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세계사 (22) 문명의 충돌(?) 탈라스 전투 History

유라시아 대륙은 보통 서양과 동양으로 나뉘지요. 대륙 동쪽에 위치한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몽골 및 그 주변의 소국들을 보통 동양으로 칭하고, 대륙 서쪽 유럽을 서양으로 칭하지요. 그리고 이 가운데 있는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일대를 중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양과 중양은 사실 오래 전부터 꾸준한 교류가 있어 왔습니다. 이들은 지중해를 공유했고, 이들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서로 상대방의 진영 깊숙히 쳐들어간 적도 있습니다. 서양에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멸하고 인도까지 나아간 적이 있었고, 중양에선 페르시아가 자주 그리스를 정벌했었으며 이후의 이슬람 세력이 과감하게 남프랑스로 진격한 적도 있었죠.

이처럼 서양과 중양은 서로 그 존재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활발한 교류/충돌을 자주하고 있었습니다만(그래서 포괄적으로는 이들 중양 지역도 서양으로 합치기도 하죠.) 동양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동양의 중국 문화권과 중양의 페르시아 사이에는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 고비 사막 및 알타이 사막과 같은 온갖 험준한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전한의 장건이 처음으로 이 지역을 방문, 실크로드를 개척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로마의 오현제 중 하나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보낸 사절단이 바다길을 통해 (후)한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후한도 붕괴, 삼국시대에 이어 5호 16국, 남북조 시대로 이어지는 오랜 분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서양과 동양이 오랜 기간 혼란에 빠지면서 더 이상 외부세계에 눈길을 돌리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7세기 들어서면서 중국이 통일되고, 중양 지역에서도 급속히 성장한 이슬람 세력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중동,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으로 급속히 확대되는 일이 생깁니다. 서양에서도 오랜 혼란 끝에 동쪽의 비잔틴, 서쪽의 프랑크로 대표되는 강대국이 등장하면서 이슬람 세력과 충돌이 일어나죠.

유럽의 두 강대국에 막혀 서쪽으로의 진출이 막힌 이슬람 세력은 동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동양에서도, 신라와 발해에 의해 만주 및 한반도 지배가 좌절된 당이 남쪽과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죠. 남쪽에 대한 관심은 북베트남 일대의 지배로 이어졌고, 서쪽으로의 관심은 대규모 서역 원정으로 연결됩니다.

동양, 서양, 중양의 대략적인 구분. 서양과 중양은 역사 이래로 계속 꾸준히 교류를 해왔고 상호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지만 동양은 거의 독자적으로 발전해왔으며 이따금 사신 및 상인에 의한 교류가 아니면 왕래조차 어려웠다. 때문에 서양과 중양을 그냥 합쳐서 서양으로 부르기도...
서기 704년, 이란 북동부의 호라산 총독이 된 옴미아드 왕조의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Qutaybah ibn Muslim)은 705년에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장악하고, 709년까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일대를 완전히 확보했으며, 712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거점인 도시 사마르칸트를 점령합니다. 이로서 중앙아시아 남부에 대한 이슬람 제국의 패권이 공고히 되죠.

한편 당은 국가의 외곽 지역마다 도호부(都護府)를 설치, 변경의 수비 및 주변국 정벌의 임무를 맡깁니다. 고구려를 멸하고 세운 안동도호부, 베트남 지역에 설치한 안남도호부, 북방민족을 담당하기 위한 안북도호부, 그리고 서역 정벌을 위한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등이죠.

당 현종 27년(서기 740년), 당의 고구려계 장군 고선지(高仙芝)가 우전, 달해부를 정벌합니다. 이 공으로 그는 당의 안서부도호, 사진도지병마사로 임명됩니다. 현종 36년(서기 747년)에는 서역 일대가 토번과 동맹관계를 맺거나 그들에게 복속당하자 역시 고선지를 출병시켜, 토번과 그 동맹국 소발률국을 격파하고, 72개국을 복속시켰습니다.(72개국이라기보다는 72개 부족이라 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원정은 군사적으로도 완벽한 승리였고, 단번에 서역의 지배권을 토번으로부터 탈환했을 뿐 아니라, 약탈한 막대한 전리품 등으로 당 조정의 대환영을 받으며 당 제국의 서역 정벌 전문가로 인정받게 됩니다. 홍려경어사중승(鴻臚卿御史中丞), 특진겸좌금오대장군동정원(特進兼左金吾大將軍同正員)와 같은 거창한 이름의 직책이 괜한 게 아니죠.

한편,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 이후 주변 지역의 이슬람 포교에 성공하고 세력을 공고히 여기고 있던 이슬람 세력은 8세기 중엽에는 옴미아드 왕조에서 아바스 왕조로 교체되면서 잠시 주춤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747년에는 아바스 왕조가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하고, 750년에 최종적으로 옴미아드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세계가 아바스 왕조로 교체되면서 다시 대외확장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 무렵, 바로 그 문제의 서역에서 석국이 당의 서역 원정에 불안감을 가지고 이슬람 세력과 동맹을 맺습니다.

당 조정은 결코 이를 용납하려 하지 않았고, 결국 서역정벌 전문가 고선지에게 다시 출병을 명합니다. 당 현종 39년(서기 750년)의 이 원정에서 고선지의 당군은 다시 한 번 혁혁한 승리를 거두며 석국을 점령하고 그 왕을 포로로 잡아 옵니다. 당 조정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고선지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라는 직책(칭호?)을 추가해 줍니다.

그런데 고선지가 정발한 석국이란 바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일대입니다. 우즈베키스탄,  바로 8세기 초에 옴미아드 왕조의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이 장악하고 나아간 최대 진출지점입니다. 아울러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이자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고 있던 사마르칸트가 코앞이었죠. 현재 지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동부 일대가 바로 당과 이슬람 세력과 충돌 지점이었던 것입니다.

서역의 지배권을 둘러싼 이슬람과 당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당의 계속되는 군사적 위협에 공포를 느낀 중앙아시아 소국들이 아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 지야드 이븐 사리프(Ziyard ibn Salih)에게 구원을 요청, 그가 이 구원 제의를 받아들여 아바스 왕조의 정규 부대가 출병, 중앙아시아 동맹국과 연합합니다. 당 조정 역시 이를 무시할 수 없어, 현종 40년(서기 751년) 에이스 고선지를 다시 한 번 내보냅니다.
751년, 탈라스 전투 직전의 양 세력의 움직임
페르시아의 호라산 주를 거점으로 하는 이슬람 세력의 중앙아시아의 전진기지이자 요충지 사마르칸트(A)와, 750년 고선지가 정벌한 석국(타슈켄트)은 매우 근접해 있었다. 안서도후부(B)에서 출발, 서역 일대를 정벌한 당나라 군과 사마르칸트가 위협받게 된 이슬람 세력은 충돌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탈라스(검은색 빗금)에서 충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탈라스 전투의 배경입니다. 사실 탈라스 전투는 전투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전투 진행양상이 어떤 지 후대인들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고선지의 당군과 동맹을 맺은 현지 군대가 작전대로 배반을 일으켜 당군이 패했다는 정도지요. 생존자가 얼마 안 되는 참패라고 할 정도니까요. 고선지 본인도 안록산의 난 도중에 누명(?)을 쓰고 처형되어 기록을 남기지 못했고.

다만 추정하자면, 고선지와 당군은 군사적으로는 뛰어났을 지 몰라도 점령지 정책은 매우 무능했던 거 같습니다. 당 조정을 만족시킬 만큼의 전리품을 보낼 정도로 약탈했다면 대체 그 소국들에게서 무엇을 얼마나 강탈했다는 걸까요. 얼마나 현지인들을 무시했으면 동맹군이 도중에 배반할까요?뭐, 이건 포로로 잡은 석국 왕을 참수한 당 조정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반대로 이슬람 세력은 진출한 지 불과 반 세기도 안 되어 현지에 이슬람 교를 빠르게 보급시키고 군사적 정벌은 필요한 곳에 국한하며 나름대로 타협 및 융화책을 써 현지 국가, 부족들을 동맹으로 포섭했다는 점에서 이 전투의 승패가 갈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탈라스 전투는 이처럼 중앙아시아 일대를 둘러싸고, 당시 세계 최강의 두 국가 아바스 왕조와 당나라가 펼친 하나의 문명의 충돌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 전투로 서역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확고한 우위가 완성되었으며, 당을 중심으로 한 동양-중국 세력은 이후 거의 400년동안 서역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당은 몇 년 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더 이상 대외정벌을 할 여력이 없었으며, 그 뒤의 5대 10국에 이은 통일왕조 송은 군사적으로 너무 무력했으니까요.

이슬람 세력도 중앙아시아 일대의 확보에는 성공했습니다만 그 이상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아바스 왕조도 이후 급속도로 내부가 흔들리면서 통일 이슬람 왕조의 성격이 크게 퇴색되어 더 이상 동쪽으로 진출할 수 없었지요.

이후 동양 세력이 다시 서역으로 나아가게 되려면 칭기즈 칸이 등장하길 기다려야 합니다. 그 오랜 기간동안 동양 세력은 서역으로의 진출에 실패했고, 탈라스 전투는 중국 세력의 진출 한계를 보여준 하나의 역사적 대 사건이었습니다.


p.s : 고선지에 대한 평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동양의 한니발(...)이라니, 나폴레옹을 능가하는 영웅이니 등등. 과연 고선지가 고구려계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높이 띄워주었을까요?-_-;;

동양의 한니발, 나폴레옹이라는 찬사는 어디까지나 그가 파미르 고원 일대를 넘어 작전했다는 점 하나 때문이고, 사실 그의 군사적 승리라는 것도 아바스 왕조군 이전의 지방 소국 및 부족들을 상대로 한 대승이었습니다. 정작 아바스 왕조의 정규군을 상대로 한 탈레스 전투에선 참패하고 말았죠.

혹자는 서양에 제지법을 전해주어 동서 문화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전쟁에서 패해 포로로 잡힌 당나라 기술자가 제지법을 전수해 주었다는 건 가장 유력한 학설 중 하나라지만 과연 그게 고선지가 의도한 거고 기여한 걸까요?(...)
얼어죽을 유럽문명의 아버지

덧글

  • 행인1 2009/01/05 22:47 # 답글

    아무래도 당나라가 점령지 부족들을 꽤나 가혹하게 다루었을듯 하군요.
  • Ladenijoa 2009/01/06 18:57 #

    역대 중국왕조들이 뭐 다 그렇죠-ㅅ-;;

    당나라가 그나마 개방적이라지만 동맹국 무시하고 신라 영토로 약속한 백제 땅에 옹진도독부를, 그리고 동맹국 수도에 계림도독부를 두는 미친 짓거리는(...)
  • 계원필경 2009/01/05 22:49 # 답글

    나폴레옹과 고선지는 엄연히 다르죠. 물론 제지술이 넘어간 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이였지만(이것도 포로들이 전해준 것이지 고선지가 전해준 건 아니죠.) 나폴레옹처럼 어떤 한 역사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죠...(그것도 그럴께 고구려하면 사람들이 껌뻑죽어서...)
  • Ladenijoa 2009/01/06 18:58 #

    제지술이 전파된 건 말 그대로 우연...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걸 고선지의 업적으로 돌리면 매우 난감하지요 후우;;;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고
  • 어부 2009/01/05 22:49 # 답글

    진짜 '얼어죽을' 에는 동의합니다. 웬.......
  • Ladenijoa 2009/01/06 18:59 #

    그냥 고구려계니까 저렇게 띄우는 거죠 뭐;;
  • highenough 2009/01/05 22:59 # 답글

    오히려 그냥 저 패배 이후 중국은 어딜 더 나가길 그만두고 짱박히기 시작했으니 어쩐지 더 짜증나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 Ladenijoa 2009/01/06 19:00 #

    이후로 중국 왕조 중 본격적으로 세력확대를 단행한 건 고작 원과 청(...)
  • 천지화랑 2009/01/05 23:01 # 답글

    동아시아의 지형이 저렇게 단순하지만 않았어도 역사는 꽤 재미있었을텐데 말이오. -_-;; 동맹군이 배반할 정도였다면 당은 발해 건국에서 아무것도 못 배웠다는 이야기인가....[머엉]
  • Ladenijoa 2009/01/06 18:58 #

    학습 능력이 없는 애들인듯 싶솧
  • 천지화랑 2009/01/06 22:28 #

    그야말로 제외작자!
  • oldman 2009/01/05 23:08 # 답글

    저 또한 '얼어죽을'에 동의합니다...후우...
  • Ladenijoa 2009/01/06 19:02 #

    너무 민족주의적 사관인데, 이리저리 마구 확대되고 있지요;;
  • 정호찬 2009/01/05 23:10 # 답글

    핵심은 마지막 짤방이군;;;
  • Ladenijoa 2009/01/06 19:01 #

    이건 환빠 저리가라입니다?
  • 레인 2009/01/05 23:16 # 답글

    핵심은 마지막줄;;
  • Ladenijoa 2009/01/06 19:01 #

    중요한 건 그거 하나면 충분하죠 ㅎㅎ
  • 을파소 2009/01/05 23:23 # 답글

    저 책 저자 이름을 보니 이정기에 대한 책도 쓴 사람이군요.

    고선지고 이정기고 돌궐 출신만 됐어도 누군지도 모른다에 한표입니다.
  • Ladenijoa 2009/01/06 18:59 #

    이정기까지 다룬 사람입니까? 전형적이군요;;;
  • organizer 2009/01/05 23:29 # 답글

    "얼어죽을".. ㅎㅎㅎ <--- 동의 ;;
  • TSUNAMI 2009/01/05 23:32 # 삭제 답글

    1. 라뎅대공의 글과 관련해 두 개의 흥미로운 글이 기억납니다.

    현지인에 대한 수탈과 하대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2285(당나라의 인종차별 - 작자 미상:중은우시)

    탈라스 전투 이외에 당군의 패전기록에 대해서는

    http://blog.daum.net/shanghaicrab/10276860(당나라의 굴욕 - marieat :중은우시)

    통사적으로 알려진 당의 면면과는 전혀 다른 해석도 나오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2. 차라리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라는 저작이 더 설득력있어 보입니다.(콜린 윌슨도 자신의 저작에서 징기스칸을 "서방에 화약을 전래한 전사"라고 표현했으니까요)
  • Ladenijoa 2009/01/06 18:57 #

    1. 당이 개방적이라는 선입견 자체가 중국 기준이죠(...) 뭐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선 매우 개방적인 왕조이긴 했습니다. 중국에 국한해서-_-;;;

    탈라스 이전에도 무진장 많이 깨졌군요(...) 그나마 군사력으로 막강했다는 당 왕조가...

    2. 차라리 그 책 제목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군요(...) 몽고의 유럽 원정이 최소한 유럽 애들을 경악에 빠트린 건 사실이니까-ㅅ-
  • USAF 2009/01/05 23:33 # 답글

    계원필경님 덧글에 공감이가네요 고선지는 그냥 일개 고구려계 당의 장수일뿐입니다
    나폴레옹과는 거의 천지차이죠 (내가 N폴레옹 빠돌이라서 그런가...)
  • Ladenijoa 2009/01/06 18:55 #

    나폴레옹의 천재성과는 감히 비교가 안되죠 ㄷㄷ
    뭐 기록이라도 제대로 나와있으면 좀 더 자세히 평가를 해보겠습니다만 기록이 없으니;;
    중국 애들이 패한 전투 기록을 좀 너무 관대하게 처리한달까요(..)
  • leopord 2009/01/05 23:45 # 답글

    저도 핵심은 마지막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왠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 몇 마디 드립니다.

    1. '중양'이라는 표현이 일반역사학계에서도 통용되는 용어인지가 궁금합니다. '중동' 같은 서구중심적인 표현에서 탈피하려는 표현 같긴 합니다만...

    2.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 지역을 서양의 테두리에 두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지역이 고대 그리스·로마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고-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는 페르시아의 왕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를 다루기도 하고-단순히 침략과 방어만으로 단정지을 수 없는 사회적·문화적 교류가 빈번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3. 2의 연장으로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동·서양의 교류를 좀 제한적으로 보시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서양(동양) 중심의 교류만을 짚고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소국들이 동서양에 어떤 교류를 하였는가를 아예 배제하신 건 아닌지요(자료가 미비하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4. 고선지 장군과 당나라의 대중앙아시아 정책 전반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폐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중국사를 통틀어서 당대만큼 교류가 활발한 시대는 없었으니까요. 이슬람 제국이 중앙아시아에 접근한 방법과 당이 접근한 방법은 통치기술적인 측면보다 각 사회의 문화적 배경에 따른 차이가 더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5. 중앙아시아가 소국으로 난립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돌궐 역시 당에 대한 절대충성을 맹세하지 않았고, 돌궐의 충성을 항상 경계해왔던 당도 마찬가지였고요(애초 돌궐족은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니, 이들 전체가 당에 충성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 아닐까요). 부족적으로는 이합집산 상태이고 지리적으로는 험준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어느 한 세력에 의한 절대패권의 확립이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6. 고선지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겠지만, 소국을 상대했을 땐 승리했어도 결정적인 전투에서는 약한, 명장은 아니어도 범장보다는 나은 장군으로 평가하는 것도 지나치게 편향적이라고 봅니다. 고선지는 황제가 아니었고, 도호부를 관장하는 무인이 전쟁과 행정을 총괄하는 입장이긴 했어도 완전히 마음대로 통치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사냥꾼은 다음날 잡을 토끼를 남겨둔다" 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7. 고선지를 나폴레옹에 버금가는 장군으로 평가하는 건 물론 오버지만, 그가 자신의 재량 이상의 역량을 발휘한 장군인 건 사실입니다.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원과 사막투성이인 황야를 헤치며 수많은 부족과 싸워야 했던 것 자체가 범장으로선 무리인 일이었으니까요. 게다가 740년부터 750년까지, 중앙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지속적으로 이어간 것도 감안해야 하고요.

    탈레스 전투가 역사적으로 큰 의미있는 싸움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슬람에겐 가깝고 당에겐 먼 땅이라는 걸 감안해야 하고(사마르칸트가 위협받았다는 것이 이것이겠지요), 주변 소국의 불만과 돌궐의 배반 등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합당한 평가 같습니다(물론 여기서 당의 전략적 오류가 도출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신다면, 장기적으로는 그게 옳습니다만, 실크로드 소국들이나 돌궐이나 양쪽 다 크게 신뢰한 건 아니라는 걸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8. 이건 사족으로, 몽골제국조차 그 역사가 100년을 조금 넘는 정도이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국을 지탱한 기반은 색목인으로 비단길의 행상을 보호하고 그들을 정치에 적극 채용한 결과 그렇게 유지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즉, 중앙아시아 패권의 핵심은 대상의 보호였고, 칭기스칸의 등장 이전까지는 이 대상무역을 중개하는 소국들이 난립한 까닭에 오히려 당과 이슬람의 개입을 불러왔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중앙아시아의 패권은 초원을 질주하는 기마유목민족이 한 세대에 걸쳐 통합된 뒤에야 비로소 달성되었다고 봐야하겠죠(물론 이것도 몽골제국의 분할과 분란으로 오래가지 않지만...).
  • Ladenijoa 2009/01/06 00:16 #

    1. 사전적 의미로 나오는 단어가 중양입니다. 그다지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긴 하죠.

    2. 사실 그런 의미로 본문에 쓴건데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은 모양이군요^^

    3. 동-서양 양측 중심으로만 본게 맞긴 한데, 말씀하신 대로 그쪽의 사료가 너무 부족하니까요. 저같이 그냥 인터넷과 책으로 대충 뒤진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선^^ 전문 사학가라면 한번 그쪽을 파헤치는 것도 소망입니다만 전문 사학가와는 거리가 머니..;;

    4. 이슬람과 당의 문화적 배경이 결국 그런 통치기술의 차이를 낳은 것이라 볼 수 있겠지요. 특히 당같은 경우는 영구주둔도 하지 못하면서 너무 무리하게 강경책만을 썼습니다. 해당 세력을 지원할 곳이 없는 막다른 곳에 몰린 세력 상대로면 몰라도 뒤에 또다른 강대국이 있는 상대를 너무 몰아부쳤지요. 자신들만한 강대국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 보니 기존의 강경 전략을 그대로 이용했고 결국-_-;;

    5. 충성을 하지 않았으니 당이 정벌을 했죠.(머엉) 사실 당도 완전장악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완전장악을 시도했다면 베트남이나 고구려, 백제의 경우처럼 영구주둔을 시도하지요. 고선지의 당군은 서역에 영구주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에 당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확립하고 우방국들을 확보해야 합니다. 싸우더라도 패자를 너무 몰아치지 말아야 했던 거죠. 그러나 현실은(...)

    6~7. 제가 비판하는 부분은 고선지의 전술전략적 측면입니다. 그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까지 온갖 험로를 겪으며 원정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고 군에 대한 높은 통솔력과 장악력이 필요로 한 일입니다만 그건 군의 장악력 문제죠. 통솔력 자체는 높은 장군이지만 장군의 유능함을 따지는 데 있어 통솔력과 전술적 능력이 같이 평가되어야죠.

    (이슬람이 전장에서 가깝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사마르칸트는 최전선기지 성격이었고, 결국 아바스 왕조의 서역전역 거점은 페르시아 호라산 주라 봐야 합니다. 당의 장안, 페르시아의 호라산에서 탈레스까지의 거리는 서로 비슷하고 자연적 조건도 둘다 막장이지요. 실제 아바스 왕조군의 출병은 호라산에서 이뤄집니다.)

    8.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패권국가는 티무르 제국이고, 그 이후로는 혼란에 휩싸이죠. 결국 저 동네가 완전히 장악되는 건 제정 러시아에 의해서니까...
  • leopord 2009/01/06 00:48 #

    답변 감사합니다. 고선지 장군의 전략적 안목과 전술적 역량에 대해서는 탈레스 전투 뿐만 아니라 다른 전투에 대한 고찰이 병존해야 엄정한 평가가 내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써내려갔던 건데, 제 질문이 좀 헐겁지 않았던지 신경쓰이던 참이었지요.

    당의 통치방식에 무리가 있었던 건 인정합니다. 중화의 천하관이란 그렇게 종종 폭력적이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지역의 안정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그 지점에서는 이슬람이 보다 나았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다만 문화적 배경이 통치기술의 차이를 낳았다고 본다면 어떻게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레벨로 가버리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저 좀 더 영리한 대외정책을 편 이슬람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장군의 통솔력과 전략(전술)적 역량은 물론 어느 정도 구분되는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높은 통솔력을 가진 장군이 그에 상응하는 전략적 역량을 가지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고 생각합니다(충분관계는 성립하지만 필요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달까요.). 고선지에 대한 전쟁사적 사료 및 연구가 그만큼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가 될런지요.

    저도 가지고 있는 구글어스로 장안~타슈켄트~사마르칸트~호라산~바그다드를 살펴봤습니다. 장안~타슈켄트 루트가 호라산~사마르칸트 루트보다 좀 더 긴 것 같던데요... 음, 여기서 굳이 거리가 어느 쪽이 더 기냐 짧으냐로 논쟁을 옮기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구요.(^^;) 다만 탈레스 전투가 당군이 더 지리적·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치러진 전투였다는 걸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 Sollen 2009/01/06 02:45 # 답글

    어쨌든 고구려 쪽 종내기들이 "싸움질" 하나는 기가막히게 하는군요(....)
  • Ladenijoa 2009/01/06 18:50 #

    역사상 중국이 그다지 싸움/전쟁 잘하는 일을 본적이 없으니;;
    고구려계뿐만 아니라 중국 왕조에선 (중국 기준) 이민족 출신들이 장군이 되어 활약하는 사례가 많더군요
  • 아문 2009/01/06 03:41 # 답글

    동서양과 중양의 지리적 구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만주를 포함한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한데 묶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앙아시아에서도 정주문명과 유목국가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계속된 교류가 있었던 만큼 상당히 유연한 모습을 보이거든요 흉노라든가 투르크, 거란도 그렇고 몽골까지 북중국에서 우즈베크스탄까지의 유목국가들은 동일한 집단에 의해 점유되었던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교류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 정확한건 잘 모르기 때문에 좀 더 찾아봐야겠지만요

    동서양과 중양을 저렇게 구분하는 것은 동양을 교류가 없는 폐쇄적인 문명으로 낮춰 바라보는 것이 될까봐 걱정되네요
  • Ladenijoa 2009/01/06 18:53 #

    사실 저거 북아시아나 중앙아시아 나름대로 동양에 반영한 결과기는 합니다만(...)

    유목민족들의 활동범위를 모두 묶어서 동양에 포함시키면 무려 동유럽에 발칸, 북이탈리아 등등마저 다 동양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버립니다.(훈족-_-) 그리고 유목민족 중 서양으로 이동한 민족들은 이후 동양의 특색을 유지했다기보단 서양에 편입되는 편이죠.

    전 사실 서양-중양 관계에 비하면 동양이 매우 타 지역과 교류가 부족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교류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고 해로나 실크로드, 스텝로드 등을 통해 교류가 이루어지긴 했습니다만 서양-중양 사이의 꾸준한 교류에 비할 바가 못되죠. 동양이 워낙 풍족-_-하고 발달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도 한 원인이겠죠
  • rumic71 2009/01/06 10:21 # 답글

    "당나라 군대가 쳐들어옵니다!"
  • Ladenijoa 2009/01/06 18:53 #

    오옿 당나라 군대!!
  • 소시민 2009/01/06 10:47 # 답글

    정작 당시 고선지 장군이 고구려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슴 깊이 담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지는

    군요.
  • 네비아찌 2009/01/06 14:00 #

    본인이 잊으려 해도 주위에서 계속 상기시켜 주니까요.
    고선지가 처음에 발률국을 정벌하고 왔을 때 전공을 탐낸 상관(얘도 돌궐인인데)이
    고선지를 욕하면서 "이 개고기를 먹는 고려놈아!"하고 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 Ladenijoa 2009/01/06 18:53 #

    정작 본인은 당나라 인으로 살았을지도(...)
  • 루드라 2009/01/06 10:53 # 답글

    얼어죽을에 동의합니다.
  • Ladenijoa 2009/01/06 18:53 #

    진짜 저 책 제목은 뭐랄까;;;
  • 윙후사르 2009/01/06 11:59 # 삭제 답글

    꼭 칭기즈칸 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거란족이 여진족에게 쫓겨서 중앙아시아로 가더니 거기서 셀주크 투르크를 뻥 차버리고 자기들이 눌러 앉기도 했지요.
  • Ladenijoa 2009/01/06 18:54 #

    서요던가요? 서요도 충분히 중앙아시아의 강대국이긴 한데 코라즘이라거나 등등과 패권대립을 했으니 절대패권국으로 보기에는...
  • 천지화랑 2009/01/06 13:19 # 답글

    그냥 훈족이 최고라능?
  • Ladenijoa 2009/01/06 18:55 #

    오옿 아틸라 대왕 오옿
  • 나아가는자 2009/01/06 17:07 # 답글

    '서역정벌전문가'가 유럽문명의 아버지라니...ㄷㄷ
  • Ladenijoa 2009/01/06 18:54 #

    저런 식이라면 칭기즈 칸은 전 인류 문명의 아버지죠 ㅋㅋ
  • StarSeeker 2009/01/06 22:28 # 답글

    그래도 나황제나, 한니발이나, 고선지나, 공통점은 한개씩있네요.

    그동안 잘 하다가, 단한차례의 전투로 막장이 되어버린거...(...)
  • Ladenijoa 2009/01/06 22:31 #

    하긴 그렇군요 ㅎㅎㅎ
  • 카바론 2009/01/06 22:30 # 삭제 답글

    징키스칸 한번 뜨면 전부 닥썰될 애들이 참 말이 많군.
  • emperor 2009/01/11 02:31 # 삭제 답글

    카바론/ 오랜만에 이 멋진 장소에 들어와서 글들을 쭉 보고 있었는데 기분이 팍 상하는군요.

    닥치세요. 무슨 개소린지.
  • ddddddddds 2012/08/19 12:56 # 삭제 답글

    전통 이슬람 왕조는 아니라도 나중에 이슬람은 인도,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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