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폴란드

독일 통일과 오데르-나이셰 선

오데르-나이셰 선(Oder-Neisse Line)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이 배경을 살펴보아야 겠지요.

때는 1939년 9월. 총통 각하와 강철의 대원수께서 폴란드를 나눠드신 적이 있었지요. 바르샤바를 포함한 폴란드 서부 및 중부를 독일이, 동부 지역을 소련이 각각 접수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토 분할은 불과 2년도 채 지속되지 못하여 1941년 6월, 총통 각하의 대원수 동지 뒤통수 후려치기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러 1945년. 연합군의 대반격으로 이번엔 전세가 역전되면서 대원수 동지는 소련 영토의 확보에 고심하게 됩니다. 이미 서방 연합국과의 합의를 통해 발트 3국과 루마니아의 베사바리아 지방, 1940년 겨울전쟁 종전으로 얻어낸 핀란드 영토, 그리고 남 사할린과 북방 4도의 지배를 인정받은 강철의 대원수 동지는 예전에 꿀걱하셨다가 총통 각하때문에 도로 토해냈던 폴란드 동부 지역을 탐내시게 됩니다. 거기다가 독일이 언제 또 힘을 키워서 뒤통수를 후려칠지 모르는 일.

...이리하여 대원수 동지는 오데르-나이셰 두 강을 연결하는 라인을 독일-폴란드의 새로운 국경선으로 결정합니다. 서방 연합국은 이에 항의했습니다만 이들 지역은 동독 지방까지 점령한 대원수 동지의 실제 지배하에 놓여 있어서 항의는 씨알도 안 먹혔지요. 결국 소련의 두 괴뢰국 폴란드와 동독은 오데르-나이셰 선을 새 국경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오데르-나이셰 선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오데르-나이셰 선 해당 항목)
노란색이 폴란드에 넘겨진 독일의 영토. 주황색은 소련에게 할양된 독일 영토.

독일 역사를 아시는 분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저들 지역은 오랜 기간 프로이센 왕국과 그 뒤를 잇는 제2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제3제국에 이르는 고유한 독일 영토이며, 당연히 수많은 독일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지요. 프로이센 왕국과 제2제국의 핵심 중심지이기도 했을 뿐더러, 상당한 산업역량을 갖춘 곳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오데르-나이셰 선이 확정된 이후 저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상당수가 동독으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동독으로서는 영토의 엄청난 축소였습니다만 패전 괴뢰국 주제에 감히 상전에게 개길 수가 없었습니다.

서독도 처음에는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만 빌리 브란트의 동방 정책 과정에서 동구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하는 조약을 소련, 폴란드와 각각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서독과 동독은 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만, 중부 유럽의 강국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며 그 인구와 영토를 이어받아 새로운 통일독일로, 더욱 더 무서운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주변국이 열렬히 환영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폴란드는 과거 동서독 정부가 각각 인정했던 오데르-나이셰 선을 통일 독일이 거부하고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했습니다. 기존의 폴란드 공산당이나,1989년 6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민주주의 세력이나 이 문제만큼은 일치단결하고 있었지요.

사실 독일 내부에서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만 헬무트 콜 총리와 당시 내각은 이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오데르-나이셰 선을 처음 인정한 것이 자신들과 정당이 다른 사회민주당의 빌리 브란트임에도 말이지요. 사실 현실적으로도 옛 독일의 영토를 돌려받는 것도 무리였고 말입니다.

특히 이러한 폴란드의 입장을 대변해준 것은 (독일 서쪽에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였습니다. 당시 헬무트 콜 총리의 외교안보 보좌관이었던 호르스트 텔칙(Horst Teltschik)의 회고록, [329일-베를린장벽 붕괴에서 독일 통일까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미테랑은 독일이 계속해서 화생방 무기를 포기하는 의무를 지킬 것인지 물었고, 콜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서 미테랑은 다시금 오데르-나이셰 국경문제를 제기했다. 이것은 운명적이라는 것이다. 콜 수상은 통일된 독일도 이 국경을 인정할 것임을 강조했다. 미테랑은 콜이 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볼 때 오데르-나이셰 국경을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명확히 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이것이 결코 통일을 위한 전제조건은 아니라고 했다. 미테랑은 결코 어떤 평화조약을 바라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이해관계 국가들 사이의 규정과 관계 당사자들 사이의 국제적인 결의가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콜은 미테랑이 이 문제점을 끝까지 주장하는 데 놀랐다.…
1990년 2월 14일 수요일

…폴란드 지도부는 폴란드가 <2+4> 회담(동서독 + 미영프소)에 참석하고 오데르-나이셰 국경을 결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국제 캠페인을 벌였다. 1990년 2월 23일 금요일

결국 2월 24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행해진 부시 대통령과 헬무트 콜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콜은 서부국경(폴란드 국경) 문제에서 폴란드를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할 것임을 재확인합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국경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즉 오데르-나이셰 선의 인정이 독일 통일을 쉽게 해줄 것이라며 이를 지지해 주지요. 이는 다음 날, 양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됩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폴란드는 끈질겼습니다.

…뒤마(미테랑 행정부의 외무장관)는 다시금 오데르-나이셰 국경의 궁극적인 승인을 찬성하면서 <자신의 친구 겐셔>(헬무트 콜 내각의 외무장관)와 같은 의견이라고 말했다. 그 대답을 통일 독일 국회를 만들 때까지 미루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했다. <침묵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가득 차 있는 순간>이라고 했다. 뒤마는 연방수상이 오데르-나이셰 국경을 문제로 삼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같은 것으로서 폴란드의 이해관계를 변호했다. - 1990년 3월 1일 목요일

3월 6일, 독일 연정(기독교 민주당, 기독교 사회당, 자유 민주당)은 오데르-나이셰 국경을 인정하되, 그 공식 승인은 통일독일 정부 수립 이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독일 연정의 이와 같은 결정으로 미 상원은 폴란드 서부국경의 현상유지에 대한 결의안 채택을 취소합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폴란드는 여전히 이에 반대하며 통일 이전에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지요.

…정오에 미테랑이 콜에게 전화해서, 폴란드 지도부와의 회담에서 세 가지 점을 합의했다고 알려주었다. 오데르-나이셰 국경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과 독일 통일이 실현되기 이전에 폴란드와 양 독일 국가 사이에 국경조약에 관한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조약 자체는 전체 독일 국회에서 비로소 비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폴란드는 6자 회담에 국경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 1990년 3월 14일 수요일

...결국 이 집요함에 질린 헬무트 콜 수상은 6월 21일 연방의회에서 <독일에 접한 폴란드의 국경선은 현재 그어진 그대로가 최종적이다.>라고 단언하게 됩니다.


사실 폴란드 입장에서는 동부 영토 상당수를 대원수 동지에게 강탈당했으니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받지 못하면 국토가 매우 축소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까지 저렇게 나서서 오데르-나이셰 선을 인정하라고 대대적으로 압박을 넣는 모습을 보면 역시 분단국가의 통일은 주변국에서는 그다지 반기는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지요. 영토문제뿐만이 아니라, 통일 독일의 NATO 가입여부 문제,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 보유 문제, 군비 수준 문제 등등 독일 정부가 통일로 나아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도 장기적으로 생각할 문제입니다. 뭐, 생각이라고 해봤자 영토같은 경우는 그냥 독일의 경우처럼 기존의 중조, 중러 국경조약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로 나아가야 겠지만요. 여러모로 독일 통일 과정의 1989~90년은 우리에게도 많은 참고가 될 듯 합니다. 특히 독일 옆에 붙어있던 나라가 폴란드와 프랑스인 반면, 우리는 옆에 붙은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이고, 국력도 독일에 비하면 약하니 더더욱 조심해서 이 과제들을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by Ladenijoa | 2009/07/03 04:21 | History | 트랙백 | 핑백(2) | 덧글(17)

칼렌베르크의 명판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내려다보는 칼렌베르크 언덕의 교회에 있는 명판입니다. 1683년 9월 12일, 칼렌베르크 언덕을 주 전장으로 벌어진 빈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고, 이 전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폴란드 국왕 얀 소비에스키 3세를 기리기 위한 거지요. 1683년 12. IX는 전투가 벌어진 1683년 9월 12일을, 그 다음의 1983은 전투 300주년을 맞이하였던 1983년 이 명판을 설치한 해를 의미하죠.

폴란드가 중심이 된 연합군이 2달동안 빈을 포위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20만 대군을 격파하면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더 이상 유럽을 향한 공세를 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오스만의 공세를 막았을 뿐만 막대한 노획물자를 획득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는 오히려 반격으로 나서며 중부 유럽에서 오스만 세력을 축출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오스만이 수세에 몰리고 오스트리아가 공세로 나서게 된 거죠.

...그리고 빈을 위기에서 구해낸 얀 소비에스키 3세의 나라 폴란드는....

1772년부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 의해 3국 분할됩니다 ㄳ. 7년전쟁때 너죽고 나죽자던 애들끼리 사이좋게 땅 나눠먹는 것도 개그지만 역시 국제사회는 냉정한 법입니다. 100년 전의 위기를 해결해 준 폴란드에 대한 은혜는 어디다 팔아먹고 저렇게 냉큼 땅따먹는 대상으로 변하는 걸까요(...)


p.s : 제2차 빈 포위전 포스팅 시도하다 말아먹고 올리는 땜방 포스팅임(...)

by Ladenijoa | 2009/01/14 12:52 | History | 트랙백 | 덧글(20)

아무거나 세계사 (5) - 베르사유 체제하 집단안전보장체제

1914년 8월부터 4년간 전 유럽을 잿더미로 만들고 천만 명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가져다 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직후, 유럽 각국들은 더 이상 유럽대륙에 이런 비참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이라 쓰고 자기 나와바리 건드리는 겁대가리 없는 놈(독일)이 다시는 못 일어나도록-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고자 합니다.

때문에 어느 특정국가(독일-_-;;)가 무력도발을 하더라도 유럽의 각국(승전국 연합;;)이 뭉쳐서 공동으로 대응해 유럽 평화를 해치는 나라 및 집단에 응징을 가하는 체제가 완성됩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이 체제는 프랑스가 각각 영국, 벨기에,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와 군사동맹 및 우호협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형성됩니다.


위 지도에서 제가 표시한 대로, 갈색 원으로 체크된 국가들이 바로 유럽의 집단안전보장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들입니다. 말이 집단안전보장체제지 사실상 대 독일 포위망이었죠.(...) 프랑스는 유럽의 신생 독립국인 폴란드 및 체코슬로바키아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기존 대독 전승국들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일에 대한 동서남부 및 해상에서의 포위망을 구축합니다.

우선적으로 세계최강 대영제국은, 해군력을 상실한 독일을 바다에서 봉쇄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독일 서부에서 유럽 최대의 육군국이자 동맹의 주도국답게 독일에 대한 서부 방면에서의 압력을 주도했고, 서부에서의 대독 포위망은 1914년 8월 이전까진 중립국이었던 벨기에의 가세로 인해 한층 튼튼해집니다.

독일 남부에서는 1915년 연합국으로 참전한 이탈리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합스부르크 제국 붕괴 이후 알프스의 소국으로 전락하면서 이탈리아의 세력권으로 사실상 공인받는 국가가 된 덕에 남부 포위망을 한층 굳건하게 해주었죠. 동부에서는 각각 러시아와 합스부르크에서 떨어져 나온 신생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양국이 프랑스와 동맹관계를 유지하며 독일 동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소련을 견제했습니다.

1920년대의 유럽 집단안전보장체제는 실제 1934년까지 무난하게 작동했으나 패전 당사국인 독일을 지나치게 고립으로 몰아넣었고,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주의 국가가 된 소련을 의도적으로 배척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계는 1935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2. 붕괴 과정

by Ladenijoa | 2008/09/24 13:04 | History | 트랙백 | 덧글(25)

동유럽 MD 폴란드 기지의 좌초?

기존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은 체코 레이더 기지, 폴란드 미사일 기지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실제 양국 정상 모두 이같은 미국의 계획에 대하여 큰 불만이 없었다. 체코나 폴란드-특히 폴란드-는 러시아에 대한 전통적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며-차라리 독일에게 당하면 당했지 소련 도움은 안 받는다던 39년 폴란드의 기백!- 이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로 미국의 동유럽 MD에 적극 참여했던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대테러전쟁에 휘말려들면서 더 이상 예전처럼 동유럽 지역에 대한 안전보장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주관심사는 중동으로 돌려졌고, 미국의 힘이 중동에서 헛되이 소모되는 동안 천연가스와 석유를 무기로, 그리고 힘의 공백을 이용해 빠르게 국력을 회복한 러시아가 다시 동유럽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한 폴란드 국민들의 선택은 러시아에 대한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되, 얻어맞을 위협이 있는 MD 미사일 기지를 아무런 보장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위험하다...로 나타난다. 역시 MD 기지를 유치한 체코와 달리 폴란드는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동부국경 대부분은 친러 위성국가 벨로루시와 접하고 있지 않은가?


작년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선거 공약부터 이라크 주둔군의 철수와 MD 기지에 대한 반대급부 요구를 내걸었다. 그리고 집권에 성공한 폴란드 신 정부는 폴란드에 MD기지를 배치하는 조건으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한다.

1. 폴란드 전역에 대한 광역 방공망 구축
2. 폴란드 군 현대화를 위한 200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
3. 미국-폴란드 상호 안보조약의 체결

1번은 MD 기지 타격을 명분으로 한 러시아 항공세력의 공습으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한 요구이며, 2번은 사실상 러시아의 침공-국지적이더라도-을 염두에 둔 국방력 강화 수단이며, 3번은 러시아와 충돌이 발생할 시 자동적으로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보장조치이다.

반 세기 좀 전에,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세력과 사실상 운명의 전쟁을 치룬 어느 나라에서는 위 3개 조항 중 2, 3번을 미국에 요구했고-1번은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는 끝내 2, 3번 모두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1950년대 한국과 2008년의 폴란드는 그 사정이 상당히 다르다.

한국은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에 놓여 있던 반면, 폴란드에 대한 위협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 한국은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전사자를 낸 피의 땅이자 냉전의 현장이기에 지켜야 할 의미가 있었지만 폴란드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자동적으로 알아서 미국에게 빌붙는 한 중소국가에 불과하다.

폴란드로서는 혹시 모르는 위협에 대하여 나름 합리적인 요구를 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으나 미국으로선 그다지 받아들일 만한 조건은 아니다. 여기서 한국과 폴란드의 또 다른 차이는 대안의 유무이다. 한국의 포기는 일본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이 사라진다는 의미였지만 폴란드를 포기한다고 해서 MD 기지를 배치할 곳이 없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당장 리투아니아 대안설이 떠오르고 있다.-

리투아니아 대안설이 미국으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건 아니지만-폴란드에 비하면 러시아가 무력화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폴란드가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나름대로 생각해 볼 만한 카드다. 이미 리투아니아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다고 하는 등 리투아니아는 나름대로 미국에 MD 기지를 배치해 달라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듯 싶은데 이렇게 되면 동유럽 MD 구상은 중부 동유럽에서 북부 동유럽-발틱 연안으로 불씨가 옮겨지게 된다. 과연 미국의 선택은...

by Ladenijoa | 2008/07/03 22:13 | 세계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2)

러시아의 벨로루시 흡수?

푸틴, 벨로루시 흡수합병으로 집권연장 꾀하나 - 한겨레

예전부터 이야기는 돌던 건데 갑작스레 구체화되는 듯 하군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의 영원한 꼬봉으로 살아가는 벨로루시에 대해 가즈프롬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가스값 인상을 하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가스값 인상은 벨로루시에 대한 최후통첩인 셈이군요.

다만, 루카셴코가 차베스에게 석유 지원을 받기로 한 뉴스가 뜬게 어제인데... 과연 보도가 사실인지 루머로 판명날지는...

만약 사실이라면 푸틴의 집권은 둘째 치고...

마침내 러시아는 폴란드와 다시 국경을 접하게 됩니다. (지금도 칼리린그라드 주하고 접해있기는 하지만 이곳이야 애시당초 러시아 본토와 절단된 곳이라...) 독일에게 짓밟히는 한이 있어도 소련군의 통과는 안 된다고 외치며 영소 협상의 장애가 되었던 1939년 폴란드의 강경태세는 사실 지금도 크게 변한 건 없고...

무엇보다 폴란드가 NATO에 가입한 지금, 그나마 완충지대를 하는 벨로루시가 러시아에 합병된다면 폴란드-벨로루시 국경은 양측의 접경지가 되며 친서방 국가 우크라이나와 접하는 국경의 길이가 더욱 더 길어져 우크라이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집니다.(국경-키에프 거리도 훨씬 줄어들죠.)

이제 남은 건 크레믈린의 공식 반응을 지켜보는 것일뿐. 푸틴이 내놓는 카드가 진짜로 벨로루시 흡수라면 이건 단순한 권좌 유지 수단이 아닌 동진하는 서방세계에 맞불을 놓는 러시아의 본격적인 역습이 될 겁니다.

by Ladenijoa | 2007/12/10 22:20 | 세계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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