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0일
제너럴 셔먼호의 해적 행위와 민가 약탈 가능성
금성 교과서 개정(改定)이 개악(改惡)일까? 라는 나츠메님 포스팅에 방금 전 초록불님께서 금성교과서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라는 좋은 포스팅으로 답해 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빈약한 지식으로나마 가장 마지막 네 번째, 제너럴 셔먼 호의 민가 약탈 이야기에 대한 가능성을 좀 더 덧붙여 보고자 합니다.
일반 네티즌이 이 부분에서 가장 쉽게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역시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검색입니다. 이양선이라는 키워드로 치니 당장 고종실록에만 100건이 넘는 기록이 나오는데, 제너럴 셔먼호의 난동과 관련된 걸 추스려보면 몇 개 안 됩니다. 이 중 "민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제너럴 셔먼호가 약탈한 것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평안 감사(平安監司) 박규수(朴珪壽) 의 장계(狀啓)를 보니, ‘평양 방수성(防水城)에 정박한 이양선(異樣船)이 상선을 약탈하며 총을 쏘아대는 통에 우리 사람 7인(人)이 피살되었고 부상자 또한 5인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영(監營)과 평양부(平壤府)에 신칙하여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게 해서 곧 소멸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의리로써 좋은 뜻으로 타이르고 식량을 넉넉히 주어 그들을 도왔는데, 도리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군(中軍)을 잡아다가 억류하였고, 나중에는 또 백성들에게 까지 상해를 입혔으니 어떻게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군사(軍事)와 관련된 모든 일은 도신(道臣)에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좋을 대로 처리하게 하여 모두 무찔려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 3년 병인년 (1866년) 7월 25일
본문에 나오는 이양선이 제너럴 셔먼호라는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실록이 쓰여진 시점에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 정박한 겁대가리 없는 서양 선박은 제너럴 셔먼호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약탈당했다는 상선은 아마 대동강을 건너는 조선의 흔한 소형선이 아닌가 싶은데 자세한 내용은 알 도리가 없군요. (혹은 조선측 지휘관 탑승선을 뜻하는 상선일 수도 있으나 해당 서비스에서 같이 제공하는 원문을 확인한 결과 민간 상선이 맞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제너럴 셔먼호의 약탈 행위에 대해 기록한 것은 위 기록에 나오는 상선 약탈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남의 나라 땅인 대동강까지 올라와서 그 강을 지나는 평범한 상선을 향해 발포하고 약탈하는 해적 행위를 벌인 것은 실록으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해적이 분명한데, 야간에 상륙해 약탈했다는 통설 자체를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통설로 인정되어 온 것이고, 그럴 개연성 자체는 충분히 높기 때문입니다.
민가 약탈 사실을 부정하려면 "개연성 자체는 충분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겠죠. 그런데 저 근거가 없다는 것도 조선왕조실록 기준이고, 동 시기의 다른 기록들이나 장계를 살펴 보거나 각 대학 도서관이나 기타 고문서가 짱박혀 있을 법한 동네를 뒤지다 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뭐, 전 평범한 학생이라 먼지 뒤집어 쓰면서 도서관을 뒤질 용기는 없... (퍽)
일반 네티즌이 이 부분에서 가장 쉽게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건 역시 조선왕조실록 인터넷 검색입니다. 이양선이라는 키워드로 치니 당장 고종실록에만 100건이 넘는 기록이 나오는데, 제너럴 셔먼호의 난동과 관련된 걸 추스려보면 몇 개 안 됩니다. 이 중 "민가"는 아니지만 어쨌든 제너럴 셔먼호가 약탈한 것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방금 평안 감사(平安監司) 박규수(朴珪壽) 의 장계(狀啓)를 보니, ‘평양 방수성(防水城)에 정박한 이양선(異樣船)이 상선을 약탈하며 총을 쏘아대는 통에 우리 사람 7인(人)이 피살되었고 부상자 또한 5인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영(監營)과 평양부(平壤府)에 신칙하여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게 해서 곧 소멸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의리로써 좋은 뜻으로 타이르고 식량을 넉넉히 주어 그들을 도왔는데, 도리어 갈수록 더욱더 포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중군(中軍)을 잡아다가 억류하였고, 나중에는 또 백성들에게 까지 상해를 입혔으니 어떻게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군사(軍事)와 관련된 모든 일은 도신(道臣)에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좋을 대로 처리하게 하여 모두 무찔려 없애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 3년 병인년 (1866년) 7월 25일
본문에 나오는 이양선이 제너럴 셔먼호라는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실록이 쓰여진 시점에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 정박한 겁대가리 없는 서양 선박은 제너럴 셔먼호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약탈당했다는 상선은 아마 대동강을 건너는 조선의 흔한 소형선이 아닌가 싶은데 자세한 내용은 알 도리가 없군요. (혹은 조선측 지휘관 탑승선을 뜻하는 상선일 수도 있으나 해당 서비스에서 같이 제공하는 원문을 확인한 결과 민간 상선이 맞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제너럴 셔먼호의 약탈 행위에 대해 기록한 것은 위 기록에 나오는 상선 약탈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남의 나라 땅인 대동강까지 올라와서 그 강을 지나는 평범한 상선을 향해 발포하고 약탈하는 해적 행위를 벌인 것은 실록으로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해적이 분명한데, 야간에 상륙해 약탈했다는 통설 자체를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통설로 인정되어 온 것이고, 그럴 개연성 자체는 충분히 높기 때문입니다.
민가 약탈 사실을 부정하려면 "개연성 자체는 충분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겠죠. 그런데 저 근거가 없다는 것도 조선왕조실록 기준이고, 동 시기의 다른 기록들이나 장계를 살펴 보거나 각 대학 도서관이나 기타 고문서가 짱박혀 있을 법한 동네를 뒤지다 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뭐, 전 평범한 학생이라 먼지 뒤집어 쓰면서 도서관을 뒤질 용기는 없... (퍽)
# by | 2008/11/30 14:32 | History | 트랙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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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왜 제너럴 셔먼호가 이슈가 되는가? - 기독교 초기..
제너럴 셔먼호의 해적 행위와 민가 약탈 가능성에서제너럴 셔먼호에 대한 역사 기술이 문제가 되는 측면은1. 미국에 대한 문제2. 국내 기독교에 대한 문제두가지가 있다고 나는 상상한다.그 중 두번째 국내 기독교에 대한 문제에 대해 나의 억측되는 상상을 짧게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기독교 내부자로서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제너럴 셔먼호에 탑승자 중에는 토마스라는 영국인 선교사가 있다.만약 제너럴셔먼호가 약탈 등 만행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선교사가 거기......more
곧 K 대 도서관을 습격할 줄 믿고 있겠소이다.
역시나 조선인들의 넉넉한 인심이란... 글쎄 근본적으로 조선인들의 인심은 후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또 다시 확인.
심지어는 신미양요 때에도 교전 직전에 전쟁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물자를 보내주어 미군이 당황해서 배려는 감사하나.... 운운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본 글에 관하여서는 제 글에 참고로 달아놓은 글도 참조해 보시는 것도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