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4일
칼렌베르크의 명판

폴란드가 중심이 된 연합군이 2달동안 빈을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20만 대군을 격파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더 이상 유럽을 향한 공세를 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의 공세를 막았을 뿐만 막대한 노획물자를 획득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반격으로 나서며 중부 유럽에서 오스만 세력을 축출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오스만이 수세에 몰리고 오스트리아가 공세로 나서게 된 거죠.
...그리고 빈을 위기에서 구해낸 얀 소비에스키 3세의 나라 폴란드는....
1772년부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 의해 3국 분할됩니다 ㄳ. 7년전쟁때 너죽고 나죽자던 애들끼리 사이좋게 땅 나눠먹는 것도 개그지만 역시 국제사회는 냉정한 법입니다. 100년 전의 위기를 해결해 준 폴란드에 대한 은혜는 어디다 팔아먹고 저렇게 냉큼 땅따먹는 대상으로 변하는 걸까요(...)
p.s : 제2차 빈 포위전 포스팅 시도하다 말아먹고 올리는 땜방 포스팅임(...)
# by | 2009/01/14 12:52 | History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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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 이후 오스만은 더 이상 유럽을 향해 공세로 나서지 못하죠.
뭐 국제 정치란게 다 그런거라지만 쩝....
나중에 그 대가는 처절히 치르게 되지만요... 나폴레옹에게 예나-아우어슈테트에서 발린 프로이센 군이 러시아군과 합류하러 폴란드 지역으로 후퇴하자 가해진 사보타지로 프로이센의 대군은 녹아사라졌고 연이어 벌어진 러시아군과의 격전에서 폴란드인들이 은근슬쩍 프랑스 편을 많이들었죠...
당하고 그 목이 박제되었다는 것을 책에서 보고 인간사가 참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들더군
요. 더 압박인건 어디 박물관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그 목이 십여년 전 까지 전시됬다는거
죠 ㄷㄷㄷ
사실 제1차 빈포위때 먹혔으면 그건 유럽의 대위기였겠지만 말이옿 ㅡㅡㅋ
그래도 한때 모스크바도 점령하고 러시아를 벌벌 떨게 했으며 동유럽에서
꿋꿋하게 오스만 투르크에 맞선 기개만큼은 높이 사줘야 한다능~~
오스만 제국의 통치자들은 19세기 말기 이전까지는 자신들의 국가가 '투르크'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은정교수 가라사대, '투르크' 는 전통시대 오스만제국에서 차라리 '촌뜨기' 를 지칭하는 단어였다지요.
오스만 제국이라 지칭함이 가장 무난하리라 아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