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정보수집 노력 - 2 History

문정을 통한 조선의 대외정보 수집에서 자체 트랙백

이처럼 문정을 통해 매우 자세하게 서양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한 조선이었지만 수집한 정보가 대체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영길리란 동네와 조선이 몇 만리 떨어졌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과장인지 실제 거리인지 감도 못 잡혔고, 영길리 땅이라는 아비리가니 태평양이니 아미리가 등이 대체 어디에 있는 동네인지 알지도 못하니, 문정으로 주요 나라들의 명단을 쫙 뽑아놓고도 전혀 감을 못 잡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당시 조선 사람들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실학자라는 사람들도 세계의 지리와 정세에 대해서는 까막눈에 가까웠는데 그들은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기껏해야 가보는 외국이라고는 청나라가 전부였는데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무리죠.

사실 지도 자체는 어떻게든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청나라 연경 시장바닥에서 정밀도가 한참 떨어지긴 해도 대략적인 수준의 것은 돈주고 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저 문정 이후, 해외지도를 입수한 기록이 실록에 나옵니다.

이달에 이양선이 호남(湖南) 흥양(興陽) 과 제주(濟州)의 바다 가운데에 출몰 왕래하며 스스로 대영국(大英國)의 배라 하면서 이르는 섬마다 곧 희고 작은 기를 세우고 물을 재는 줄로 바다의 깊이를 재며 돌을 쌓고 회를 칠하여 그 방위(方位)를 표하고 세 그루의 나무를 묶어 그 위에 경판(鏡板)을 놓고 벌여 서서 절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역학통사(譯學通事)가 달려가서 사정을 물으니, 녹명지(錄名紙)라는 것과 여러 나라의 지도(地圖)와 종려선(棕櫚扇) 두 자루를 던지고는 드디어 돛을 펴고 동북으로 갔다.
헌조 11년 을사년 (1845년) 6월 29일

이게 실록에 나오는 영국 함대의 조선해역 무단측량에 대한 기록입니다. 매우 친절(?)하게도 지도를 던져주고 갔습니다.(왜?) 그러나 당연히 한문이나 한글로 적혀 있을 리는 만무했죠-_-;;; 영어였던 겁니다. 읽을 수 있어야 뭘 하던가 말던가 하죠.(...)

그런데 나타난 겁니다. 세계 지리와 정세를 이해하고, 구라파 사람들이 쓰는 언어에 통달한 매우 박식한 조선인이 혜성처럼 말이죠.

성 김대건 안드레아 (1822 ~ 1846)
조선 최초의 카톨릭 사제

실록에서 김대건 신부에 대한 기록은 3건밖에 없습니다. 그 첫 번째는 김대건 신부의 체포 관련인데 매우 짧습니다.

황해감사 김정집이 이양인 김대건을 잡아가둔 일을 묘당으로 하여금 엄히 핵사하게 하였다.
헌종 12년 병오년 (1846년) 5월 20일

조선에서는 처음에 김대건이 중국인이나 서양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대건 신부도 그렇게 주장했고요. 그러나, 아무리 봐도 조선말을 너무너무 잘 하는 데다가 생김새도 조선 사람입니다.(...) 결국 조사 끝에 김대건 신부가 조선인으로서 무려 중국 광둥성에도 가고 마카오에서 서양인들과 교류하고 공부해서 사제 직위를 딴 사람이라는 걸 밝혀냅니다.

이건 초특급 사건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일단 금하고 있던 천주교의 포교에 넘어간 걸로 부족해 자청해서 천주교의 사제가 된 조선인이 있다는 소리여서 천주교 포교 저지에 실패했다는 의미였습니다. 7년 전 기해박해를 통해 조선 내부에서 대대적인 천주교도 박해를 단행한 조선 조정으로서는 일종의 쇼크였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김대건 신부는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조선 팔도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라틴어 및 영어, 프랑스어 등 서양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세계 지리와 정세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겁니다.(최양업 신부는 아직 서품받지 않고 중국에 남아 공부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시대적 상황도 조선으로서 김대건 신부를 그냥 죽이기 곤란한 정세였습니다. 몇 년 전 세계 최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청나라가 영길리라는 왠 듣보잡 나라에게 캐관광당해서 GG친 사건-아편전쟁-에 대해선 조선도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 전장이 조선인이 갈 일 없는 광둥성 및 난징 일대였던지라 자세히 파악은 못했지만 최소한 청군이 개털리고 서양인들이 무력으로 중국에 들어왔다...라는 기초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건을 죽이라고요? 조선 조정도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서양 세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여전히 생각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밀려오는 서양 세력에 대해 좀 자세한 정보롤 얻어내고, 덤으로 소통의 창구를 살짝 열어두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건 당연지사.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천주교 쪽 기록 등에서 보면 김대건 신부는 옥중에서 조선 조정 대신들의 부탁을 받아, 서양에서 제작된 세계지도를 번역하여 조정에 바친 걸로 나와 있습니다. 마침내, 조선 조정은 12년 전 장계에서 이 동네가 뭔 동네여? 하던 그 동네들이 어느 곳에 짱박혀 있는지 알아낼 수 있던 겁니다.

...그러나 또 다시 정세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기해박해 당시 죽은 프랑스 사제들의 문제 등을 따지고 겸사겸사 포교 및 외교루트의 확보, 탐험 등이나 해볼까 하고 프랑스 함대가 나타난 겁니다. 사실 이 프랑스 함대는 셰실 제독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김대건 신부가 바로 이 셰실 제독 함대의 통역관이었죠. 프랑스 함대가 조선에 가는 걸 취소해서 김대건 신부가 단독으로 조선에 들어갔었는데, 뒤늦게 셰실 함대가 조선에 출몰한 겁니다. 프랑스 함대는 곧이어 조선에 국서를 전달합니다.

대불랑서국(大佛朗西國) 수사 제독(水師提督) 흠명 도인도여도중국각전선 원수(欽命到印度與到中國各戰船元帥) 슬서이(瑟西爾) 는 죄없이 살해된 것을 구문(究問)하는 일 때문에 알립니다.

살피건대, 기해년에 불랑서인(佛朗西人)인 안묵이(安默爾) · 사사당(沙斯當) · 모인(慕印) 세 분이 있었습니다. 이 세 분은 우리 나라에서 큰 덕망이 있다고 여기는 인사인데, 뜻밖에 귀 고려(貴高麗)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대개 이 동방(東方)에서 본수(本帥)는 우리 나라의 사서(士庶)를 돌보고 지키는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에 와서 그 세 분의 죄범(罪犯)이 무슨 조목에 해당되어 이러한 참혹한 죽음을 받아야 하였는지를 구문하였더니, 혹 귀 고려 의 율법(律法)은 외국인이 입경(入境)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그 세 분이 입경하였으므로 살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수가 살피건대, 혹 한인(漢人)·만주인(滿州人)· 일본인(日本人) 으로서 귀 고려의 지경에 함부로 들어가는 자가 있더라도 데려다 보호하였다가 풀어보내어 지경을 나가게 하는 데 지나지 않으며, 몹시 괴롭히고 해치는 등의 일은 모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세 분은 한인·만주인·일본인을 대우하듯이 마찬가지로 대우하지 않았는지를 묻겠습니다.

생각하건대, 귀 고려의 중임(重任)을 몸에 진 대군자(大君子)는 우리 대불랑서 황제의 인덕(仁德)을 알지 못하실 것입니다마는, 우리 나라의 사서는 고향에서 만만리(萬萬里) 떠나 있더라도 결단코 그에게 버림받아 그 은택을 함께 입지 못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황제의 융숭한 은혜가 널리 퍼져서 그 나라의 사민(士民)에게 덮어 미치므로, 천하 만국(萬國)에 그 백성으로서 다른 나라에서 그른 짓을 하고 나쁜 짓을 하는 자가 있어 살인이나 방화 같은 폐단에 대하여 사실을 심사하여 죄를 다스렸으면 또한 구문할 수 없겠으나, 그 백성에게 죄가 없는데도 남이 가혹하게 해친 경우에는 우리 불랑서 황제를 크게 욕보인 것이어서 원한을 초래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대개 본수가 묻고 있는 우리 나라의 어진 인사 세 분이 귀 고려에서 살해된 일은 아마도 귀 보상(貴輔相)께서 이제 곧 회답하실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년에 우리 나라의 전선(戰船)이 특별히 여기에 오거든 귀국에서 그때에 회답하시면 된다는 것을 아시기 거듭 바랍니다.

본수는 귀 보상에게 우리 나라의 황제께서 그 사민을 덮어 감싸는 인덕을 다시 고합니다. 이제 이미 귀국에 일러서 밝혔거니와, 이제부터 이후에 우리 나라의 사민을 가혹하게 해치는 일이 있으면, 귀 고려는 반드시 큰 재해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해를 임시하여 위로 귀국의 국왕에서부터 아래로 대신(大臣)·백관(百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돌릴 수 없고, 오직 자기가 불인(不仁)하고 불의(不義)하며 무례한 것을 원망할 수 있을 뿐일 것입니다. 이를 아시기 바랍니다.

구세(救世) 1천 8백 46년 5월 8일.

조선에선 당장 난리가 났습니다. 7년 전 죽은 프랑스 사제들에 대한 책임을 묻으며 공개적으로 협박을 해오고 있으니 말이죠. 더군다나 내년에 또 올테니 그때까지 회답을 준비하라고 국서에 명시까지 해놓은 겁니다. 조선 조정은 최악의 경우 서양 세력과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장 서양 세력의 외침이 있을 경우 내부에서 호응할 지도 모르는 천주교 세력을 엄단해야겠죠-_-;; 아울러 이런 서양세력에 대한 엄단으로 국내의 반 서양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국력을 모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침 옥중에 있던 천주교인들이 본보기가 되었고 그 중 최고위직에 있던 김대건 신부는... orz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기록 및 통설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는 죽기 전에 배교하면 살려주고 나라에서 중히 쓰겠다는 제의를 여러 차례 받습니다. 어떻게든 배교만 하면 살려주고 김대건 신부의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던 거죠. 그러나, 사제 서품까지 받으신 김대건 신부가 배교할 리는 만무하죠. 결국 김대건 순교는 형장의 이슬로...

김대건 신부 처형 이후 조선은 더 이상 해외정보를 획득할 수단도 없었고, 인재도 없었습니다.(최양업 신부가 끝내 안 잡혔거든요;;) 예전처럼 문정으로 정보를 좀 캐낼 수는 있어도 그 정보라는 걸 해석할 사람이 없었고,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에 오는 이양선들은 예전처럼 문정에 응해 주지도 않고 총과 대포를 들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연경이 불타올랐습니다. 청나라 황제가 꽁지빠지게 도망쳤고, 황궁을 마음대로 약탈한 서구 열강 세력이 조선에 그 손길을 뻗치고자 할 때, 조선은 여전히 20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p.s : 내년에 또 봐~~ 하고 사라져 간 셰실 제독 함대는 오지 않았습니다.(먼산) 대신 20년 후에 로즈 제독의 프랑스 함대가 돌아오죠-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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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08/11/26 14:00 # 답글

    우리의 일년은 세계의 십년~
  • 암호 2008/11/26 14:08 #

    강산이 일년마다 변하는군요....
  • Ladenijoa 2008/11/27 11:26 #

    오옿 과연. 프랑스 인들은 그런 생각으로 국서를 적었군요. 하지만 국서에 2년이라고 적어야 할 걸 1년으로 오타를 낸 듯 ㅎㅎ
  • 레인 2008/11/26 14:03 # 답글

    정보의 중요성이 여기서도 한번더~
  • Ladenijoa 2008/11/27 11:26 #

    정보는 수집능력과 분석능력이 같이 중요하죠. 조선은 분석능력이 특히 너무 부족했습니다.
  • 암호 2008/11/26 14:07 # 답글

    진짜 일본처럼 다음해에 나타나 무력외교를 펼쳤다면.....
    [제가 용인에 살고 있는데, 참 미묘하군요.]
  • Ladenijoa 2008/11/27 11:26 #

    차라리 그랬으면 일본 식민지는 면했을지도;;;
    (대신 영국이나 프랑스 식민지-ㅅ-)
  • 곤충 2008/11/26 14:13 # 삭제 답글

    페리제독이 태평양 함대 다 끌고 깽판친 걸 생각하면...orz
  • Ladenijoa 2008/11/27 11:27 #

    그런 거 치면 일본도 참 운 좋은 나라입니다-ㅅ-
  • 계원필경 2008/11/26 14:27 # 답글

    이 당시에 무슨 모사드 같은게 있을리가 없었으니 뭐 어쩔 수 없다는 거(...)
  • Ladenijoa 2008/11/27 11:27 #

    별 수 없죠 쯔법
  • 나아가는자 2008/11/26 14:28 # 답글

    정보를 수집하는 것 보다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군요.
  • Ladenijoa 2008/11/27 11:28 #

    둘 다 중요한 거죠. 사실 뭐가 더 중요하다고 따지기 어렵습니다. 수집능력이 있어도 해석능력이 없으면 수집한 정보는 아무 소용 없는 거고, 해석능력이 있어도 정보를 수집할 수 없으면 전혀 활용할 길이 없거든요
  • 원래그런놈 2008/11/26 15:17 # 답글

    조금 다른 관점이지만 이 일은 정치적 극단, 편협성아니 그냥 노론일당독재의 유지가 정말 중요한 인물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교를 강요 안하고 포교를 못하게 하고 일반인과의 접촉을 제한 시키는 정도의 조치만 취하고 살려두는 그런 너그러움이 왜 당시 조정에는 없었는지 참.....

    천주교인으로 단순하게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고 최초로 순교한 조선인 사제라는 것만 알았는데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었다니 더더욱 슬픕니다.
  • Ladenijoa 2008/11/27 11:29 #

    사실 노론일당독재 아니더라도 프랑스 함대가 안 왔으면 좀 가망이 있었을 듯 싶기도 합니다만-ㅅ-

    사실 일반적인 조선 유학자 기준에선 배교하면 살려주고 나라에서 중히 쓰겠음...이란 것도 매우 후한 제의이기는 하죠.(...)
  • 원래그런놈 2008/11/27 11:58 #

    저는 천주교 박해의 시작이 사실상 노론의 독재정치를 위해 시작된 정치적 숙청 작업이라 생각됩니다. 정조사후 남인의 완전 몰락이 천주교박해의 본격적인 시작과도 상당히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렇게 쓴 것 입니다.
  • Ladenijoa 2008/11/27 12:13 #

    한국 천주교 박해의 기원은 정조 15년, 서기 1791년 윤지충-권상연에 의한 폐제분주가 계기가 된 신해박해죠. 순조대 이후의 박해와는 레벨 자체가 다루고, 사형된 사람도 폐제분주 사건의 당사자들 뿐이지만 이 사건은 조선 조정에서 신서파의 입지를 크게 축소시키는 단서가 됩니다. 신서파들도 저 사건은 차마 변호를 못했죠-ㅅ-;;

    순조대부터의 천주교 박해가 남인에 대한 정치적 숙청과 겹치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남인은 1801년 신유박해로 완전 몰락했고 김대건 신부가 잡히는 시대쯤 되면 이미 일당독재가 유지되고 있었던 터라 정치적으로 반대당파 숙청의 의미는 매우 낮았습니다. 반대당파가 뭔 힘이라도 있어야 숙청을 하지-ㅅ-
    (1839년 기해박해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싸움에 괜히 천주교가 휘말려 들어가 피 본 성격이 크죠-ㅅ-)

    김대건 신부에 대한 처형의 의미는 포스팅에서도 말했듯, 혹시 모를 서양 세력의 침입에 맞서기 위한 국내 여론 결집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기해박해 이후로 천주교 교세가 크게 약화된 데다 집권세력에서도 더 이상 숙청할 만한 상대당파가 없었거든요.
  • 원래그런놈 2008/11/27 12:47 #

    하지만 '천작쟁이'라는 옛날 용어를 보면 숙청은 아니어도 군부독재시절 '빨갱이'와 같은 거라고는 생각됩니다.
  • 행인1 2008/11/26 15:40 # 답글

    지도를 구해도 뭐가 뭔지 모른다라...암담하군요.
  • Ladenijoa 2008/11/27 11:29 #

    별 수 없죠. 언어를 모르니까-ㅅ-
  • 저거노트 2008/11/26 17:06 # 답글

    허허허.. 확실히 정보를 구해도 뭐가 뭔지 모른다면 암담하지요..

  • Ladenijoa 2008/11/27 11:29 #

    조선시대까지 안 가더라도 온갖 사례가 많지 않습니까
  • 키오쿠 2008/11/26 17:17 # 답글

    김대건 신부에 대한 새로운 것을 알았네요. 그나저나 지도를 구해도 뭐가 뭔지 모른다...orz 중국인 선교사라도 잡아놔야 하는 거였을까요; 처형당한 주문모 신부가 기억나는군요.
  • Ladenijoa 2008/11/27 11:30 #

    외국인 사제들은 협력한다는 보장이 없죠^^ 거짓정보를 흘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반면 김대건 신부는 조선인이었다는 점이 조선에게는 기존의 사제들과 다른 큰 차이점입니다.
  • 미류나무 2008/11/26 17:18 # 삭제 답글

    역시.... 역사는 냉엄하군요....

    덕분에 역사공부 다시 한 기분이었습니다.
  • Ladenijoa 2008/11/27 11:30 #

    역사는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가죠. 언제나 예측불허한 일에 의해 움직여지는... 그러면서도 또 예측이 가능한...
  • 【天指花郞】 2008/11/26 18:36 # 답글

    뭐, 1:50000 지도책도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종이뭉치. -_-;;
  • Ladenijoa 2008/11/27 11:31 #

    지도만 그렇겠소. 책들도 다 마찬가지...
  • 소시민 2008/11/26 19:25 # 답글

    모인(慕印) 이 사람은 아마도 모방 신부겠죠? 김대건 신부의 스승으로 기억합니다.

    조선 조정이 김대건의 가치를 높이 사 회유했다는 것은 어릴 적 위인전에서도 본 기억이

    나네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 Ladenijoa 2008/11/27 11:31 #

    모방 신부 맞습니다. 기해박해 당시 처형당안 프랑스 신부 3명 중 음차 이름이 실제 이름과 가장 흡사한 게 모방 신부니까요.
  • 정호찬 2008/11/26 22:18 # 답글

    정보를 구해도 뭔지 몰랐다는 말을 보니 생각나는데, 야사스럽긴 하지만 페리 함대의 일본 난입 때 닌자가 미군 함선에 침투해 문서 훔쳐왔다는 얘기가 있지?(이 문서는 박물관에 전시 중이라고) 그러나 영어 아는 놈이 없어서 버로우!
  • 일곱 혼돈 2008/11/26 22:19 #

    우왕ㅋ굳ㅋ
  • rumic71 2008/11/27 00:46 #

    유명한 이야기지요. 나중에 살펴보니 선원들 낙서여서 OTL먹었다는 소문까지...(진위는 불명)
  • Ladenijoa 2008/11/27 11:32 #

    침투씩이나 했답니까!!!
  • 사상 2008/11/27 23:13 # 답글

    김대건 신부님 제법 훈훈하시군요... 가 아니라
    저 초상화는 후대에 그린건가요? 유화인것 같은데..
  • 比良坂初音 2008/12/01 21:24 # 답글

    참 신기한게 해석도 못하면서 해석할 줄 아는 인재를 키울 생각은
    왜 안한건지 정말 궁금하단 말이죠.....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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