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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보잉 '787 드림라이너' 인도시기 또 연기(종합) - 아시아경제

꿈의 여객기. 보잉이 에어버스에게 빼앗긴 민항기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개발 중인 꿈의 B787 드림라이너가 다시 한 번 납품 연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파업이고, 실제 파업으로 인한 지연도 상당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개발에 나서면서 주문을 받기 위해 너무 무리한, 보잉으로서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조기납품을 약속했다는 데 있겠죠. 일단 계약부터 받아 현금사정 완화하고 시장 주도권 되찾자는 생각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드림라이너는 올해 이미 인도되어 상용화되어야 했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예상되는 인도 및 상용화 시기는 2010년입니다. 그것도 개발이 순조롭다는 가정이고, 늦어지면 2011년에서 최악의 경우 2012년까지 개발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에어버스가 이미 A380을 상용화한 상황에서 계속 인도가 늦어지면 초대형기 시장을 고스란히 에어버스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고, 현재 맺어진 드림라이너 납품 계약의 연이은 파기 및 선수금 환불로 부족해 위약금 지불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경제위기. 경제위기 국면에서 민항기 부분 및 항공산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전체적으로 시장이 축소됩니다. 축소된 시장을 아웅다웅하고 다투다 보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쪽이 퇴출당하는 편이지요. 지금 민항기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쪽은 바로 보잉입니다.

이처럼 민항기 부분이 좌절스러운 보잉으로서 믿을 수 있는 건 군용기 부분인데 군용기 부분도 사정이 안 좋은건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보잉에 합병된 맥도널 더글러스의 함재공격기 A-12가 냉전종식과 함께 개발이 취소되면서 막대한 개발비 부담을 떠앉은 것을 시작으로, 미 공군의 JSF 사업에서 록히드 마틴의 X35에 보잉의 X32가 패한 것이 결정타였죠.

그래도 미 공군의 KC-X(공중급유기 사업)을 독점할 수 있었으나 뇌물을 건네준 것이 포착되면서 다시 된서리를 맞고 작년부터 진행된 KC-X에서 에어버스에게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입니다. 내년에 미 공군 KC-X가 재개되는데, 100기가 넘는 대규모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이라 선정만 된다면 회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보잉은 사업을 전면 무효화시킨 다음 벌은 시간동안에 아직 에어버스에 맞설 대형 공중급유기 설계 개념도 제시하지 못했죠.

보잉이 희망을 걸 수 있는 다른 사업은 인도. 인도 공군이 구식의 Mig21을 대거 퇴역시키고 126기의 신형기로 대체하는 사업을 진행 중인데 보잉이 F/A18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126기의 전투기 도입 사업은 진짜 대규모고, 보잉으로선 놓칠 수 없는 사업이죠. 그런데 이는 다른 항공산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가 Mig35, EADS가 유로파이터 타이푼, SAAB가 그리펜, 록히드 마틴이 F16을 각각 내놓아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리고 저같으면 F/A18 사느니 Mig35 아니면 F16 사렵니다.(...)

즉, 보잉의 미래는 매우 암울합니다. 보잉은 크게 민항기와 군용기로 사업분야가 나뉘는데 둘 중 하나가 막장이 되어도 다른 하나가 괜찮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막장입니다. 도저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기업을 살릴 돈벌 구석이 없는 겁니다. 저러다 보니 보잉이 한국에 AESA을 장착한 새로운 F15K를 3차 FX에, 그것도 염가로 제안하고 있지요. 보잉이 1차 FX 당시 한국의 낚시질을 뻔히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더 안 좋습니다. 그러니 일각에서 보잉이 무려 3차 FX로 F15K 120기를 싸게 팔려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_-;;

그나마 보잉이 지금까지 수주한게 있어서 버티고는 있습니다만 전 세계적 경제위기가 심화된다면 보잉도 급격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거성 GM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이 보잉으로선 남의 일처럼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by Ladenijoa | 2008/12/12 17:12 | 세계에 대한 관심 | 트랙백 | 덧글(51)

TIME지의 올해의 인물 (3) 1947 ~ 1956년

TIME지의 올해의 인물 (1) 1927 ~ 1936년 (2008. 10. 22)
TIME지의 올해의 인물 (2) 1937 ~ 1946년 (2008. 10. 24)

에서 이어지는 연재물 포스팅의 세 번째입니다. 사실 아까 낮에 한 번 완성했는데 포스팅 올리기 직전 날아가버려서 새로 죄 작성했습니다 ㅠ.ㅠ 지난 번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내용이 길은 관계로 첫 번째 인물만 공개되게 하고 나머지는 가려놓았습니다.


1947년 - 조지 마셜 George Marshall 1880. 12. 31 ~ 1959. 10. 16


군에서 전역하고 트루먼 내각의 국무장관이 된 조지 마셜이 두 번째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됩니다. 이유야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마셜 플랜의 전격적인 제안이었죠.

총통 각하, 강철의 대원수, 처칠 총리라는 걸출한 세 대인배의 싸움에 휘말리느냐 유럽은 초토화되었습니다. 특히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의 피해가 극심했고, 이탈리아도 전화의 한복판에 휘말렸으며, 영국은 허구한 날 독일 공군과 V1, V2의 공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 독일과의 전쟁 및 내전으로 황폐화된 건 마찬가지였고, 노르웨이나 핀란드도 사정은 비슷했죠. 독소전의 주무대가 된 소련 서부 및 동유럽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마셜은
초토화된 유럽에 대해 미국이 대대적인 재정지원을 단행하여 빠른 전후복구를 도와주어 유럽을 회복시킬 것을 제의합니다. 서서히 동서냉전 구도가 확고히 되어가던 이 무렵, 마셜의 이러한 대대적인 유럽 전후복구 지원책은 소련의 서진에 맞서 서유럽 국가들을 최대한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성 유럽의 빠른 회복으로 미국 산업력이 소비시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경제적 필요성이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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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enijoa | 2008/10/27 20:36 | History | 트랙백 | 핑백(7)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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