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렌베르크의 명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내려다보는 칼렌베르크 언덕의 교회에 있는 명판입니다. 1683년 9월 12일, 칼렌베르크 언덕을 주 전장으로 벌어진 빈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이 전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폴란드 국왕 얀 소비에스키 3세를 기리기 위한 거지요. 1683년 12. IX는 전투가 벌어진 1683년 9월 12일을, 그 다음의 1983은 전투 300주년을 맞이하였던 1983년 이 명판을 설치한 해를 의미하죠.

폴란드가 중심이 된 연합군이 2달동안 빈을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20만 대군을 격파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더 이상 유럽을 향한 공세를 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의 공세를 막았을 뿐만 막대한 노획물자를 획득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반격으로 나서며 중부 유럽에서 오스만 세력을 축출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오스만이 수세에 몰리고 오스트리아가 공세로 나서게 된 거죠.

...그리고 빈을 위기에서 구해낸 얀 소비에스키 3세의 나라 폴란드는....

1772년부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 의해 3국 분할됩니다 ㄳ. 7년전쟁때 너죽고 나죽자던 애들끼리 사이좋게 땅 나눠먹는 것도 개그지만 역시 국제사회는 냉정한 법입니다. 100년 전의 위기를 해결해 준 폴란드에 대한 은혜는 어디다 팔아먹고 저렇게 냉큼 땅따먹는 대상으로 변하는 걸까요(...)


p.s : 제2차 빈 포위전 포스팅 시도하다 말아먹고 올리는 땜방 포스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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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enijoa | 2009/01/14 12:52 | History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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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윙후사르 at 2009/01/14 13:00
빈 전투에서 윙드 후사르들의 그 엄청난 돌격은 저로서는 폴란드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타오른 횃불처럼 느껴지더군요.(그 뒤로는 참 안습이죠.. 땅덩이만 큰 허수아비...)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6
폴란드 최후의 영광이었죠 쯔법
Commented by 행인1 at 2009/01/14 13:03
오스만 투르크의 빈 포위가 폴란드의 공격으로 막을 내렸군요...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7
예, 빈 전투에서 폴란드 기병대의 돌격으로 오스만 군이 참패합니다.

이 전투 이후 오스만은 더 이상 유럽을 향해 공세로 나서지 못하죠.
Commented by asianote at 2009/01/14 13:21
폴란드는 안타까운 인물들이 많은 나라입죠. 쇼팽도 그렇고 퀴리부인도 그렇고... 쩝... 그래도 오스트리아도 그 제국 다 팔아먹고 소국으로 전락했고 프로이센도 제국 세우다 졸라짱센 미쿡에 발렸으며 러시아도 공산주의자들에게 나라 팔렸으니 사필귀정??? 음...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7
그러나 여전히 폴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낀 안습의 존재라는게..;;
Commented by dunkbear at 2009/01/14 14:01
10년만 지나도 잊는 은혜였는데 100년 지나면 언제 그랬냐 모드죠.... ㅡ.ㅡ;;;;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8
하긴 100년 전 일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니 신경쓰지도 않겠습니다-ㅅ-
Commented by 들꽃향기 at 2009/01/14 16:48
폴란드 입장에서야 자기네 나라 왕위 계승에 간섭한 전력도 있는(스테판 바토리의 군주 선출 시기에) 그런 나라를 국력을 털어먹어가면서 살려준(...) 거인데...이렇게 뒤통수를 맞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을지도요....ㄷㄷ

뭐 국제 정치란게 다 그런거라지만 쩝....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8
불쌍하지요 뭐. 결국 오스트리아만 신나는 꼴
Commented by 티이거 at 2009/01/14 18:09
뭐 러시아에게 반쯤 먹힌 상태였고... 당대의 먼치킨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로이센의 남은 지역에 눈독 들이고 있는 상태에서 오스트리아가 뭘 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저 자기 몫이라도 챙기는 게 상책이었지요....

나중에 그 대가는 처절히 치르게 되지만요... 나폴레옹에게 예나-아우어슈테트에서 발린 프로이센 군이 러시아군과 합류하러 폴란드 지역으로 후퇴하자 가해진 사보타지로 프로이센의 대군은 녹아사라졌고 연이어 벌어진 러시아군과의 격전에서 폴란드인들이 은근슬쩍 프랑스 편을 많이들었죠...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9
폴란드야 나폴레옹 전쟁기동안 철저히 프랑스의 동맹측으로 협력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맺힌게 많았으면;;
Commented by 소시민 at 2009/01/14 18:20
당시 빈 공략을 지휘한 권세가 대단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장군이 패전의 책임을 물어 처형

당하고 그 목이 박제되었다는 것을 책에서 보고 인간사가 참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더군

요. 더 압박인건 어디 박물관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 목이 십여년 전 까지 전시됬다는거

죠 ㄷㄷㄷ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39
카라 무스타프 파샤, 참 불쌍한 인간이지요 쯧쯧
Commented by 천지화랑 at 2009/01/14 20:24
걍 빈 먹혀버렸으면 -_-;;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40
저때 빈 먹혔으면 그냥 중부 유럽까지 오스만이 장악하는 정도랄까.

사실 제1차 빈포위때 먹혔으면 그건 유럽의 대위기였겠지만 말이옿 ㅡㅡㅋ
Commented by 버섯 at 2009/01/14 23:41
폴란드는 신권이 왕권을 항상 압도하는 바람에 나라가 막장이 된 경우라능~

그래도 한때 모스크바도 점령하고 러시아를 벌벌 떨게 했으며 동유럽에서

꿋꿋하게 오스만 투르크에 맞선 기개만큼은 높이 사줘야 한다능~~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40
폴란드의 기개는 20세기 초반에도 매우 명성을 떨치죠. 실제 능력과 관계없이-ㅅ-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1/15 02:07
오스만 투르크→오스만제국.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들은 19세기 말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국가가 '투르크'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은정교수 가라사대, '투르크' 는 전통시대 오스만제국에서 차라리 '촌뜨기' 를 지칭하는 단어였다지요.

오스만 제국이라 지칭함이 가장 무난하리라 아뢰오.
Commented by Ladenijoa at 2009/01/15 09:40
그렇군요^^ 다음부턴 오스만으로 통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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