크 주변에 대대적으로 병력을 전개시켰으며 미국의 위상에 걸맞게 세계 각국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 냈습니다.

쿠웨이트 침공에 맞선 부시 대통령의 이와 같은 과감한 결정과 신속한 대응은 새로운 시대, Pax Americana에 걸맞는 새로운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거죠. 아울러 미국 언론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쟁에 나선 자국 대통령을 띄워주려는 심리도 없지 않았습니다.


1991년 - 테드 터너 Ted Turner 1938. 11. 19 ~

콧수염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 침공부대는 각지에서 미군에 의해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다국적군 공군의 맹렬한 집중 폭격을 받아야 했고 지상전에서도 이라크 군은 각지에서 참패, 본국으로 퇴각해야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자기 집의 안락한 거실에서 쇼파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스포츠 경기를 보듯 전쟁 실황을 들었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건 CNN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CNN은 다른 언론들과 달리 가장 위험한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쟁의 모습을 미국 안방으로 전했습니다. 바그다드가 폭격받는 날, CNN 기자는 바그다드 시내에서 그 모습을 생중계했습니다.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전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시청자들의 안방으로 전달했습니다. 다른 언론들은 감히 CNN을 따라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걸프전은 미국 방송업계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동안 좀 유망한 방송사에 불과했던
CNN은 걸프전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권위있는 뉴스 전문 채널로서 자리잡았습니다. CNN의 중계를 따오기 위해 다른 방송사들은 거액을 지불해야 했고 테드 터너와 CNN은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1991년 이후 CNN의 독주 체계는 아무도 막지 못했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국제 뉴스를 보려면 CNN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CNN을 설립했을 때, 24시간 뉴스채널이 성공할 거 같냐는 비야냥을 들었던 CNN 설립자 테드 터너는 1991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언론-방송계의 절대적인 강자로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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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곤충 2008/11/23 11:37 # 삭제 답글

    고르비도 대인배 확정.
    최근이 되니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보이는 군요;;
  • Ladenijoa 2008/11/23 15:31 #

    지난 번 포스팅할때 대상이 된 사람들 중에서만 해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았는데-사다트, 레이건, 유리 안토노포프 등등- 이번 포스팅부터는 올해의 인물 선정자가 모두 살아 있습니다. 이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 레인 2008/11/23 11:55 # 답글

    밑줄 쫙에 한표요~
  • Ladenijoa 2008/11/23 15:31 #

    ㅎㅎㅎㅎ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 계원필경 2008/11/23 12:23 # 답글

    CNN은 결국 저희집 케이블에서 BBC를 밀어내버렸죠(으응?)
  • Ladenijoa 2008/11/23 15:32 #

    사실 BBC도 영국 본토 항공전이나 포클랜드 전쟁 당시에 생생한 중계로 명성을 떨쳤습니다만 자국과 큰 관련이 없는 전쟁에는 무관심 모드라;;
  • Hadrianius 2008/11/23 12:32 # 답글

    저때의 터너를 보며 지금은 참.............
  • Ladenijoa 2008/11/23 15:32 #

    저때의 터너가 참 정정했습니다(퍽)
  • 소시민 2008/11/23 13:03 # 답글

    고르바초프가 89년의 인물로 선정된 타임지 표지에 Man of the Decade

    란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80년대의 인물이라 ㄷㄷㄷ

    사실 한 시대를 종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니 당연한 것이겠죠.
  • Ladenijoa 2008/11/23 15:35 #

    고르바초프가 활약한 시기래야 80년대의 후반 뿐인데 역시 소련을 내부적으로 무너트리는데 가장 결정적 기여를 했으니까요. 페레스트로이카는 정말 역사적으로 잊혀지지 않는 단어가 될 겁니다.

    그래도 전 80년 대선에서 이기고 81. 1 ~ 89. 1 8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한 로널드 레이건이 80년대의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르비가 내부에서 소련을 개혁하려 하고 결국 시대를 종식시켰다면 레이건은 외부에서 소련을 무너트린 장본인이자 Pax Americaca의 시초를 제공하고, 지금의 미국 붕괴의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으니까요.
  • 윙후사르 2008/11/23 15:07 # 삭제 답글

    확실히 고르비가 대단하긴 했죠. 다만 고르비는 소련을 유지시키려고 개혁,개방한건데 결과는... 소련 붕괴...
  • Ladenijoa 2008/11/23 15:37 #

    너무 급격한 개혁이었으니 소련 내 보수 세력의 반발을 초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체제에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도 힘들었고... 사실 그래도 고르비의 개혁이 현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실험이었는데 워낙 국가가 막장이어서 그 실험을 못 버텼죠;;
  • shaind 2008/11/23 18:42 # 답글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정책을 방해하는 보수 공산주의자(?)들을 공격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로 구체제의 문제점을 너무 지나치게 들춰내서 소련이라는 나라의 체제 안정성을 필요 이상으로 파괴했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민족주의의 발흥은 고르바초프가 거의 예상하지도 못한 페레스트로이카의 부작용이었고......
  • rumic71 2008/11/24 13:33 #

    고르비를 납치 감금했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게 사실은 가장 결정타였죠.
  • Ladenijoa 2008/11/24 13:44 #

    그러니 강경 공산주의자들로선 고르비를 씹어먹어도 시원찮았을 겁니다-ㅅ-
  • 애독자 2008/11/24 12:41 # 삭제 답글

    로널드 레이건이라 하면 전 딱 한가지 에피소드밖에 생각이 안나는데요; 무명 영화배우 시절, 어떤 영화에 대통령역으로 캐스팅될 뻔했다가 감독의 반대로 잘렸는데 그 이유가 "대통령 상이 아니다."라는 거였더라는-_-; 실제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강력한 미국'을 내세우며 상당히 강경기조로 간 대통령이 되었지만;
  • Ladenijoa 2008/11/24 13:45 #

    레이건이 대통령 상이 아니라니... 감독이 참 사람 볼 눈 없군요 데굴데굴
  • 나아가는자 2008/11/30 22:54 # 답글

    사실 87년도 인물엔 6월항쟁을 이끈 한국인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도 했었는데...임팩트가 약했나요? 문득 타임지에서는 당시에 6월항쟁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궁금하군요.
  • 일곱 혼돈 2008/11/30 23:19 # 답글

    그러고보니 고르비가 얼마 전엔 오바마에게 미국도 무려 "페테스트로이카"를 해야 한다면서 훈계를 하더군요. 오오 죽지않아 고르비 오오 대인배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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