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세계사 (18) - 일본 제국의 호주 공습 History

최근 아무거나 세계사 연재로 대체 어느 주제를 찾아야 할 지 하다가 니콜 키드먼(오옿!)이 나오는 영화 포스터랑 동영상 보고 하나 찾았습니다.(...) 고로 매우 간단한 주제로 오래간만의 아무거나 세계사 포스팅을 올립니다. 이 영화의 예고편 막바지에 나오는 일본의 호주 공습 이야기입니다. 사실 2005년에 한 번 날림 번역으로 올렸던 포스팅이기도 한데 2006년 2월에 이글루 접는답시고 폭파해서요.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이래, 호주는 단 한 번도 외침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흔한 폭격 한 번 받아본 적도 없었죠. 본토가 공격받은 적 없다는 미국도 독립 이후 영미전쟁 기간 동안 영국에 털리며 백악관이 불타오른 적이 있었고, 영국도 16세기부터 스페인 군의 소규모 상륙을 허용하기도 했고, 1차대전 기간에 독일 해군의 포격이나 제펠린 비행선의 공습을 받았습니다만 호주는 말 그대로 전쟁과 먼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주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을 향해 일제히 전쟁을 선포하면서 마침내 태평양도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진주만에서 미 태평양함대 주력을 격멸시킨 일본은 남방작전을 전개하며 빠른 속도로 동남아시아 각지를 침략,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일본이 내려온 이상, 호주 북부가 일본군의 공격권에 들어가는 건 피할 수 없었습니다.

남방작전을 전개하던 일본은 전략적 요충지로 티모르 섬 공략을 결정합니다. 1942년 2월 19일, 일본제국 육군 228연대가 티모르 섬에 상륙하기로 결정되어 있었죠. 그런데 티모르 섬은 호주 북부에 전개했을지도 모르는 연합군 항공 세력의 작전권에 들어 있었습니다. 일본군 지휘부는 티모르 침공과 동시에 호주 북부에 대한 대규모 공습으로 침공을 엄호하기로 했습니다.
푸른색 네모가 포트 다윈

그 세력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태평양함대가 붕괴당하고, 영국 해군이 U-Boat에 의한 격침 피해 및 지중해에서의 혼전 등으로 전력이 약해진 당시 상황에서,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본제국 연합함대가 바로 그 핵심 전력이었습니다. 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 4척의 대형항모에서 발진하는 항공 전력을 막아낼 세력은 당시로선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본이 걱정하고 있던 연합군 항공세력은 매우 별볼일 없었습니다. 1940년 이래 영국은 유럽 전쟁때문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들의 전력을 대거 차출했습니다. 호주 공군은 대부분 북아프리카 전선에 차출되어 강력한 독일 루프트바페와 전면으로 부딪쳐야 했고 아직도 북아프리카 전선은 종결되지 않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잔존 전력도 네덜란드령 동인도 방어를 위해 전진배치했다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2년 뒤였다면 물량의 미국이 그깟 전투기 수백대 즘이야 하면서 전투기를 화물선 몇 척에 한가득 실어 보내줬겠습니다만 아직 미국의 산업기반은 전시체제로 개편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뒤늦게 대대적으로 확충을 시작하고 있었으나 모든 게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하와이 방어. 진주만 기습으로 하와이의 항공 세력이 소멸되어 버린 당시 상황에서 미국은 다른 곳에 항공 전력을 대대적으로 증파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2월 19일 아침, 연합함대에서 발진한 188대의 항공기들이 일제히 호주 북부의 요충지 항구인 포트 다윈(Port Darwin)을 급습합니다. 지휘관은 진주만 기습 당시 도라! 도라! 도라!의 메시지를 전송한 것으로 유명한 후지다 중좌. 전투기도 최신예에, 숫자도 엄청나게 많았고, 지휘관이나 파일럿들도 모두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반면 포트 다윈의 방공 세력은 형편 없었습니다. 20mm 대공포 몇 문이 방공세력의 전부였고, 미국 육군항공대 33비행대 소속 P40 전투기 11기가 침공기들을 요격할 수 있는 전투기의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영국 본토라면 해안에 레이더 시설이 도배되었겠지만 식민지 호주에는 아직 레이더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내습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절망적. 대대적인 공습으로 얼마 되지도 않던 포트 다윈의 주요 군사세력과 시설들은 완전 파괴당하고 초토화되었습니다. 일단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소속 구축함과 육군 대형 수송선 1척, 호주의 소형 순찰정 1척이 격침되고 민간 화물선 4척도 같이 수장되었습니다. 호주 해군 병원선도 공격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침몰을 면했죠.

11기의 P40 전투기 중 10기가 격추 및 파괴당했고 B25 폭격기 1기, C45 수송기 3기, 카탈리나 비행정 1기가 격추되었습니다. 항구시설 및 비행장도 완전 초토화.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과잉공습을 받은 결과였죠. 일본군의 손실은 겨우 4기에 불과했습니다.

이 공습으로 호주 북부가 일본의 공격에 얼마나 무기력한지 증명되었으며 연합군이 이를 막아낼 여력이 없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호주 정부는 어쩌면 일본군이 호주 북부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 즉 상륙작전을 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고 방어태세를 갖추고자 하나 사실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안은 포트 다윈의 민간인들에게도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곧 일본의 상륙군이나 공정부대가 침투할 거라 믿고 일제히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동인도제도에 대한 연합국의 공격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을 뿐이라 호주 본토 공격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럴 여력도 없었죠. 포트 다윈 공습을 단행한 제국해군 연합함대는 이후 다시 전장을 옮겨 태평양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미드웨이에서 항모 4척이 모조리 격침당하죠.(...)

그러나 포트 다윈에 대한 일본의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2월 19일의 대공습 이후로는 일본은 간헐적으로 꾸준히 호주에 대한 공습을 계속했습니다. 포트 다윈을 방치하면 동인도 제도에 대한 연합군 반격의 거점이 될 가능성은 충분했으니까요. 실제 첫 공습이 있은 후 한달만인, 1942년 3월부터 일본군의 공습이 재개됩니다. 이후의 공습은 해군에서 육군으로 넘어가 G4M 공격기 등에 의해 소규모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공습은 1943년 말엽까지 꾸준히 지속되고 이후 중단되었습니다. 더 이상 일본은 포트 다윈을 공격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포트다윈 첫 공습때만 해도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미국이, 마침내 전시체제 전환을 완료하고 전 전선에서 총공세로 나선 겁니다. 일본군은 각지에서 패퇴를 거듭하고 있었고 공격을 한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습니다. 태평양 각지가 붕괴되는 와중에 호주 공습과 같은 부차적인 일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거죠.

덧글

  • 2008/12/02 12: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adenijoa 2008/12/02 12:49 #

    예, 생각해보니 그 표현이 정확한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계원필경 2008/12/02 13:11 # 답글

    그러고 보니 뉴질랜드는 정말 단 한번의 공격을 받지 않은 셈이군요(그나저나 마다가스카르 같은 마이너 지역의 전투도 좀...)
  • Ladenijoa 2008/12/02 20:14 #

    1. 뉴질랜드는 진짜 평화로운 낙원이죠.
    2. 생각해보니 마다가스카르 침공전도 있었네요.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미친과학자 2008/12/02 13:30 # 답글

    만약 일본이 호주를 목표로 삼고 밀어붙였더라면, 역사가 바뀌었겠군요.
  • Ladenijoa 2008/12/02 20:15 #

    아마 가다가 지쳐 쓰러졌을 겁니다. 호주 북부 해안에 거점 마련하는 거 말고는 불가능하죠. 일본군은 병력과 물자의 부족으로 더 이상 전선 확대가 불가능했습니다.
  • 미친과학자 2008/12/02 20:23 #

    아참 호주 한복판은 사막이었지....
  • 사칙연산 2008/12/02 15:37 # 답글

    그러고보면 호주엔 경쟁자가 없어서 운좋게 살아남은 종이 꽤나 있었죠-_-;
    그 지역 특성이 그런건지도 모르곘네요;
  • Ladenijoa 2008/12/02 20:16 #

    호주 대륙과 가장 가까운 육지래봐야 티모르 섬과 뉴기니 섬 등 동인도제도 일부인데 이들도 다 섬이니...

    태평양과 인도양, 남극해에 둘러싸인 거대한 고립된 대륙이라는 특성이 오랜 기간 내려온 결과죠.
  • hotdol 2008/12/02 16:18 # 답글

    사실 저때도 일본은 생산능력에 비해 방어영역이 너무 넓었죠.
    호주침공에 더이상의 역량을 투입했다면 산호해나 미드웨이같은 대회전없이 차례차례 소리없이 각개격파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미드웨이 대신 산호해해전에서 주력이 박살났겠지요.
  • Ladenijoa 2008/12/02 20:17 #

    그 넓은 방어영역을 유지해 보려고 발악하다 결국 미드웨이에서 말아먹었죠.
    호주를 본격적으로 침공했다면 아마 제국 육군이 사막 한 가운데에서 굶어 죽었을 겁니다-ㅅ-;;
  • 소시민 2008/12/02 19:28 # 답글

    당시 니뽕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는데 성공했다면 다음 타겟은

    호주가 됬을지도 모르겠군요.
  • Ladenijoa 2008/12/02 20:17 #

    아예 그럴 여력 자체가 없었을 겁니다 ㅎㅎ
  • 【天指花郞】 2008/12/02 19:30 # 답글

    호주를 정말 제대로 노렸다면 일본 육군은 이번엔 초원에서 목말라 죽었을지도[랄라~]
  • Ladenijoa 2008/12/02 20:17 #

    캥거루한테 치여 죽을게옿
  • 윙후사르 2008/12/02 19:31 # 삭제 답글

    호주 공격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좋은데.. 중국도 고생하면서 전장을 자꾸 넓히려 한 이유는 뭘지... 자원확보여도 저 정도면 일본 국력에는 무리중의 무리이거늘...
  • Ladenijoa 2008/12/02 20:18 #

    그래서 공습만 하고 말았죠. 바보였다면 상륙전도 했을 겁니다-ㅅ-
  • 【天指花郞】 2008/12/02 21:44 #

    하지만 무다구치라면 어떻겠솧!
  • 애독자 2008/12/03 12:41 # 삭제 답글

    윙후사르님의 덧글을 보니 대미개전결의 당시,일왕이 "중국을 한달만에 점령하겠다하고 몇년을 끌고 있는데 중국보다 광대한 태평양을 어떻게 몇달만에 끝내겠다는 말인가?"라고 질문하니 내각각료가 아무도 대답못했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가진건 자원과 돈과 기술과 인구와 자존심과 명분과 개념뿐이었던(...)당시 미국을 건드린건 일본역사의 최대 실책;;;
  • Ladenijoa 2008/12/03 21:26 #

    겁대가리도 없죠. 중국 전선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대미 개전이라니 훌훌
  • 나그네 2013/10/25 17:41 # 삭제 답글

    그냥 사신을 보내 항복권고만 해도 될껄 쓸데없이 폭탄을 퍼부었죠. 이토오 히로부미 같은 브레인이 사라지고 멍청무식한 군부가 내각을 장악한 결과 국력만 소모하고 결국 핵폭탄을 두발이나 쳐맞게 된건데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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