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지의 올해의 인물 (8) 1992 ~ 1996년 History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 (2008. 10. 2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2008. 10. 24)
TIME지의 올해의 인물 (3) 1947 ~ 1956년 (2008. 10. 27)
TIME지의 올해의 인물 (4) 1957 ~ 1966년 (2008. 11. 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5) 1967 ~ 1976년 (2008. 11. 9)
TIME지의 올해의 인물 (6) 1977 ~ 1986년 (2008. 11. 17)
TIME지의 올해의 인물 (7) 1987 ~ 1991년 (2008. 11. 23)

에서 이어지는 연재 포스팅입니다. 사실 귀차니즘에 못 이겨 내일 올리려고 했습니다만 내일 서울에 갈 일이 생겨서 이렇게 올립니다. 그냥 앞으로 꼬박꼬박 일요일에 올릴까 생각중이기도 합니다. (몇 회나 남았다고-_-;;)


1992년 - 빌 클린턴 Bill Clinton 1946. 8. 19 ~
1991년 걸프전의 승리로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 승전효과를 그대로 밀고 가기에는 전쟁이 너무 일찍 터졌습니다. 승전 효과는 얼마 지속되지 않았고, 미국은 레이건 이래 공화당 12년 집권에 의한 경제적 위기를 고스란히 맞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한 거라는 불안심리도 여전했죠.

한편, 공화당 정권을 이번에야 말로 끝장내자고 결의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것은 빌 클린턴. 듣보잡 촌동네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시골뜨기였지만 그는 폭풍을 일으키며 경선 과정에서 50개 주 중 39개 주를 휩쓸며 압승을 거두고 경선 후보로 지명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원하기라도 하듯, 상대적으로 공화당의 표를 깍아먹은 로스 페로라는 제3의 후보가 등장하죠.

이런 호조건 속에 출마한 빌 클린턴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시대의 명언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economy.stupid!)를 작렬하면서 이슈를 경제로 옮기는 데 성공했고, 탈냉전 시대 미국의 대안으로서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결국 32개주와 워싱턴 D.C에서 승리를 거두며 370명의 선거인단을 휩쓸며 43%의 득표율을 올려 현직인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됩니다.


1993년 - 피스 메이커
Peace Maker
1993년 - 넬슨 만델라 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 7. 18 ~
1993년 -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Frederik Willem de Klerk 1936. 3. 18 ~
1993년 - 야세르 아라파트 Yasser Arafat 1929. 8. 24 ~ 2004. 11. 11
1993년 - 이츠하크 라빈 Yitzhak Rabin 1922. 3. 1 ~ 1995. 11. 4
말 그대로 피스 메이커.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라는 공통 주제로 총 4명이 집단 선정된 해가 1993년이었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크게 두곳에서 평화를 위한 위대한 진보적 발전이 있었습니다.

먼저 지독학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높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이 1990년에 흑인 인권 투쟁가인 넬슨 만델라를 석방한 것을 계기로 이후 클레르크 정부와 야당 지도자 넬슨 만델라와의 계속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며 흑백 인종차별 정책의 철폐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또 다른 곳에서는 오랜 기간 지긋지긋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1993년 11월 13일,빌 클린턴의 중재하에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평화협정을 체결한 겁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상호 인정과 공존을 바탕으로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이스라엘 군 철수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등을 약속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나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 모두 최고의 뉴스거리였고 그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할 수 없었던 타임은 피스메이커라는 이름하에 4명을 모두 올해의 인물로 선정합니다. 그러나 2년 뒤, 그 4명 중 한 사람이며 이스라엘과 중동에 평화를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라빈 총리는 극우파 청년의 손에.... 어딜 가던 문제는 극단적 세력입니다. 극우건 극좌건.


1994년 - 요한 바오로 2세 John Paul II 1920. 5. 18 ~ 2005. 4. 2
올해의 인물 사상 두 번째 교황 선정입니다. 1962년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카톨릭 대개혁을 꾀한 덕분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후 32년만의 일이죠. 교황 성하가 선정되려면 역시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겠고, 1994년의 그 이유는 시대의 대인배다운, 교황 성하의 어느 칙서때문이었습니다.

11월에 발표한 3천년을 맞는 칙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칙서는 지금까지 있어왔던, 하느님의 이름을 빌린 카톨릭의 범죄 및 오류-면죄부 판매, 십자군 원정 등-에 대해 잘못임을 인정하고, 종교의 권위를 빌려 이루어진 불관용 및 독재정권의 인간기본권 파괴 및 유린에 대한 묵인 및 협조 등을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칙서는 카톨릭의 역사적 책임을 솔직하게 떠앉으면서 동시에 동방정교회 등 다른 기독교회와의 화해 및 협력, 그리고 기독교를 넘어서 다른 종교와의 갈등을 없애기 위한 위대한 한걸음이었습니다.


1995년 - 뉴트 깅리치 Newt Gingrich 1943. 6. 17 ~
1994년 중간선거는 그동안의 예측을 깨고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불과 2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이 압승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1994년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의회 권력을 공화당에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민주당 258석, 공화당 176석이던 하원의 의석 분포가 민주당 204석, 공화당 230석으로 역전되면서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합니다. 일각에서는 거의 반세기만에 공화당이 의회 권력을 탈환했다고 했으며 이를 공화 혁명(Republican Revolution)이라 부릅니다.

공화 혁명의 지도자는 조지아 제6선거구를 지역구로 가진 남부 출신의 뉴트 깅리치 하원의원입니다. 그는 공화 혁명의 지도자로서 정국을 주도하는 능력이 있었고, 결국94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의 압승을 이끌어 내며 하원의장이 됩니다. 95년에는 내내 공화당의 핵심 인물로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맹렬히 대통령을 공격, 전 미국에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알렸습니다. 뉴트 깅리치의 전성기였죠.


1996년 - 데이비드 호 David Ho 1952. 11. 3 ~
1981년 처음 확인된 이후 전 세계로 급속히 번져간 에이즈. 차라리 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라도 가능하지, 에이즈는 한 번 감염되면 답이 없었습니다. 그냥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진정한 의미의 불치병이었고, 인류 사회는 에이즈라는 불치병에 대한 공포에 빠집니다.

데이비드 호는 대만계 미국인으로서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고 있는 에이즈 및 HIV 바이러스 연구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80년대, 에이즈가 확인되고 확산되자 본격적으로 에이즈 연구 및 치료법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때부터 서서히 에이즈 전문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합니다. 80년대부터 그는 오직 에이즈 연구만을 계속해 왔으며 에이즈와 HIV 바이러스에 대한 다영한 논문을 저술하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HIV 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 등을 내놓아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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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곤충 2008/11/30 14:04 # 삭제 답글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저 칙서에 카톨릭에 무진장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늘었다는 느낌입니다.
    정말로 멋지신 분이셨는데...
  • Ladenijoa 2008/11/30 18:48 #

    교황 중에선 진짜 최고의 대인배죠-ㅅ-
  • 애독자 2008/11/30 14:42 # 삭제 답글

    후......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좀 복잡한 느낌입니다.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민주화에 끼친 영향과 카톨릭 범죄에 대한 사죄등, 보통은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면에서 저도 상당히 훌륭한 분이라고 봅니다만 정작 남미에서 극심했던 인권말살및 민중탄압에 대해서는 꽤나 눈감고 있었던 분이라. 심지어는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카톨릭 사제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면도 있고 오푸스 데이의 창설자는 시성하면서 로메로 대주교는 복자에 올리는 것도 생색내면서 겨우 해주기도 했고요. 뭔가 알면 알수록 실망하게 되는 분입니다. 천수백년을 이어오는 대조직의 수장으로서 어쩔 수 없었던 걸까요?
  • Ladenijoa 2008/11/30 18:50 #

    한계죠. 무조건 요한 바오로 2세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큰 종교조직의 수장으로서 단번에 거대한 쇼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달까요?

    사실 카톨릭 계가 현실정치세계에 대한 참여를 막고 있다는 점에선 별 수 없는 일이고 그게 교리상 맞는 일이기는 한데 그러면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열심히 참여를 독려-_-;;하는 레벨이었으니;;
  • 소시민 2008/11/30 14:55 # 답글

    1992년 당시 로스 페로 처럼 2004년 대선에서는 랠프 네이더가 민주당표를

    잠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뉴트 깅리치는 제가 어렸을 때 자주 TV 뉴스에 등장하신 분이었는데 지금은

    뭐하시는지 궁금하네요.
  • Ladenijoa 2008/11/30 18:50 #

    네이더야 말 그대로 군소후보였지만 로스 페로는 20% 가까운 득표수를 따서 부시 낙선의 1등공신이 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 대선의 이인제와 같은 경우랄까요
  • 레인 2008/11/30 15:10 # 답글

    깅리치는 요즘 뭐하는지..정말;
  • Ladenijoa 2008/11/30 18:51 #

    하원의원 선거 떨어진 후 정계은퇴했습니다
  • 계원필경 2008/11/30 16:28 # 답글

    AIDS는 아직도 퇴치를 못하였으니 좀 암담하긴 하지만 저런분들이 계시기에 그래도 희망이 있어 보이는 군요(그러니 타임지에도 올라오는 거지만...)
  • Ladenijoa 2008/11/30 18:51 #

    질병 연구를 한 사람으로 유일하게 올해의 인물에 오른 사람이죠;;
  • FELIX 2008/11/30 17:17 # 답글

    깅형은 제가 알기로는 지퍼게이트때 클린턴 탄핵을 주도하다 다음 총선에서 역풍맞고 버로우 한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 Ladenijoa 2008/11/30 18:52 #

    아주 제대로 역풍 맞아 관광타셨죠.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로 파문을 맞기는 했지만 대중적 인기 자체는 여전했으니 그에 대한 탄핵 자체가 도박이었습니다.
  • 일곱 혼돈 2008/12/02 16:40 #

    개인적으로는 고소하게 여깁니다. 깅형과 매케인 등은 의회를 장악하자마자 미국의 제네바 합의 이행을 중단시켰고 한반도는 꽁꽁 얼어붙었었지요.
  • 행인1 2008/11/30 17:58 # 답글

    지금 팔레스타인 돌아가는 걸 생각해보면 93년 표지는 참...
  • Ladenijoa 2008/11/30 18:52 #

    그때는 진짜 다들 평화가 오는 걸로 믿어 의심치 않았죠.
  • 윙후사르 2008/11/30 19:44 # 삭제 답글

    정말 전 교황은 휼륭한 인물이었죠. 참 그리운 분입니다.
  • Ladenijoa 2008/12/01 22:38 #

    카톨릭 세계의 발전을 위해 커다란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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